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온가속기 '라온' 내부 자료, 사립대 교수 논문에 '버젓이'

박정연 기자 2024. 11. 7. 10: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절차 지키지 않은 데다 출처도 누락
중이온 가속기 ‘라온’의 전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과학시설 중이온가속기(라온) 연구소의 내부 자료가 적절한 절차 없이 사립대 교수의 논문에 출처 표기 없이 게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논문 사사에 홍승우 중이온가속기연구소장도 언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투입된 연구소 내부 자료가 외부로 반출되고 논문으로 작성되는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전망이다.

6일 과학계에 따르면 라온을 다룬 종설논문 2편이 지난해 국제학술지 ‘아시아태평양물리학연합회보(AAPPS Bulletins)’와 ‘물리학회지 컨퍼런스 시리즈’에 각각 게재됐다. 종설논문은 기존 연구 결과물을 종합해 해당 분야의 최신 동향을 정리하는 논문이다. 

2편의 논문에는 연구소 내부 자료가 각각 7건씩 총 14건이 출처가 표기되지 않은 채 게재됐다. 외부에 공개된 적 없는 라온의 설계도를 재구성한 도면과 내부 실험 결과와 같은 핵심 자료도 포함됐다. 두 논문의 사사에는 모두 홍 소장의 이름이 언급됐다. 연구소 총책임자가 논문을 검수했다는 의미다. 

논문 일부에 이름이 언급된 홍승우 소장이 내부 자료 외부 반출을 승인했다면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 문제는 위원회 구성을 통한 검토와 같은 적절한 절차가 생략됐다는 점이다.

통상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경우 내부 자료가 기관 외부에서 활용될 때는 내‧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정보보안심의위원회가 활용 목적 등을 검토한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신생 기관인 만큼 아직 이같은 절차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들은 중이온가속기연구소의 상급 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 규정과도 일부 상충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연구사업관리규칙에 따르면 연구 결과로 작성되는 논문의 경우 저자의 소속기관명을 IBS로 표기해야 한다. 연구윤리 관련 일반적인 규정을 위반해서도 안된다. 자료의 출처 표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논문을 검수하는 과정에서 홍 소장이 이같은 규정을 살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계에서는 연구소 내부 자료가 외부로 나가게 된 절차를 확인하고 미흡한 사안을 보완해야 한다고 본다. 공공 연구소는 연구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큰 예산을 들여 보안 체계를 운영한다. 외부 기관과의 공유가 엄격히 제한되며 철저한 검토와 승인 절차를 거쳐 내부 자료의 외부 반출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실제 한국형초전도핵융합장치(KSTAR)를 개발‧운영하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서도 외부인 대학 교수가 연구원 내부 자료를 활용해 도면을 만들고 자신의 연구용역에 사용한 일이 문제가 됐던 적이 있다. 감사가 이뤄졌고 사전에 내‧외부인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사전에 내부 자료 유출을 검토했다는 사실이 입증된 뒤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연구자들 사이에선 도의적 책임 문제도 거론된다. 라온과 같은 대형 연구시설의 성과와 현황을 총망라하는 종설논문은 통상 연구소 소속 연구자가 작성하는 게 관례지만 이번 논문의 경우 외부 사립대 교수가 단독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출연연 원장을 역임한 한 원로 연구자는 “일반적으로 종설논문은 시설 프로젝트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연구자가 작성한다"며 "외부에서 외부자의 성과로 발표된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내부 자료 출처 누락은 연구윤리에도 맞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윤리과 관계자는 출처 누락에 대해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저촉될 수 있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논문을 작성한 연구자 소속 대학과 한국연구재단에 대한 징계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측은 "최종 결재권자인 소장의 승인을 받아 자료가 외부로 나갔기 때문에 규정은 준수했다”며 “다만 내부 자료의 외부 반출 타당성을 검토하는 위원회 등의 기구가 아직 설치되지 않아 이같은 미비점을 앞으로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도의적 책임 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내부 연구자들과 쌓인 오해와 갈등도 풀어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은 1조5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며 ‘단군 이래 최대 기초과학 프로젝트’라고 불린다. 무겁고 높은 에너지를 가진 중이온을 가속‧충돌시켜 다양한 희귀동위원소를 발견할 수 있다. 라온이 발견하게 될 2차동위원소나 희귀동위원소는 우주 생성 물질 규명, 신소재 개발, 미래 에너지원 확보, 치료 물질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5월 저에너지 구간 빔 가속과 인출에 성공한 라온은 7월부터 저에너지 실험장치인 ‘코브라(KoBRA‧되툄분광장치)를 이용한 실험에 돌입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