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궤적마다 '최초' 기록 썼던 여전사 해리스... 트럼프에 쓰디쓴 패배

조아름 2024. 11. 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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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시대]
'최초' 개척했던 해리스는 누구
인도·자메이카 혼혈로 이민 2세
27년 법조인 길 걷다 정치 데뷔
청문회 스타, 바이든 저격수 활약
최초 여성·흑인·아시아계 부통령
50세 때 결혼... 의붓 자녀들 키워
과거 아버지뻘 정치 거물과 교제도
2024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개표 결과를 지켜볼 예정이었던 미국 워싱턴 하워드대에서 환경미화원이 6일 쓰레기를 줍고 있다. 워싱턴= AP 연합뉴스

2024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인생 궤적엔 숱한 '최초' 기록들이 있다. 미 역사상 첫 여성이자 아시아계·흑인 부통령,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 그는 인종 및 성차별의 굴레를 제 손으로 하나씩 하나씩 끊어왔다. 30년 가까이 법조인으로 살다 워싱턴 중앙 정치에 뛰어든 지 8년 만에 쓴 역사다. 하지만 5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패배함으로써 쓰디쓴 경험을 하게 됐다.


모친은 인도인... "중산층 서민"이 배경

해리스는 1964년 캘리포니아주(州) 오클랜드에서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인도·자메이카계 혼혈이다. 인도인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2009년 암으로 사망)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버클리)에서 영양학·내분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유방암 연구에 매진한 과학자였다. 아버지 도널드 해리스는 자메이카 출신 흑인으로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현재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를 지냈다. 두 사람은 UC버클리에서 유학하던 중 흑인 민권 운동을 하며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해리스가 7세 때 이혼했다.

해리스는 세 살 터울 여동생 마야 해리스와 함께 어머니 손에 컸다. 인도 외교관 출신 외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모 등 외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카멀라'란 이름도 인도 문화에 자주 등장하는 '연꽃'을 뜻한다.

하지만 해리스는 자신을 '이민자 가정 출신의 흑인 여성'으로 강조해 왔다. 2019년 연방 상원의원 시절 발간한 자서전 '우리가 가진 진실-한 미국인의 여정'에서 해리스는 "어머니는 나와 여동생 마야를 확신과 긍지가 넘치는 흑인 여성으로 키우기로 결심했다"고 썼다.

가정 형편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해리스도 '중산층 서민'으로 자랐다고 강조해 왔다. 해리스는 자서전에 고교 시절 어머니가 잔디가 깔린 마당과 바비큐 공간이 있는 첫 집을 장만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첫 집 구입은) 어머니가 꿈꾸던 아메리칸드림의 모든 퍼즐을 맞추는 일이었다"고 전했다. 해리스는 '30대 싱글맘'으로 두 딸을 엄하게 키웠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어린 시절 카멀라 해리스(오른쪽)와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 여사(2009년 사망)의 모습. 해리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해리스는 2009년 사망한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 여사에 대한 그리움을 여러 차례 드러내 왔다. 해리스(맨 왼쪽)가 어린 시절 어머니, 그리고 세 살 터울 여동생 마야(가운데)와 함께 찍은 사진. 해리스 SNS

흑인 여성 최초 캘리포니아 법무장관

해리스는 '흑인들의 하버드'로 불리는 흑인 명문대 하워드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수도 워싱턴에 있는 하워드대 재학 시절 흑인 여대생 단체 '알파 카파 알파'에 몸담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유색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시위에도 참여했다.

1989년 로스쿨 졸업 후 치른 첫 변호사 시험에서 떨어졌다. 해리스는 이를 "비참하고 당혹스러웠던 일"로 기억한다. 하지만 두 번째 시험에 합격한 해리스는 1990년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카운티 지방 검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법조인 해리스는 '최초' 역사를 써갔다. 39세 때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여성 지방검사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해리스의 첫 번째 선거였다. 2011년엔 흑인이자 여성 최초로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으로 선출됐다. 열정적인 연설로 '여자 오바마'란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이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장남 보 바이든(2015년 사망)과 친분을 쌓았다. 2020년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는 부통령 후보로 해리스를 발탁하며 "카멀라는 내 아들 보의 친구로, 보는 그녀를 존경했다"며 인연을 소개했다.

