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뇌관’ 제대로 제거하기[시평]
부동산 PF 금융 노출만 220兆
핵심은 너무 많은 ‘무늬만 PF’
시행사 자기자본 부족도 문제
시공사의 브리지론 보증 금지
제3자 보증 비율도 절반 축소
철저한 사업성 평가가 출발점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의 강도가 점차 세지고 있다. 원래 부동산 PF는 담보 능력이나 신용도가 아닌 사업성만을 고려하는 비(非)소구 대출이다. 특정 사업의 자산 이외에 추가 담보나 보증인을 요구하지 않고 담보물의 범위 내에서만 변제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주로 고위험·고수익인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이 대상인데, 위험이 특정 프로젝트에 국한돼 만일의 사태가 발생해도 경제의 다른 부분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최소화된다. 20세기 초 파나마 운하의 건설에서 시작됐다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와 같은 형태가 갖춰진 것은 1970년대 북해 유전 개발 이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당시 고금리의 여파로 수많은 시행사가 도산하자 위험을 사업장별로 분산시킬 목적으로 부동산 PF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2010년 무렵부터 저금리와 부동산시장 호황 등으로 빠르게 증가한 부동산 PF의 최근 규모는 약 134조(兆) 원이며, 여기에 보증 등을 포함한 금융 익스포저는 220조 원에 달한다. 다른 대출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PF 관련 크고 작은 문제가 부동산 경기 변동 등에 따라 순환·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부동산 PF 사업장의 문제가 그 사업장에 국한되지 않고 연쇄적으로 증폭돼 경제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이 현실이다. 무늬만 부동산 PF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데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22년 레고랜드 사태, 2023년 태영건설 워크아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금융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사업성 재평가를 통해 정상 사업장은 적절하게 지원하고 부실 사업장은 재구조화하는 등의 연착륙 방안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부동산 PF의 구조를 원래의 의미에 충실하게 가져가는 것이다. 사업장별 비소구 대출이 부동산 PF의 핵심인데 우리나라는 이와 거리가 멀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행사들의 자기자본비율은 총사업비의 3% 정도인데, 이는 주요 국가(30∼40%)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자기자본이 턱없이 부족하니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제3자 보증에 과도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시공사에 상환보증과 책임준공확약을 요구하는데, 시행사가 PF를 상환하지 않으면 시공사가 대신 상환하는 것이 상환보증이고, 준공 일자를 맞추지 못하면 시공사가 PF를 떠맡는 것이 책임준공확약이다.
개별 프로젝트의 사업성만을 평가해서 하는 PF가 아니라 사실상 시공사의 신용과 자산을 전제로 하는 기업 대출인 셈이다. 담보에 기초한 기업 대출임에도 불구하고 비소구 대출에서 요구하는 정도의 광범위하고 철저한 사업성 평가를 하는지 의문이다. 외국의 PF 연체율은 1% 정도인데 우리나라의 PF 연체율은 최근 3.6%까지 급상승했고, 증권사의 연체율은 13.7%에 이른다. 이름만 같고 내용이 전혀 다른 무늬만 부동산 PF가 초래한 결과다.
부동산 PF 사업장마다 모두 보증을 요구하므로 시공 건수가 많은 대형 시공사일수록 보증 건수 및 금액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최근 24개 주요 건설사의 부동산 PF 채무보증 규모는 약 40조 원인데 책임준공확약을 포함하면 약 126조 원까지 늘어난다. 부동산 경기침체, 고금리 등과 같은 거시경제적 요인들은 모든 부동산 PF 사업장에 공통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므로 대형 시공사일수록 더욱 과중한 채무 부담에 직면하게 된다. 이것이 최근의 부동산 PF 사태가 발생한 주요 원인의 하나다.
부동산 경기변동 및 거시경제 상황에 따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부동산 PF 사태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원칙에 충실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부동산 PF는 건설비가 지출되는 시점에 시작되는 것이 원칙이나, 우리나라는 토지 매입 단계에서 브리지론의 명목으로 시작된다. 브리지론도 시공사들의 보증을 요구하는데, 금리는 본PF의 금리보다 훨씬 높다. 사업 초기의 인허가 및 보상 협상 등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브리지론의 시공사 보증을 금지하고 본PF의 제3자 보증 비중을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0대 소녀가장 성폭행하다 급사…천벌 받은 직장 상사
- [속보]“결과 받아들이지만 우리가 원한 결과 아냐…싸움 포기하지 않을 것” 해리스, 승복 연
- “‘조기 승리선언’ 트럼프 일부 참모들 건의”
- ‘초박빙’ 예상 깬 ‘싱거운 승부’…미국 대선 ‘여기’서 끝났다
- [단독]김동연·김경수 ‘극비 독일 회동’…이재명 1심 선고 앞두고 정국 논의
- 300명 사살 우크라 드론조종사…게임만 하던 20대 아이
- 카페 천장 뚫고 끼인 남성… 온몸엔 배설물 ‘범벅’
- [속보]비트코인 7만5천 달러·가상자산 급등
- “6억도 받는다더라”…KT 희망퇴직 2800명 신청
- “여자가 날뛰는 것 꼴 보기 싫어” 말했다가 일가족 행방불명된 北 주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