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시, 그 접점은…어쨌든 ‘쓰는 것’[책과 삶]
어린 경진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돌아왔을 때 경진의 엄마는 경진의 손을 잡고 집 앞에 있는 ‘맘모스 백화점’으로 향했다.
“가자. 남들이 너를 무시하지 못하게 본때를 보여주는 거야.” 엄마가 말한 ‘본때’란 백화점에서 산 원피스와 장신구로 쫙 빼입는 것이었다. 효과는 굉장했다. 때빼고 광낸 경진의 모습은 어쩐지 아이들을 긴장하게 했고 괴롭힘도 덜해졌다.
세월이 흘러 경진은 ‘쇼퍼홀릭 시인’ 이소호가 됐다. 이소호는 그저 ‘가지고 있기 위해’ 같은 옷을 여러 벌 사고, 백화점에서 본 수입 향수를 사려고 40장짜리 원고를 쓴다. ‘쇼퍼홀릭’과 ‘시인’. 세상에서 제일 안 어울릴 것 같은 두 단어의 조합은 이렇게 탄생했다.
<쓰는 생각 사는 핑계>는 시인 이소호의 산문집이다. 2018년 첫 시집 <캣콜링>으로 유구한 가부장제와 성폭력을 날카롭게 폭로한 그가 이번엔 쇼핑과 시 쓰기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다.
쇼핑과 시 쓰기는 아무 상관 없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미사일 발사와 쓰레기 줍기 사이의 거리 정도라고 할까. 그것은 대중이 생각하는 시인의 이미지와도 관계가 있다. 시인이란 ‘아침 이슬에서 시상을 떠올리거나 결핵이나 알코올 중독에 걸린 사람’이다.
하지만 이소호에게 쇼핑은 문학적 자양분이 된다. 프랑스 빈티지 단추에서 19세기 남편이 잠든 밤에만 글을 쓸 수 있었던 여성을, 인도산 리넨에서는 최고의 원단 전문가를 꿈꾸는 뭄바이 소녀를 생각한다. 어떤 시인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클래식이 되고 싶다”고 답한 뒤 샤넬의 클래식 미디엄 백을 떠올린다.
‘(돈을) 쓰는 이야기’와 ‘(시를) 쓰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그리고 날카롭게 교차한다. 그 사이에서 독자는 직업인으로의 문학인 이소호를 발견한다. 이소호는 말한다.
“문학과 쇼핑을 한자리에 두고 생각하는 일이 전혀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물욕이 글을 쓰게 하는 커다란 원동력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싶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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