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사진지문] 구르미 그린 그림

오상민 사진작가 2024. 11. 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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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건네준 작별 선물

# 수목원 촬영 건으로 지방을 다녀왔습니다. 새벽부터 구름이 짙게 낀 궂은 날입니다. 햇살이 포근하게 감싼 숲의 풍경을 담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입니다. 조금씩 철수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하늘은 통 열리지 않습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립니다. "좀 열려라. 열려라." 간간이 구름 사이로 태양이 얼굴을 내밀 때마다 촬영해 보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초조합니다.

# 기차 시간이 다 돼갑니다. 이젠 아쉬워도 어쩔 수 없습니다. 장비를 정리합니다. 카메라와 렌즈를 분리하고 하드 캐리어 가방에 차곡차곡 넣고 잠급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도착 시간을 확인합니다. 시간이 빡빡합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 트렁크에 장비를 싣고 있는데, 바람이 몸을 스칩니다. 습관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하늘이 열려 있습니다. 해가 지는 반대편 구름에 붉은 햇살이 반사돼 나무에 걸려 있습니다. 구름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리해 집어넣은 카메라를 다시 조립하기엔 늦을 것 같습니다. 가방에 주머니에 넣어둔 콤팩트 카메라를 재빨리 꺼내 찍습니다. 스마트폰으로도 찍어봅니다. 바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름은 그렇게나 빨리 나무를 떠납니다.

# 사진을 확인해 봅니다. 오래된 팽나무에 '구르미 그린 그림'이 걸렸습니다. 솜사탕 같기도 하고 봄날의 화려한 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평범해 보이던 고목이 하늘과 구름으로 신비한 존재가 됐습니다. 종일 날씨 탓에 마음을 졸였던 제게 하늘이 주는 작별 선물 같습니다. 종일 하늘에 삐져 있던 마음도 그렇게나 빨리 풀립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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