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문화명소가 된 곡물창고에서 만나는 대작"
■ 글: 정승조 아나운서 ■
'인천항'.
역사적, 지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지요?
1950년 진행된 인천상륙작전의 상륙지점이었고요.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전, 세계 문물의 유입 통로였습니다.
현재는 서해안 제1의 무역항구인데요.
앞으로는 문화 예술의 메카라는 의미가 추가될 걸로 보입니다.
인천항 옆에 복합문화공간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과거 이곳은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곡물 창고였습니다.
축구 경기장의 1.4배, 그 규모만큼 전시도 알찹니다.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알렉스 카츠'의 원화 67점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아쉬운 점은 전시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알베르티나 미술관 컬렉션 : 알렉스 카츠(Albertina Museum : Alex Katz)'를 기획한 '김현정 뮤지엄엘 총괄디렉터'를 만났습니다.
▮ '알베르티나 미술관 컬렉션 : 알렉스 카츠' 展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알베르티나 미술관 컬렉션 : 알렉스 카츠(Albertina Museum : Alex Katz)'는 삶을 그리는 화가, 알렉스 카츠(Alex Katz)의 작품 세계관을 대변하는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카츠는 구상회화 영역에서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낸 작가이고요. 인물 초상에서 독보적인 회화 스타일을 선보이는 미국의 대표 화가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이번 전시에서 유화(Paintings), 드로잉(Drawings), 판화(Prints), 컷아웃(Cutouts)을 아우르는 그의 시그니처 작품들과 아내 에이다(Ada)에게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주요작을 한 자리에서 선보이는데요.
관객들에게 그의 예술 세계를 총망라 해보는 기회의 장이 될 겁니다. 카츠가 전통과 실험,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선보여 온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 알렉스 카츠의 작품을 떠올리면 일상, 클로즈업 이미지 등이 떠오릅니다.
알렉스 카츠는 1950년대와 그 이후의 영화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이 같은 관심사를 토대로 작품 활동 시에도 클로즈업 기법과 시네마스코프(Cinema Scope) 비율을 활용해서요. 영화, 텔레비전, 빌보드 광고의 심미성을 조명했는데요. 그런가 하면 자신과 가까운 가족과 친구를 그릴 때에도 보편적이고 익명적인 얼굴을 추구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카츠가 작업하는 작품 크기가 점점 커짐에 따라 실제 비율에 충실한 카툰 기법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의 비개인적이며 거리감을 드러내는 스타일과도 부합했는데요. 간결한 선을 큰 제스처로 그려내어 만들어지는 작품의 표면에서 역동적인 균형을 느낄 수 있습니다.
▮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시장이 있는 건물이 과거에는 곡물을 보관하는 창고였다고요?
그렇습니다. ‘뮤지엄엘’이 위치한 인천 ‘상상플랫폼’은 1978년 인천항 8부두에 건립된 이후 40년간 전국 곳곳에 곡물과 사료를 공급해 온 곡물창고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재탄생시킨 복합문화공간인데요.
길이는 270m, 폭은 45m에 달하고요. 면적은 1만2150㎡로 축구장 1.4배 규모에 달합니다. 곡물 창고의 기존 철골 구조를 그대로 보존해 높은 층고를 자랑하는데요. 방문객이 어디서든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자유로운 구조로 소통과 연결에 초점을 뒀습니다.
특히 천장과 벽면을 유리창으로 구성해 개방성을 높이고 내부에서도 인천 내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 오래된 곡물 창고를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바꾸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십니까.
폐곡물 창고 시절 방문했을 때부터 공간이 주는 압도감과 웅장함을 보고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에 유선방송사업자(LG헬로비전)가 합류하고 지역 기반 문화공간 조성 사업을 맡게 됨에 따라 그때의 구상을 바로 현실로 구현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인천에 집중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전국 곳곳의 다양한 지역에서 각 지역 특성을 살린 문화 사업을 확대해 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만 무엇보다 작품을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었는데요. 전시를 준비하며 각별히 신경 쓴 점은 무엇인지요.
작품과 공간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각 작품의 배치와 관람 동선을 신중히 기획했는데요.
층고가 높고 면적이 넓은 아트관의 특성을 활용, 관람객들이 알렉스 카츠의 원화를 입체적으로 느끼도록 작품을 배치한 것이 주요 관람 포인트입니다. 관람객들은 작품의 앞면과 뒷면, 위아래로 시선을 자유로이 옮기며 작품을 세밀히 감상할 수 있지요.
