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일 '아파트'에서 로제의 'APT.'까지, 대한민국 대중문화 속 아파트

박진규 칼럼니스트 2024. 11. 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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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T.’는 여전히 사랑 노래인 동시에, 아파트에 대한 노래다
'APT.' 뮤직비디오 캡쳐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글로벌 K팝그룹 블랙핑크의 로제와 레트로한 보컬로 21세기를 사로잡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부른 K팝 'APT.'는 199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펑키하고 가벼운 록 사운드를 레퍼런스로 삼았다. 여기에 한국 사람에게 익숙한 '3, 6, 9 게임'이나 '아파트 게임'의 멜로디를 중독성 있는 훅으로 사용한다. 실제 노래에서도 처음에 로제가 'APT.'가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게임'이라는 걸 한국어로 알려주면서 노래가 시작한다. 'APT.'의 뮤직비디오 역시 단순한 핑크빛 화면이지만 중간 VHS 비디오테이프 화면 같은 효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요소들 덕에 이 경쾌한 팝 음악은 1990년대와 2020년대를 흥미롭게 오가는 콘텐츠처럼 다가온다. 당신이 1980년대 청춘을 보냈건, 1990년대에 청춘을 보냈건, 지금 2024년의 청춘이건 이 노래 주는 단순한 에너지와 유쾌한 분위기에 금방 취할 수밖에 없다.

'APT.' 뮤직비디오 캡쳐

하지만 한국대중문화에서의 '아파트'란 시대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다. '아파트'의 화려한 등장은 1982년 윤수일이 발표한 노래 '아파트'일 것이다. 한국 가요계에서 소위 뽕짝과 결합한 '뽕키'음악과 '뽕짝디스코'의 유행이 지난 후에 등장한 '아파트는 신선하고 세련된 베이스와 기타가 일품인 록 음악 베이스의 가요다. 40년 넘은 지금까지 '아파트'는 각기 세대가 다른 수많은 아빠들의 '18번'이며 역시나 언제 어디서든 흥을 돋을 수 있는 노래다.

하지만 '아파트'의 가사를 음미하면 그렇게 흥만 넘치는 건 아니다. '아파트'는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가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며, 전화 목소리로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아파트다.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아파트가 이제 막 곳곳에 지어지던 시기였다. 새로운 방식의 주거형태였고, 아파트의 가치에 대한 장밋빛 환상과 불안이 겹쳐 있던 때였다. 또한 낯설어서 흥미롭지만 친숙한 형태의 마을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누군가를 처음 사랑하는 감정의 시작과도 비슷하다. 그렇기에 '아파트'는 사랑 노래인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의 아파트 사랑이 처음 시작하는 시기의 노래인 셈이다.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기나긴 아파트에 대한 짝사랑 시작된다.

가수 윤수일 / 피스트레인 사무국 제공

하지만 한국 드라마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아파트는 사랑받는 공간은 아니었다. 그 시절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대가족 가치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대가족이 거주하는 단독주택 거주지가 드라마의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오히려 1990년대 초반에는 아파트에 대한 비판을 담은 드라마도 있었다. 1991년 MBC 주말연속극 <산 너머 저쪽>이 그런 경우다. <산 너머 저쪽>은 서울의 서민동네에 거주하던 가족의 일상을 다루는데, 후반부에 이 가족은 아파트촌으로 이사를 간다. 가정주부인 여주인공은 정감이 넘치는 서민동네에서 아파트로 이사 후에 소외된 감정을 느끼면서 점점 우울증이 깊어간다. 이 드라마에 아파트는 이웃 간의 정이 단절된 폐쇄된 공간으로 묘사된다.

MBC 드라마 '아파트' 스틸

반면 1995년의 MBC 주말극 <아파트>에서 아파트는 이웃끼리 새로운 방식으로 교류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아파트>에서의 이웃들은 평범한 구성의 가족 구조, 신혼부부 가정, 싱글 여성들이 함께 사는 세대 등 다양한 형태로 묘사된다. 드라마 <아파트>는 각기 성향이 다른 방식의 세대 구성원들이 아웅다웅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드라마 <아파트>는 아파트를 아예 주제로 삼으면서 새롭게 변화한 이웃들의 모습을 드라마로 포착하려 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때도 <아파트>는 KBS의 <목욕탕집 남자들>에 밀려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목욕탕집 남자들>은 한국 가족극의 틀을 만든 김수현 작가의 대가족 코믹물이었다. 이미 현실계에서 아파트는 한국인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그 시대 시청자들은 많은 가족이 북저거리는 형태는 드라마를 선호했다. 이후에도 단독주택에 모여 사는 대가족 구성은 현실에서는 사라져도 드라마에서는 판타지처럼 남아 있게 된다. 심지어 지금도.

'APT.' 뮤직비디오 캡쳐

그렇다면 2024년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는 어떨까? 얼핏 'APT.'의 노래 가사는 랜덤게임을 배경으로 한 장난스런 플러팅 노래 같은 느낌이 든다. 너도 나를 원하고 있고, 너도 지금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니 만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APT.' 역시 현실의 아파트에 대한 노래임은 틀림없다.

지금의 2~30대에게 아파트는 윤수일 시대의 '아파트'처럼 환상의 공간도 1990년대 드라마 속 공간처럼 낯선 주거형태도 아니다. 지금의 세대에게 아파트 단지는 날 때부터 있던 고향 같은 곳이다. 하지만 그 고향이 과거와 달리 은근히 얄밉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곳이 아니고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마치 랜덤게임처럼 말이다. 너무나 친숙한 대상 같지만, 만나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쉽게 손을 뻗어 잡을 수 없다. 잡으려고 달려가고는 있지만 언제 만날지 알 수 없다. 결국 영혼을 끌어올려 잡아도 천국이 될지 지옥이 될지 알 수 없다. 이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깊은 밤 고뇌하기보다는 잠은 내일 자고, 일단 오늘밤은 건배하며 달리는 수밖에. 그렇기에 2024년의 'APT.'는 여전히 사랑 노래인 동시에, 아파트에 대한 노래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APT.'뮤비, 피스트레인 사무국,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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