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전 학살 당한 부친 ‘진실규명’ 결정, 감격스럽고 벅차”
최영희(76)씨의 아버지 최판성(족보명 최병상, 1919년생)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음력 10월5일에 경찰에 끌려가 학살당했다. 최씨는 아버지의 생일도 음력 10월5일이라 흔치 않은 우연이라고 생각해왔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5일 오후 열린 제90차 전체위원회에서 ‘전남 영암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희생자 75명에 대해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을 내렸다. 아버지 최판성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지 74년 만에 드디어 그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진실규명이 내려진 11월5일을 음력으로 헤아려보니 역시 10월5일이었다. 생일·기일·진실규명일이 음력으로 모두 같은 날인 셈이다. 최영희씨는 “날짜가 참으로 묘하다”면서 “이제 자식 된 도리를 다한 것 같아 감격스럽고 벅차다”고 말했다. 진실규명 결정 다음 날인 6일 아침, 경기 고양시의 한 카페에서 최영희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전쟁통에 부역자로 몰렸다. 일제 강점기 일본에 건너가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을 다니다 해방 직후 고향 영암으로 돌아와 덕진군 덕진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때였다. 넉넉한 집안 환경이 아니었던 아버지가 어떻게 일본에 건너갔는지는 아는 바 없다. 그저 물통 나르는 심부름을 하며 돈을 모아 상고에 진학했다고만 알고 있다. 가족들은 1950년 음력 10월5일(11월14일) 아버지가 덕진초등학교에서 경찰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갔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아버지 주검도 찾지 못했다.
“스무살 때 처음으로 어머니(신봉점, 1930~1998)가 말씀을 해주셨어요. 경찰의 호출을 받고 나간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당신의 장모(최씨 외할머니)가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아버지 양복을 들고 영암은 물론 목포와 군산까지 찾으러 쏘다니니까, 아버지 동료 교사가 귀띔을 해주더래요. ‘그동안 마음이 아파 말하지 못했는데, 나도 최판성 선생과 함께 덕진국민학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다른 줄에 있었다. 최판성의 줄에 있던 사람들은 모조리 다른 데로 끌려가 총살당했다’고요.”
5일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영암 민간인 희생자 75명 규명키로
초교 교사 재직하던 아버지 최판성
1950년 11월 경찰에 끌려가 총살 당해
신청 3년9개월 만에 결정 끌어내
“아직도 아버지 그리는 소녀 할머니죠”
아버지에 대한 진실규명은 김광동 위원장이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들을 부역자로 모는 분위기 속에서 지연됐다. “아버지가 같은 전주 최씨 중에 좌익활동하던 사람들과 어울렸다는 모략을 받았다”는 참고인 진술과 여러 증언이 있었지만 충분치 않았다. 결국 하나뿐인 동생 최훈열(74)씨의 광주 학강초등학교 학적부가 큰 힘이 됐다. “6·25사변으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외조모와 편모슬하에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5학년 담임선생의 기록. 최씨는 “전철 안에서 조사관에게 처음 그 내용을 전해 들었을 때, 역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내내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최영희씨는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 용산마을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광주로 이사 왔다.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아비 없으니 교육을 더 잘 받아야 한다”면서 밤에 이삿짐 트럭을 타고 대도시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광주에서 하숙을 치며 최씨 남매를 키웠다. “’행동 바로 하지 않으면 후레자식 소리 듣는다, 행실을 바로 하라’는 말씀을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들었어요. 지금도 외할머니 훈육에 감사드려요.”
최씨는 현재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유족회 실무자로서 지난해 5월부터 2주에 한 번씩 열리는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를 빠지지 않고 방청하며 회의 내용을 기록해 유족회 누리집에 올려왔다. 영암군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 진실규명 신청을 한 건 2021년 2월의 일이다. 2022년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4차에 걸쳐 영암 군경 민간인 희생사건 278명이 진실규명을 받는 동안 아버지 최판성의 이름은 계속 빠졌다. 초조하지 않았을까. “목을 매고 기다리지는 않았어요. 여건이 되면 되겠거니 했는데…그저 감사할 뿐이죠. 공공기관을 통해 아버지가 공권력에 희생된 사실을 인정받아 기쁠 따름입니다.”
1950년에 두 살이었던 최씨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면 믿어줄까요? 아버지를 꿈에서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한 번도 안 나왔어요. 제 나이가 이제 70대 후반을 향하는데, 아직도 아버지를 그리는 소녀 할머니랍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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