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미동맹에 ‘올인’해왔는데…‘미국 우선주의’ 태풍 닥쳐온다

박민희 기자 2024. 11. 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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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 있는 컨벤션센터에 나타나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쥐고 미소를 짓고 있다. 웨스트팜비치/AP 연합뉴스

‘미국 우선주의’를 더욱 높이 들고 트럼프가 돌아왔다. ‘자유주의’의 선봉장이 되겠다며 한미동맹에 올인해온 윤석열 정부의 외교에 초대형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트럼프의 재선은 한국이 지난 70여년 동안 익숙했던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대변동의 시대’ 앞에 섰음을 의미한다. 윤석열 정부가 ‘관대한 우리 편 미국’이라는 환상에 기대어 국제 정세의 냉정한 현실을 외면하고 이념에 사로잡힌 ‘네오콘’ 외교로 질주해왔지만, 트럼프 등장으로 그 토대 자체가 붕괴되었다. 그동안 북한의 핵능력은 강화되고 남북관계는 전쟁을 우려할 정도로 악화되었고, 북-러는 밀착했다.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면서 윤석열 정부가 모든 것을 걸어온 한미일 협력의 미래도 극히 불투명해졌다.

“한국은 머니 머신” 트럼프, 방위비 압박으로 동맹 흔들까

내년 1월 ‘트럼프 2.0’이 시작되면 우선 주한미군 ‘방위비’ 이슈가 한미동맹을 시험대에 오르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는 지난 4일 2026년부터 적용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에 서명했다. 협정은 2026년 분담금을 전년도 대비 8.3% 오른 1조5192억원으로 정하고 매년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을 반영해 인상하기로 했다. 현행 협정 만료가 2년 가까이 남은 상태에서 한미 정부가 이례적으로 협상을 서두른 것은 트럼프가 대폭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것이었으나, 오히려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한국은 머니 머신(Money Machine)” “(방위비 분담금으로) 연간 100억달러”를 요구할 것이라며 선거운동 내내 한국의 방위비 대폭 인상을 거론했다. 연간 100억 달러는 한미가 특별협정으로 합의한 액수의 9배 가까운 금액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6일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합의를 파기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미국 대선 결과가 어떻든 간에, 우리가 충분히 협의한 결과로서 기준점을 제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희망사항에 그칠 우려가 크다.

전문가들은 협상을 서두른 것이 오히려 트럼프의 주목을 끌어 한국을 타겟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트럼프가 협상 카드로 주한미군 감축 등을 거론하면서 한미동맹의 균열이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이 취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방위비 대폭 인상으로 끌려갈 수 있고,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대폭 감축이나 철수를 거론하며 압박할 경우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한국 핵 무장론이 크게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석열 정부가 올인 해온 ‘한미일 협력’의 동력도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미일 협력이 트럼프가 강조하는 중국 견제 목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폐기하지는 않겠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정책인 ‘한미일 협력’을 공들여 추진할 가능성은 낮다. 더구나 트럼프는 동맹에 신경쓰지 않는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미일 협력’보다는 한국에 안보 비용을 요구하는 데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조태열 외교장관과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4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서명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트럼프-김정은 다시 만나면 한국의 입장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를 상대로 핵 보유를 인정한 상태의 협상을 요구하면서, 한국의 입장을 철저히 배제하는 ‘통미봉남’을 추구하려 들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이 열렸던 2018~2019년에 비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크게 강해졌고, 남북 관계는 최악으로 한국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렵다. 트럼프가 북한의 요구대로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형태의 협상을 시작하면서, 한국의 안보 우려를 반영하지 않는 형태로 타협을 할 경우 한국의 안보 환경은 상상하기 어려운 위기에 처하게 된다.

김정섭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트럼프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한 상태에서 협상을 제안한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고, 트럼프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부분만 제거하자고 하면서 북한에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금 러시아라는 새로운 활로가 생겼기 때문에 2018~2019년처럼 미국과의 협상이 절박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가 실제로 협상에 나선다면 한국이 북미 협상을 반대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고, 우리의 입장이 반영되게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9년 2월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시작하고 있다. 하노이/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 파병, 북-러 밀착은 어디로

트럼프 등장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매개로 한 북-러 밀착에는 양면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제전략연구실장은 “러시아는 웃음을 감추고 가던 길을 갈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봉쇄를 더욱 강화해 미국 내에서 ‘현실을 직시하자’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서방연대의 결속을 와해시켜 유리하게 전쟁을 마무리하려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푸틴의 전략에 맞춰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역할도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두 연구실장은 “북한도 일단 결단을 내린 이상 소기의 성과가 필요하다. 북한과 러시아는 일단 쿠르스크에서 연합 태세를 확립하고 다른 지역으로도 북한군 투입을 검토하면서 자신들의 시간표대로 공세를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될 때 ‘공동 승전국’의 성과를 과시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공언한 대로 신속하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마무리할 경우, 북-러 밀착의 동력은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연구실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북-러 밀착이 상당 기간 지속되겠지만, 전쟁이 단기간에 끝난다면 북한이 받을 수 있는 파이는 줄어들고 북러 협력의 동력도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가, 이념 외교로 돌진해온 윤석열 외교가 트럼프 2.0 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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