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남성의 모습을 찾아서 [이경자 칼럼]

한겨레 2024. 11. 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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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대칭적인 대상에 대해 억압받고 차별받고 존재가 부당하게 폄훼될 때, 한쪽에서 해방을 위해 기치를 들어왔다. … 무엇이 되었건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 고유성에 대해 간섭하지 말고 함부로 재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리하여 ‘평화공존’하자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해방이 필요하다고 목숨까지 내놓고 ‘덤비는’ 쪽의 갈망에는 ‘인간은 평등하다’는 평화사상이 깔려 있었다.

이경자 | 소설가

친숙한 분들과 점심을 먹고 찻집에 갔다. 탁자의 벽면 쪽에 앉았는데 벽이 온통 책이었다. 제목들을 훑다가 책 제목 하나에 훅, 마음이 움직였다. 곁의 다른 책들보다는 두께가 얇은 편이었는데 세로로 내려 쓰인 제목은 ‘남성해방’이었다. 순간 속으로 복잡한 웃음이 지어졌다. 남성해방이라니!

여성으로 태어난 내가 내 삶에 드리워진 미덕이란 이름의 질서들이 남성과 달리 차별적이라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이래, 그 차별이 속박이라고 확신하게 된 후에, 이런 차별을 역사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게 하고 심지어 세련되도록 기여한 여러가지 기제들에 대해 분노를 넘어 슬픔을 느끼던 때에도, 나는 남성해방을 생각하진 못했다. 남성해방이라면 당연히 여성으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칭적인 대상에 대해 억압받고 차별받고 존재가 부당하게 폄훼될 때, 한쪽에서 해방을 위해 기치를 들어왔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지주나 귀족에 대한 농노 노예 해방, 백인의 인종 차별에 대한 흑인 해방, 영토 침탈에 대한 식민지배로부터의 민족 해방 등. 모두 차별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되었건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 고유성에 대해 간섭하지 말고 함부로 재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리하여 ‘평화공존’하자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억압받는다고, 그래서 해방이 필요하다고 목숨까지 내놓고 ‘덤비는’ 쪽의 갈망에는 ‘인간은 평등하다’는 평화사상이 깔려 있었다. 이런 평화사상은 자연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생명으로서의 인간이 터득한 이치, 진리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여성해방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쯤, 여성의 삶의 현실이 자연의 이치와 맞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하던 때, 여성이 어떻게 살았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해방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남성이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젊은 남성들은 들어보지 못했을 말, 영웅은 열 계집 마다하지 않는다. 북어와 마누라는 팰수록 맛이 있다. 아녀자의 목소리가 담 밖을 넘으면 집안이 망한다. 딸은 출가외인이라, 잘 길러 남의 집으로 보내야 한다. 하늘에는 두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집안에는 단 한 사람의 가장만이 존재한다. 가장의 뜻에 따라야 한다. 가부장의 말이 법이며 가부장에게는 부끄러움이란 없다.

열 계집 마다하지 않는 능력자 영웅에게 일부일처제가 가당키나 할까. 그러니 여기저기에 남자, 남편들을 위한 성매매업소들이 있어야 했고 전쟁터엔 군인 위안부 시설이 있어야 했다. 모두가 선망하는 남성들의 성적 능력을 과시하는 풍속으로 여성은 두개의 집단으로 나뉘었다. 궁궐에는 왕을 위한 예비 아내들이 상궁이란 이름으로 수천명에 이르기도 했다. 아무리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고고한 처신의 선비들은 기생 여자와 더불어 풍류를 즐겼다.

며느리나 아내를 맞을 때, 우선순위 중 높은 항목엔 ‘엄격한 부친 밑에서’라는 말이 찬사로 따랐다. 여성이 지켜야 할 법도나 예절의 첫번째 덕목은 ‘순종’. 순종하지 않고, 생활의 태도에 반항기가 있거나 타고난 존재의 고유한 정체성이 드러나면 마치 벼리지 않은 쟁기처럼 쓸모가 낮거나 없게 여겨졌고, 들판에서 생긴 대로 먹고사는 짐승에 빗대어 낮춰 보았다. 절대로 상종해선 안 될 인간쓰레기로 여겨졌다.

아내는 단지 가장이 있는 집에서 아이 낳는 능력을 발휘해서 다음 세대에 가장이 되고 나라의 대들보가 될 군인으로서의 재목인 아들을 낳아야 했다. 그것이 첫번째 덕목이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아내의 고통은 거의 삶이 지옥이었다. 궁중 여자들의 암투나 가정의 본처와 첩실의 고통도 이러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아내는 남편이 싫어하면 내쫓겼다. 이혼은 요즘에 흔해진 말이고 반세기 전에도 그냥 내쫓기는 아내, 어머니들이 있었다.

여성이 해방되기를 갈망했던 원인들을 찾자면 끝이 없다. 역사적으로 남성이 지배자가 되고 지배자 남성에게 수직적으로 위계질서를 잡는 문명이 세련되어지는 과정 전체가 해방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남자들은 이 편향된 수직적 위계질서로부터 해방을 말하지 않고(물론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여성을 남성과 함께 인간으로 본 경우도 있었다) 남성과의 차별적 규범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여성들에게서 불쾌감을 느낄까.

언젠가 누구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가톨릭 성당에 가지 않는 이유로, 거기에선 여자인 성모 마리아를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집트의 파라오 중에는 여성이 있는데 그 얼굴을 교묘하게 남성으로 보이게 꾸몄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중국에서 만든 드라마 중에 진나라를 다룬 것이 있어서 흥미롭게 보았다. 드라마 속에 숨은 의미들이 있을까 싶어 여러번 보았고 특히 진나라 시황제가 되는 영정의 등장부터는 더 많이 보았다. 특별한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드라마에서의 영정, 그는 어린 날, 볼모로 조나라에 가서 살 때 모진 고초를 당하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천하가 통일되어야 뺏고 빼앗기는, 죽고 죽이는 잔혹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심을 이루어 그는 통일 진나라를 세웠다. 땅만 통일한 것이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통일했고 그중에 하나가 사상을 통일한 것이다. 나머지는 불태웠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불태워진 서적들 속에 들어 있었을 다양한 사상들을 생각했다. 평등사상도 있었을 것이다. 모계 사상도 있었을 것이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 이해 범위에서 안정을 취하도록 하는 주술서 같은 것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여튼 남성 가부장의 강력한 지배를 아름답고도 웅장하게 펼치게 독려하는 사상은 살아남고 세련되어졌을 것이다.

내가 한낱 소설가의 직관에 의지한 채, 잘 알지 못한 부분에 대해 이렇게 길게 써 내려온 것은 바로 이 지점에 ‘남성해방’의 요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주위에서 만나게 되는 따뜻한 남성들은 양성의 역할이 분리되기 이전의 인간의 모습이 있다. 인간으로 서로 부대끼고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산다. 여성은 그런 남성으로부터 억압이나 폭력을 느끼지 않는다. 해방된 남성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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