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신청에도, 돌봄 지원 시간 확보에도…종이 한 장의 ‘무거운’ 무게

한겨레21 2024. 11. 7.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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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주(가명) 어르신은 몇 개월 전 낙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최근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임대주택으로 이사 가려고 신청했는데 어르신이 거동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내용의 진단서를 첨부하라 했다 한다.

어르신 상태도 심각했지만 더불어 주거 환경은 더 좋지 않았다.

때때로 어르신들의 상태에 대한 소견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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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임대주택 신청하려는데 선생님의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해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기주(가명) 어르신은 몇 개월 전 낙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최근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거동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로 엉덩이 쪽에 욕창이 매우 심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 과연 회복될 수 있을까 걱정됐다. 식사도 못하고 전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간호사와 번갈아 찾아뵈며 관리하니 다행히도 상태가 조금씩 호전됐다. 그렇게 정기적으로 찾아뵙다 많이 좋아져 방문이 뜸해진 사이에 보호자인 어르신의 딸이 오랜만에 연락을 줬다. 임대주택으로 이사 가려고 신청했는데 어르신이 거동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내용의 진단서를 첨부하라 했다 한다.

간곡히 호소한다 돌봄을 위해

어르신 상태도 심각했지만 더불어 주거 환경은 더 좋지 않았다. 근처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길 건너 어르신 댁은 말 그대로 쓰러져가는 주택이었다. 언젠가 방문했을 때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잠시 도로에 주차했다가 이동형 카메라에 찍혔는지 주차 딱지를 받았다. 나중에 방문 진료차 어쩔 수 없었다고 주정차 위반 의견 진술을 하니 경찰서로부터 응급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이번만 참작해준다는 연락을 받았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응급 상황은 아닐지 모르지만 어르신 상태는 언제 응급으로 돌변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주차는 어려웠지만 운 좋게 문제는 없었다. 임대주택을 신청해서 가신다는 말이 반가웠다. 꼭 혜택을 받으셔서 여생을 안온한 공간에서 지내셨으면 했다. 거기에 내 소견이 첨부된다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했다.

때때로 어르신들의 상태에 대한 소견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인지 저하 증상이 심하다는 내용이기도 거동이 어렵다는 내용이기도 하다. 중증장애인의 활동 지원 시간 확보가 절실하다는 요청일 때는 나름대로 간곡히 상황을 호소한다. 뇌 희귀질환을 지닌 한 중증장애인은 보호자인 남편이 경제활동을 해야 해서 홀로 긴 시간을 버텨야 한다. 돌봄 지원 한 시간이 절실하다. 그래서 소견서를 냈는데, 이런 소견이 담긴 종이 한 장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누가 읽어보기나 할지 모르지만 결국에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정말 기쁘다. 물론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은 않았다. 신체 능력이 계속 떨어지는 장애인을 위해 매년 진단서를 작성해보지만, 기대만큼 돌봄 시간이 확보되지 않아 아쉬울 때도 있었다. 현실적 여건도 있을 테니 이해되지만 어떻게 하면 더 간곡하게 호소해야 할까 고민해보게 된다.

잠시 앉는 것, 씻는 것이 허락된 공간

만약 어르신이 비교적 좋은 공간으로 이사 갈 수 있다고 하면 건강 상태가 호전된 것만큼 기쁠 것 같다. 어르신의 건강이 어느 정도까지 개선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남은 생을 침상에서 보내야 할 수도 있다. 특히 지금 사는 집이라면 말 그대로 꼼짝없이 침상에만 누워 있어야 할 수도 있다. 조금 넓은 공간에서 주거할 수 있다면 잠시라도 앉아보실 수도 있지 않을까, 욕실에서 몸을 좀 씻을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대단히 큰 욕심은 아닐 텐데, 누군가의 거주 환경에 의학적 소견이 영향을 미친다니 책임이 막중하다. 그저 현장의 목격자로 증언하는 마음을 가질 뿐이다. 작성한 내용이 의학적으로 적절한지 매번 의문이 들지만 절실한 상황을 꼼꼼히 헤아리려 한다.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종이 한 장의 무게가 좀더 무거워지길 바라본다.

홍종원 찾아가는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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