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그린벨트가 '미래세대 유산'이라면

이지용 기자(sepiros@mk.co.kr) 2024. 11. 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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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서울 집값의 미스터리 중 하나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데도 엄청나게 올랐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정부가 12년 만에 서울 서초구 그린벨트를 풀어 신규 택지를 조성해 2만가구를 공급하고 이 중 절반은 신혼부부 장기전세주택으로 배정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지금의 중장년 세대는 부모들은 자식을 많이 낳았지만 본인들은 자녀를 너무 적게 낳은 세대다.

경실련의 말처럼 그린벨트가 미래 세대를 위해 물려줄 유산이라면 지금이 '중히' 크게 쓰일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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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출생 국가적 위기 상황서
그린벨트 신성불가침 땅 아냐
서초 신혼부부용 전세 1만호
미래세대에 중히 크게 쓰는것

지난 10년간 서울 집값의 미스터리 중 하나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데도 엄청나게 올랐다는 것이다. 2014년 1000만명을 넘던 서울 인구가 지금은 935만명이다. 일산신도시 전체 인구 규모에 맞먹는 인구가 사라졌는데도 집값은 두 배가 됐다. 원체 낮았던 자가보유율, 화폐 가치 하락, 가구 분화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생활 속 확인되는 요인 중 하나가 젊은 층의 내 집 마련 시기가 '확' 당겨졌다는 것이다.

주변의 직장 후배, 일가친척 중에서 MZ세대 상당수가 결혼과 동시에 집을 사고 있다. 그때에 비해 임금이 엄청 오르진 않았으니 대부분 '영끌'이다. 내가 첫 집을 마련한 시기는 결혼 5년 차였고 나보다 4~5학번 위 세대 선배들은 대부분 10년 차 가까이 돼서 첫 집을 장만하는 게 보통이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더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덕선이네는 2층 집에 딸린 별채에 세를 들어 살다 덕선이가 대학에 진학할 즈음에 판교로 내 집을 마련해 이사를 갔다. 내 집 마련 시기가 지금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늦었던 셈이다.

내 기억상 내 집 마련 시기가 확 당겨진 시발점은 노무현 정부 때다. 이전엔 전셋값이라도 안정적이었는데, 뛰는 집값에 전셋값까지 커플링이 되니 우리 X세대부터는 사는 것 말곤 답이 없었다. 지금 MZ세대는 우리보다 마음이 훨씬 조급하고 불안해졌다. 서울에서 새집은 사실상 '씨'가 마르고, 재건축되는 새집도 지금 소득수준으론 대출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특정 지역을 제외하면 수십 대 1 정도이던 서울 지역 청약 경쟁률은 수백 대 1이 기본이 됐다. 취업 기회와 마찬가지로 주거 기회의 문도 좁아지면서 비용마저 폭등하니 자연스레 초저출생이란 결과로 귀결된 것이다.

지난 5일 정부가 12년 만에 서울 서초구 그린벨트를 풀어 신규 택지를 조성해 2만가구를 공급하고 이 중 절반은 신혼부부 장기전세주택으로 배정한다고 발표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환경단체들은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놔야 할 땅"이라며 "투기만 부추긴다"고 맹비난했다.

1971년 도입됐던 그린벨트의 출발은 남북의 긴장 관계 속에서 도심 내 군사적 목적을 겨냥했고, 이후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묶고 풀고 제멋대로였다. 그린벨트가 생겨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제도는 시대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녹지 보호'라는 초기 설정에 고착돼 있다. 이 고정관념은 주택 공급의 걸림돌이 되었고, 도시의 효율적 사용도 가로막고 있다. 이제 그린벨트를 단순히 신성불가침으로 보는 이념적 접근을 넘어, 실용적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국가 소멸이라는 중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린벨트를 풀어 짓는 2만가구 중 절반 이상을 신혼부부층에게 배정한 것은 어떤 저출산 대책보다 파격적이라고 본다. 청년기본소득으로 '푼돈'이나 쥐여주자는 말이나, 30세 이전에 아이 셋을 낳으면 병역을 면제하겠다는 허황됨과 비교해서 말이다.

1만가구 넘는 강남 물량을 청년·신혼부부 물량으로만 배정하다 보니 지금까지 꼬박꼬박 청약을 넣었던 중장년층은 불만도 있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지금의 중장년 세대는 부모들은 자식을 많이 낳았지만 본인들은 자녀를 너무 적게 낳은 세대다. 이런 문제가 연금 고갈을 비롯해 여러 가지 국가적 위기를 불러오는 데 한몫했다. 미안함이 있다면 비판과 시기보다 박수를 쳐줘야 한다.

어쩌면 이번 서초지구 그린벨트 해제가 서울의 녹지를 풀어 신도시급으로 주택을 대거 짓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경실련의 말처럼 그린벨트가 미래 세대를 위해 물려줄 유산이라면 지금이 '중히' 크게 쓰일 타이밍이다.

[이지용 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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