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도 비켜간 트럼프의 귀환… 더 강력한 ‘청구서’ 날아온다
"많은 사람들이 신이 내 목숨을 살려준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미국을 위대하게 회복시키기 위해서였고, 이제 그 사명을 완수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이 11월 6일(이하 현지 시간) 승리를 선언하며 한 말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7월 13일 유세 도중 총격을 당한 직후 주먹을 움켜주며 말했던 "싸우자(fight)"를 다시 언급하며 "미국을 우선하는 것부터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이유는 암살미수 사건에서 보여줬던 불굴의 모습이 '마가' 등 지지층은 물론 국민들에까지 어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마가는 트럼프 당선인이 2016년 대선에서 내걸었던 구호인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딴 것으로 그의 핵심 지지층이다. 마가의 주축은 농업이나 공장 등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저소득·저학력 백인층이다. 2016년 대선 당시 마가는 러스트 벨트(rust belt·미국 북동부 제조업 쇠퇴 지역)에서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재선에 실패했지만 마가의 영향력은 오히려 확대됐다. 특히 마가는 암살 미수 사건을 계기로 더욱 결집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의 승부를 좌우했던 7개 경합주를 석권한 것도 마가 덕분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앞으로 마가를 앞세워 국내외적으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에 대한 모든 것을 고칠 것"이라면서 "이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게 해줄 것이며, 미국의 진정한 황금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역사에 여러 기록을 세우게 됐다. 내년 1월 20일 취임식 때 나이가 78세 219일로, 취임일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지금까지는 2021년 취임할 때 78세 61일이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고령이었다. 게다가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 다음 선거에서 집권에 성공한 두 번째 대통령이 된다. 그로버 클리블랜드 전 미국 대통령(22대 1885~1889년, 24대 1893년~1897년 재임)에 이어 132년 만이다. 물론 미국 헌법상 대통령은 3선이 불가능한 만큼 향후 연임은 불가능하다.
대통령 당선인이 사법 리스크에 직면해 있는 것도 미국 역사에서 사상 처음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형사 기소된 사건은 총 4건이다. 이 가운데 성 추문 입막음 혐의 재판에서는 배심원들의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 이 재판을 관할하는 뉴욕주 대법원은 당초 9월에 형량을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피고인이 대선 후보인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 대선 이후로 형량 선고를 연기했다. 앞서 연방 대법원은 7월 전직 대통령의 재임 중 공적 행위에 대해 폭넓은 형사상 면책 특권을 인정하는 결정을 하면서 이들 사건과 관련한 재판이 1심에서 기각(기밀 반출 사건)되거나 대선 이후로 공판 일정이 연기(대선 뒤집기 사건)된 바 있다. 이에 특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위가 '공적 행위'가 아닌 '사적 행위'라는 취지로 공소장을 변경한 상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에서 승리하면 취임 즉시 자신을 기소한 특검을 해임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24시간 내 전쟁 끝내겠다"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 입성 후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신속하게 시행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세계의 경찰'과 '자유 민주주의의 지도국'을 자임하며 국제분쟁에 개입해온 미국의 외교 노선은 향후 4년간 상당히 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2년 9개월간 계속돼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될지 중대한 기로에 놓일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내가 대통령이라면 24시간 내 전쟁을 끝내겠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즉각 종식할 자신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구체적인 방법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자금 지원을 멈출 수 있다.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에 영토를 양도하도록 압박하거나 나토 가입 포기를 종용할 수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분도 과시해온 트럼프 당선인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치를 완화하는 등 당근을 제시하면서 종전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면 자유 민주주의 진영 내 미국의 동맹 중시 기조도 트럼프 거래 중심의 관계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방위비 대폭 증액을 요구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시절 이스라엘과의 친밀한 관계를 과시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바람대로 이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선을 추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에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었다. 재임 시절 이란과의 핵 합의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을 파기했던 그는 재집권하면 이란에 제재 조치를 대폭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하마스 및 헤즈볼라와의 전쟁을 둘러싸고 바이든 대통령과 불협화음을 보였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의 역사적인 백악관 복귀는 미국의 새로운 시작"이라며 환영의 메시지를 보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집권 1기 때 3차례 만난 트럼프 당선인은 다시 과감한 톱다운(top-down)식 대북외교에 나설 수 있다. 이 경우 첨예한 갈등과 대치의 현 한반도 정세에 다시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미동맹도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의 분담 몫) 대규모 인상 요구 등으로 격랑에 휘말릴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연간 100억 달러(약 14조 원)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2026년 지불할 액수의 9배 가까운 규모다. 이 과정에서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해야 한다는 카드도 꺼내들 수 있다.
중국 떄리기 올인하나
대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거래에 능한 트럼프 당선인이 대만을 중국과의 무역이나 경제 제재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 대신 대만을 지지하는 전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만이 우리의 반도체 산업 100%를 가져갔다"면서 "대만은 우리에게 방위비를 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 당선인이 바이든 대통령이 주력해온 '반도체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폐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법은 정말 나쁜 거래"라며 "매우 높은 관세를 부과해 그들이 와서 반도체 공장을 제 돈 내고 설립하도록 해야 한다"고 공언한 바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외국 기업들에 공장을 짓는 대가로 보조금을 주는 대신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IRA에 대해 '녹색사기'라고 비난해온 트럼트 당선인은 파리기후변화협약 재탈퇴, 전기자동차 의무화 폐기 등에 나설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면 1호 조치는 국경 장벽을 더욱 높이고 불법이민자를 추방하는 것이 될 전망이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당선인은 대규모 수용소를 건설하고 전례 없는 규모의 대규모 추방을 시행하며, 국경안보에 국방예산을 투입하고 마약과 범죄 조직 구성원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법원 심리 없이 추방하는 1789년의 적대국 외국인법(Alien Enemies Act)을 부활하겠다고 공언했다"고 보도했다. 강경한 국경과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한 조치는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 복귀에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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