[유수경의 엔터시크릿] 절약도 힙하게... '짠남자'의 미덕
연예인의 부동산 투자 소식은 독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가장 많은 기사 중 하나다. 고급주택이나 건물 매매는 조회수가 높게 나오는 관심 키워드임에 분명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또한 SNS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춰지는 연예인들의 플렉스(FLEX, 부를 과시하는 행위)에도 대중은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일부 관찰 예능에선 으리으리한 집에서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공개돼 불편하다는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제일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연예인들의 수입은 일반 직장인과 견줄 수가 없다. 회당 몇 억을 받는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예능 프로그램 한 회 촬영에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을 버는 연예인들도 있다.
그러나 엔터 업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고수익 연예인들은 소수일 뿐이다. 촬영이 없는 날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비인기 연예인들도 주변에 실제로 무척 많다. 배우 류승수 역시 최근 한 예능에 출연해 "작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다들 투잡을 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6일 방송된 MBC '짠남자'는 근래 접한 지상파 예능 중 가장 재미있고 유의미했다. 일상에서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샤이 소금이 특집'으로 꾸며진 이날 방송은 정규편성 이후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열띤 반응을 입증했다. '샤이 소금이'로는 밴드 루시 보컬 최상엽과 배우 임기홍이 출연했다.
1994년생인 최상엽은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반지하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으로 눈길을 모았다. 그의 집엔 과거 멤버들과 숙소에서 쓰던 철제 2층 침대,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이 있었다. 가전과 가구 대부분을 무료나눔으로 장만했다는 최상엽은 중고거래 앱에서 무료 나눔 글을 보고 빠르게 멘트를 '복붙'했다. 자주 쓰는 문구를 등록해놓고 필요한 물건의 나눔이 등록되면 즉시 보내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함이었다.
한남동에 거주하는 그는 3단 선반을 나눔 받기 위해 신사동으로 출동했다. 회사에서 끌차까지 빌려온 최상엽은 걸어서 한남대교를 건넜다. 노래를 부르면서 빠르게 이동한 뒤 능수능란하게 거래를 성사시키고 기쁜 마음으로 선반을 싣고 돌아왔다. 또한 내시경 검사 시 수면 마취 비용이 8만 원이라는 걸 듣고 비수면을 택했다는 최상엽의 말에 김종국은 "나는 위아래 모두 비수면으로 받는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넷플릭스 '인간수업' '오징어게임' '마이 네임' 등에 출연한 임기홍은 자주 다니는 동묘 벼룩시장을 찾았다. 그는 구제 옷들 사이에서 새 옷을 찾는 방법을 전수하는가 하면 6천원에 옷 세 벌을 구입하고, 총 7가지 아이템을 2만 6천원에 '득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스튜디오 녹화 당시 임기홍은 시장에서 2천원에 산 바지를 입고 나왔다. 기장 수선도 없이 딱 맞는 바지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그는 공병을 모아 마트에서 현금으로 교환한 후 마감 할인을 노려 알뜰하게 장도 봤다. 이를 지켜보던 개그맨 박영진은 "요즘 주민센터에 플라스틱을 모아서 가면 종량제 봉투로 바꿔준다"고 말했고 임우일은 "휴지로도 교환이 가능하다"고 첨언했다. 이에 제작진은 지역마다 다르다는 자막을 더했다. 임기홍은 지독한 절약 일상을 보여줬음에도 "오늘 너무 과소비한 것 같다"며 반성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날 방송에선 좋은 소식도 전해졌다. 김종국이 대통령표창을 받은 것. 그는 철저한 저축 실천과 재무관리를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 대중에게 저축의 중요성을 알리고 방송을 통해 금융 지식을 전파한 점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의 영예를 안았다. 물티슈를 빨아서 재사용하고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는 김종국의 절약 습관은 유명하다. 그는 '짠남자'에서 "양말을 신었는데도 발이 시릴 때 난방을 튼다. 춥게 지내면 몸 안에서 열이 나기 때문에 칼로리 소비가 더 많이 된다. 무난방 다이어트를 추천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종국과 이준 등 남다른 절약 정신으로 유명한 연예인들이 총출동한 '짠남자'는 게스트들의 소비 습관을 지적하는 형태로 주로 진행돼 왔지만, '샤이 소금이 특집'에선 일반인들처럼 아끼며 살아가고 있는 배우와 가수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괴리감을 덜어내고 시청자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굴하고 짠내 나는 모습이 아니라, 나름의 멋을 추구하며 힙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절약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의식을 심어줬다는 점이 칭찬할 만하다. 기자 역시 집안 곳곳에 자리한 불필요한 물건들을 보며 그간의 소비 습관을 돌아보게 된 방송이었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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