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지구적 기후부정의에 편승했다
얼마 전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여는 정기상영회에 이야기손님으로 다녀왔다. 상영된 영화는 룬 덴스타드 랭글로 감독의 <이것은 노르웨이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다큐멘타리다. 영화는 노르웨이 정부가 내준 북극해 석유 탐사 허가에 대해 청소년 기후활동가들이 그린피스와 조부모 기후행동의 활동가들과 함께 제기한 위헌 소송을 담고 있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는지, 과학자들은 무엇이라고 증언하는지, 정부는 어떤 논리로 이에 맞섰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소송은 2021년 대법원까지 가고 청소년 기후활동가 등은 결국 패배한다. 영화는 이들이 유럽인권재판소로 가서 싸우겠다고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영화를 보면서, 2024년 8월 판결이 난 한국의 기후소송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이번 상영회를 준비한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소송의 구체적인 쟁점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차원에서 논의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노르웨이의 기후소송은 우리도 함께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들이 여럿 펼쳐보여준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노르웨이의 두통(Norwegian Headache)>인데, 영화를 보면 그렇게 붙인 이유도 이해된다. 하지만 노르웨이 국적이 아닌 사람들이 보자면, 국문 번역된 제목인 <이것은 노르웨이만의 문제가 아니다>도 수긍이 가는 이유다.
"우리의 관할권이 아니다" vs "얼만큼이 우리의 것인가?"
내게 영화에서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노르웨이라는 국가의 책임과 역할에 관해서 이루어진 법정 공방이었다. 노르웨이 정부를 대리하고 있는 변호사는 항소 법정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정부 대리인) 제 질문은 이 결의(새로운 석유 시추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것)가 112조(환경권 보호 조항)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까요? 항소인(청소년 기후활동가 등)은 노르웨이 기후가 변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미대륙 말고 노르웨이요. 태평양, 방글라데시 등에 생기는 일은 노르웨이 관할권 밖입니다. 노르웨이에 영향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는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이렇게 가정하고 있다. 노르웨이 영토에 관할권을 가진 정부가 행한 결정에 대한 토론은 그 영토 안에서 발생하는 영향에 국한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노르웨이가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전지구적인 기후변화를 야기해서,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미국 대륙에 어떤 영향을 야기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둘 필요도, 당연히 토론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노르웨이 영토 안에서 영향이 나타나야만, 그 결정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는 산유국이다. 그들의 복지국가와 부유함은 그들의 바다 아래에 매장된 석유를 채굴해서 수출하는 얻는 수입에 기반하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석유 수입으로 막대한 국부펀드를 조성하고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며, 자신들이 투자한 해외의 9000여 개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자국 내 석유 탐사와 채굴은 계속 허가를 내주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자유롭게 국경을 넘는 석유와 자본은 문제삼지 않는 반면,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의 영향만은 엄격히 국경을 따지고 있다.
답답할 노릇이다. 청소년 기후활동가 등을 대변하여 정부 대리인에 맞선 환경단체 대리인은 그 위선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남아 있는 대기 중 얼만큼이 노르웨이 것입니까? 의회에서 답해야 할 질문입니다. 얼만큼이 노르웨이 겁니까?"
지구 대기라는 '지구적 커먼즈'
그녀는 지구 대기라는 '지구적 커먼즈(공유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아는 것처럼, 노르웨이 국가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노르웨이 영공 안에서만 머물고, 그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을 노르웨이 영토 안에서만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배출된 온실가스에 국경은 의미가 없으며, 국경을 넘어 넓게 확산되고 뒤섞인다. 그 국가적‧지역적 기원을 따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기 중에 배출되어 축적된 온실가스는 전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정부 대리인이 문제 삼기를 거부했던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미대륙 등에도 기후변화의 영향이 나타나며, 여기에는 노르웨이가 배출한 온실가스도 기여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지구 대기는 세계 각국이 쏟아내는 온실가스로부터 보호해야 할 인류 모두의 것, 지구적 커먼즈인 것이다. 이 커먼즈를 지키기 위해서 전지구적으로 배출량을 감축하자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 각 국가들이 책임져야 할 배출 감축량을 정하자는 것이다. 이를 더 명확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해볼 수도 있다. 안전한 기후를 지킬 수 있는 한계(예컨데 파리협정의 1.5도 목표) 내에서 대기 중에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총량(이를 1.5도 탄소예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을 정할 수 있다. 이때 그 총량 중에서 각 국가가 가진 정당한 몫이 얼마인지를 정해보자는 것이다.
