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빨래에 관하여

오래전 기억. 어머니 떠나시기 직전 그래도 기력이 좋을 때 두어 달을 함께 지냈다. 파주출판단지 사무실의 원룸에서였다. 모처럼 모자간에 밥을 끓여 먹으면서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지나간 생활에 관해 어머니처럼 많이 알고 계시는 분이 또 있으랴. 어머니야말로 내 곁에 현현하는 스토리텔러이지 않은가.
기억력이 비상한 어머니는 소쿠리 들고 산딸기 따던 소녀, 멀리 덕유산으로 산나물 캐러 다니던 새색시, 시골에서의 시집살이 때 일들을 풍성히 이야기해 주신다. 어느 날엔 콩나물 재배기를 장만했다. 어머니의 지도를 받으며 한쪽 구석에서 직접 키우기도 했다.
무럭무럭 자라는 콩나물 앞에서 묻는다. 어머이, 옛날에 뭐 해서 멕있능교? 그러면 말씀하신다. 특별한 게 있나. 호박 보이면 호박, 가지 있으면 가지 따고, 정구지 끊고, 고추 뽁고, 밀가루로 칼국수도 참 많이 밀었지. 그땐 멸치도 억수로 귀했다 아이가. 어쨌거나 삼시 세끼 굶은 적은 없다. 그래저래 거둬주신 걸 먹고 여기까지 온 게 신기하고 새삼스러워 어머니 손목을 끌어당겨 내 팔뚝에 포개며 하나 더 물었더랬다.
그때 나 어찌 입혔능교? 그러면 또 이리 말씀하신다. 아이고야, 그건 잘 기억 안 나네. 설이나 되면 운동화에 옷 하나 사 주었지. 맨날 헌 옷 깁고, 단추 달고, 참말로 그때 뭐 어찌했는지 모르겠네. 어쨌거나 발가벗고 산 적은 없다. 이래저래 엄마한테 업히고, 어머니 곁에서 걷다가 오늘까지 잘 도착한 셈이다.
어머니 기일에 산소 다녀오고 사흘, 파주에 있다. 주말이면 서울로 들어가고 주중에는 혼자 지낸다. 파주 공기가 서울보다 조금 낫다지만 누추해진 몸을 건사하느라 꿋꿋하던 옷도 하루 만에 후줄근해진다. 오늘은 빨래를 했다. 주머니가 달린 꿉꿉한 옷가지, 어머니 입고 떠난 수의처럼 간단한 내의. 별것 아니어도 점점 닳아지고 스러져가는 영역을 지탱해 주는 것들. 빨래를 널고 어머니 자주 앉았던 창가에서 보면 텅 빈 옷은 허수아비처럼 보잘것없는 내 생활을 기웃거린다. 이렇게 어둠이 오고 빨랫감이 나오고 또 그만큼의 생각도 따라 나오는 것. 이야기가 적힌 저녁을 접어 밤으로 밀어 넣으며 이 캄캄한 하루를 또 견딘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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