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차별화' 실패로 정권 심판 못 넘어…흑인·라틴계 지지도 침식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대선에서 패배하며 결국 경제 관련 정권 심판론을 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가에 대한 불만과 성별 격차가 혼합되며 흑인 및 라틴계 등 주요 지지 기반도 침식됐다.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각)부터 대선 당일까지 12만 명 이상의 미국 전국 등록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AP보트캐스트 여론조사를 보면 가장 많은 유권자(39%)가 꼽은 미국이 직면한 제일 중요한 문제는 경제였다. 그 다음으로 많이 꼽힌 문제는 이민(20%)이다. 두 문제 모두 다수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이 더 잘 처리할 것으로 본 분야다. 해리스 부통령의 강점으로 꼽힌 임신중지권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은 유권자는 11%에 불과했다.
여론조사분석업체 파이브서티에이트(538) 자료를 보면 대선 전날인 4일 기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지지율은 38.5%에 불과하다. 이는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분석한 1938~2024년 미국 대통령 평균 지지율인 52%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유권자들의 바이든 정부에 대한 핵심 불만도 물가다. 코로나19 대유행 여파에서 반등하기 위해 투입한 재정,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급등한 에너지 가격 등 바이든 정부에선 물가 상승을 주도한 외부 요인이 많았는데, 현재는 물가상승률이 2%대로 안정됐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이미 오른 물가에 대한 고통을 호소해 왔다.
이 상황에서 올해 7월 후보로 등장한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정부와 차별점을 부각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그대로 정권 심판에 끌려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6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의 한 보좌관은 해리스 부통령 캠페인의 운명은 인기 없는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이미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결별하고 다른 정책을 제시하며 변화를 상징하는 후보로 나섰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신은 한 민주당 기부자가 바이든 대통령이 더 빨리 경선에서 물러났어야 한다고 뒤늦게 불만을 토로했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정부에 대한 불만이 큰 상황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내놓았던 "낙관주의", "기쁨" 등이 유권자들의 마음에 다가서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가에 대한 불만은 라틴계 지지율을 침식하기도 했다. AP보트캐스트에 따르면 라틴계 유권자 56%가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했는데 이는 2020년 같은 조사에서 63%가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 데 비해 줄어든 것이다. 6일 미 CBS 방송도 출구조사 초기 결과에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라틴계 지지율이 53%로 지난 대선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65%)보다 줄었다고 보도했다.
6일 CBS는 경합주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 라틴계 유권자들이 인플레이션을 포함한 경제 상황을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이유로 꼽았다고 전했다. 주민 미구엘 가르시아는 방송에 많은 히스패닉 가정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가격, 음식, 모든 게 (가격) 상승"했고 트럼프가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해" 그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성별 격차가 결합하며 굳건한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흑인 지지율도 흔들렸다. AP보트캐스트에 의하면 이번 선거에서 흑인 유권자들의 83%가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했는데 이는 같은 조사에서 2020년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91%였던 데 반해 줄어든 것이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흑인 유권자 지지는 2020년 8%에서 올해 16%로 두 배로 늘었다.
<AP>는 45살 미만 흑인 청장년 남성들이 이러한 변화를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AP보트캐스트에 따르면 이 연령대 흑인 남성 거의 10명 중 3명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투표했는데 이는 2020년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라는 것이다. 통신은 라틴계 남성의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투표도 50% 가량으로 2020년 바이든 대통령을 10명 중 6명이 지지했던 데 반해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성차별적 인식으로 인한 흑인 남성들의 여성 대통령 기피는 민주당이 인지한 문제 중 하나로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 전 대통령은 유세에서 흑인 남성들의 "여성을 대통령으로 두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직접적으로 지적하고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러한 결과에 힘입어 공화당 여론 조사원 휘트 아이레스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을 소득 수준 상위층보다 하위층의 관심을 더 끄는 다인종, 노동계급 정당으로 재편성했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정부의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대응도 해리스 부통령 낙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로이터>는 특히 무슬림 인구가 많은 경합주 미시간에서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반발이 컸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통신은 해리스 부통령이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확실한 거리를 두지 않은 데 실망했다는 의견이 무슬림 및 아랍계 유권자들 사이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통신은 해리스 캠페인이 결국 무슬림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 몇 주간 미시간에선 디트로이트의 흑인 유권자 및 노동조합원에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마지막 몇 주간 무슬림 유권자들에 적극 구애했다.
선거를 6주 앞두고 경합주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등을 덮쳐 2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허리케인 헐린도 바이든·해리스 정부의 재난 대응에 대한 신뢰를 깎아 선거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가 재난 기금을 이민자를 돕는 데 썼다는 거짓 주장을 퍼뜨리며 불신을 키웠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를 보면 해리스 부통령은 6일 모교인 하워드대에서 연설을 통해 "패배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재생산권, 총기폭력, 민주주의, 법치 등을 언급하며 "이 캠페인을 촉발한 싸움에선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나는 종종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때로 싸움엔 시간이 걸린다. 그게 우리가 이길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AP> 통신을 보면 미국 동부표준시 기준 6일 오후 10시54분께 애리조나주와 네바다주를 제외한 미국 대부분 주에서 승자가 결정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에 필요한 270명을 넘는 선거인단 295명을 이미 확보했고 해리스 부통령은 226명 확보에 그쳤다. 득표수로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 시각까지 7256만841표(50.9%)를 얻었고 해리스 부통령은 6787만8826표(47.6%)를 얻어 선거인단뿐만 아닌 유권자 투표 수에도 앞서고 있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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