이때 노르웨이와 같은 지구적 북반구 국가들의 몫은 적고, 방글라데시와 같은 지구적 남반구 국가의 몫은 커야 한다. 지구적 북반구 국가들은 그동안 오랫동안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경제적 부를 쌓아 왔고, 지구적 남반구 국가들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은 채 '피해와 손실'만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르웨이는 석유를 채굴하여 수출하면서 자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로부터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어 왔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환경단체 대리인은 그 중에서 얼만큼이 노르웨이의 것인지를 물은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 대리인의 비과학적이며 비윤리적인 협소한 '국가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한다. 오래 전 은퇴한 한 대법관이다. 조부모 기후 캠페인 참가자이자 소송의 증인으로 법정에 선다. 영화는 환경단체 대리인의 질문 뒷쪽으로, 다음과 같은 그의 증언을 편집해서 넣으면서 그 의미를 부연해준다.
"(은퇴한 대법관, 조부모 기후 캠페인 참가자, 증인) 기후변화로 가장 고통받는 건, 우리 노르웨이의 후손뿐만 아니라 세계의 비특권층과 섬, 북극 지역 주민입니다.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노르웨이는 이 지구적 부정의를 통해 이득을 얻고 즐겁게 고통받습니다."
영화 속 노르웨이 대법관 13명이 한 명씩 나와 정부의 손을 들어준 후 이후, 그것을 듣고 있던 청소년 기후활동가 등과 변호인이 오랫동안 침묵 속에 앉아 있던 장면이 오래 기억이 남는다. 또한 화면을 바꿔 노르웨이 총리와 에너지부 장관이 번갈아 나와 노르웨이도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삼는다고 말하면서도, 노르웨이가 석유 채굴을 감축하면 다른 나라가 그들의 석유를 채굴하여 돈을 벌게 될 것이라는 장면도 괴로웠다.
한국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였다.
노르웨이 기후소송과 다르게, 최근 판결이 난 한국의 기후소송은 일단 승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31년부터의 감축목표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헌법불일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온실가스 감축, 나아가 기후정책은 기술적 경제적 가능성을 따져서 정할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도 확인하였다. 하지만 2030년 감축목표를 2018년 배출량을 대비 40%로 정한 정부의 결정이 과학적 기준과 국제적 책임에서 부족한 것이라는 청소년기후행동 등의 주장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절반의 승리'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앞서 이야기한 '지구적 커먼즈' 그리고 '탄소예산'이라는 개념을 두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다시 토론해볼 필요가 있다. 한법재판소는 한국에게 할당된 탄소예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판단할 합의된 기준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2030년 감축목표가 헌법에 불일치한다고 판단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에서 독일헌법재판소는 판단을 했으며 이에 기반하여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의견과 근거까지 제시했지만,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이를 무시했다. 결국 국제적 기후부정의에 편승한 것이다.
지난달 16일, 기후소송 평가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여했던 필자가 했던 토론의 일부를 옮기면서 글을 맺어본다.
"어쩌면 헌법소원이라는 접근 자체에서 예고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진행된 이번 헌법소원에 전세계 기후취약국의 기후재난 피해자들, 예를 들어 2년 전 파키스탄의 대홍수로 목숨을 잃은 청소년의 부모가 참여하여 한국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나아가 국회와 정부가 국경에 갇혀 '기후제국주의'에 편승하고 있을 때, 기후(정의)운동은 어떻게 국경을 넘어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한재각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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