1982년 하워드대 신입생 시절 해리스(오른쪽). 친구 그웬 휘트필드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유색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시위에 참여했다. 해리스 SNS
2004년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여성 지방검사장으로 취임한 해리스가 사무실 가운데 의자에 앉아 서류를 확인하고 있다. 해리스 SNS

바이든 저격수로 활약하다 부통령 발탁

워싱턴 정가에 발을 들인 건 10년이 채 안 된다. 2017년 흑인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중앙 정치에 데뷔했다. 검사 이력을 십분 활용한 송곳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가 됐다. 2018년 9월 당시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후보자 청문회가 대표적이다. 법사위원회 소속 해리스는 여성의 임신중지(낙태)와 관련해 "정부가 남성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이 하나라도 있느냐"며 캐버노를 거세게 몰아붙였고 "지금 생각나는 건 없다"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2019년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바이든 저격수'라 불리기도 했다. 과거 바이든이 인종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백인과 유색 인종 학생의 학군 간 이동을 강제하던 '버싱(busing)' 정책에 반대한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협력했던 전력을 들춰내며 공격했던 것이다. 해리스는 당시 TV토론에서 "캘리포니아에서 매일 버스를 타고 등교하던 작은 소녀가 바로 나"라며 울먹였다. 정치 새내기나 다름없던 해리스는 이 토론을 계기로 민주당 내 존재감을 확보했다. 하지만 자금난을 극복 못 하고 경선에서 중도 하차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다. 노련한 정치인 바이든은 대통령 후보가 되자 '악연'이 있었던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찍었다. 고령의 백인 남성 바이든은 50대 흑인 여성 해리스를 '전사'라고 치켜세웠다. 2020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뒤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흑인·아시아계 부통령이 탄생했다. 연방의회에 발을 들인 지 불과 4년 만이었다. 해리스 부통령의 당선 일성은 "나는 첫 여성 부통령이 되겠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였다.

해리스(오른쪽)가 2019년 7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경선 2차 TV토론에서 당시 경선 경쟁자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 발언 도중 이의를 제기하고자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다. 디트로이트=로이터 연합뉴스

'존재감 없는 2인자' 비판 시달려

백전노장 바이든에 가려 부통령으로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실없이 웃기만 하는 성과 없는 2인자'란 혹평이 따라다녔다. 부통령 재직 때 국경 문제를 전담하면서도 관련 정책에 대한 뚜렷한 성과나 청사진을 제공하지 못했다. 2021년 미 NBC방송 인터뷰에서 "(부통령으로서) 왜 아직 국경에 방문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유럽에도 가본 적 없다"고 답해 두고두고 욕을 먹었다.

올해 대선 도전은 그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고령 리스크' 논란에 바이든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면서 해리스는 대선이 4개월도 안 남은 상황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됐다. 미국 정치사에서도 전례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경쟁자는 피격 사건으로 '대세론'에 탄력이 붙은 트럼프였다.

하지만 대선 후보로 등판한 지 한 달도 안 돼 트럼프보다 4배 많은 정치 기부금을 모으는 등 '해리스 돌풍'을 일으켰다. 트럼프와는 성별부터 인종, 나이, 경력 등이 달라 "가장 대조적인 후보 간 대결"이었다. 물론 결과는 대선 패배로 마무리됐지만 그의 정치 행로는 열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멀라 해리스(왼쪽) 미국 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3월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헬스케어 관련 연설을 한 뒤 포옹하고 있다. 롤리=AP 연합뉴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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