또한 디테일한 조명 디자인을 통해 알렉스 카츠 특유의 색채 표현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실 수 있도록 설계하여 작품이 빛날 수 있도록 연출했는데요.
뮤지엄엘 2관 아트관은 최신식의 항온항습 설비와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공간 인테리어를 구축했습니다. 작품을 항상 최상의 컨디션에서 관람하실 수 있는 국내 최고 수준의 원화 전시관이라 자부합니다.
▮ 문화 명소가 된 곡물창고에서 카츠의 원화 67점을 볼 수 있는데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알렉스 카츠의 대표작도 전시 중이지요?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대표작으로 '앤(Anne)'과 '검은 모자 2(Black Hat 2)'를 들 수 있습니다.
'앤'은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컷아웃 작품인데요. 이번에 한국에서 선보일 수 있게 되어 의미가 깊습니다. 이 작품은 카츠가 추구한 전형적인 미국 여성의 이상적 미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어 작가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검은 모자 2'는 파노라마처럼 가로로 긴 화면 구성이 특징적입니다.
이는 영화관 스크린의 비율을 차용한 것으로, 상하가 잘린 구도를 통해 헐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또한 카츠 특유의 평면적이고 단순화된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 전시 작품 중 나만의 픽을 꼽는다면 어떤 작품일까요?
알렉스 카츠의 수많은 작품 중 저는 '카버스 코너(Carver's Corner)'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강렬한 인상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데요. 초여름 저녁의 한 순간을 포착한 이 작품은 보면 볼수록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매혹적인 부분은 빛의 활용입니다.
날이 저물어가는 녹색 숲을 배경으로 한 인공조명의 연출이 마치 무대 위의 한 장면 같은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내죠. 이는 제가 평소 좋아하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연상시키는데, 그 극적인 측광 효과가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된 것 같아 더욱 흥미롭습니다.
카츠는 1960년대부터 미국 상류층의 다양한 파티 문화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기록해왔는데요.
칵테일 파티, 피크닉, 야회, 가든파티, 해변 파티 등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이 '카버스 코너'가 특별한 이유는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교감이 가장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순간적인 포즈와 표정들이 마치 실제 모임에 참석한 듯한 생동감을 전해줍니다.
▮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요?
작가 특유의 파노라마 형식 구도입니다.
빈 공간에 반사되는 빛이 관람객의 공간으로까지 확장되는 듯한 효과를 주는데, 전시장에서 이 작품을 마주하면 마치 그 모임의 일부가 된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간결한 붓칠과 매끄러운 표면 처리는 카츠의 트레이드마크이지만, 이 작품에서 그 기법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미국적 삶'의 모습은, 단순한 상류층의 일상 기록을 넘어 당시 미국인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한데요. 우리가 이 작품에 깊이 매료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런 여유로운 순간을 누리고 싶은 열망이 반영되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카버스 코너'는 형식적 완성도와 함께,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 속 세계로 자연스럽게 동화되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매번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과 위안을 받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뮤지엄엘을 찾는 관람객들께서도 이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일상의 여유와 평화를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기간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아트홀릭 독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알렉스 카츠의 작품 세계는 회화, 판화, 드로잉, 컷아웃부터 풍경과 인물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 모든 예술적 스펙트럼이 응축되어 있어 전시의 완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들은 거대한 크기와 심플한 구성 속에서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11월 17일 이번 전시가 종료되기 전, 그의 작품이 선사하는 예술적 경험을 꼭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작품의 크기가 주는 압도감과 색감이 주는 몰입감을 통해 현대 미술의 다채로운 매력을 가까이서 느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 작가 소개
알렉스 카츠는 1927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러시아계 유대인 망명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초상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며, 일상에서 마주한 인물들을 자신만의 톡득한 시각언어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모마(MoMA), 휘트니(Whitney), 테이트모던(Tate Modern) 미술관 등 전 세계 1백 개가 넘는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사진 제공: 뮤지엄엘)
■ '알베르티나 미술관 컬렉션 : 알렉스 카츠(Albertina Museum : Alex Katz)'
- 장소: 뮤지엄엘 1층 2관
- 일정: ~11월 17일
- 관람료: 유료
#충청 #충북 #세종
Copyright © CJB청주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