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가르침 대로 살고 있어요”… 하늘나라에 꼭 전하고싶어[그립습니다]

2024. 11. 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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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나의 아버지 신혁균(1938~2024년) <하>
아버지가 2006년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에서 찍은 사진.

아버지는 서양미술을 전공하고 금성사, 즉 지금의 LG전자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셨다. 당시 금성사는 국내 최초로 인하우스 산업디자이너로 구성된 디자인실을 운영했었는데 아버지는 가전제품 디자인의 실무책임자까지 지내는 동안 LG전자의 1세대 수많은 가전제품을 직접 디자인하신 분이다. 가끔씩은 집에서도 새로운 TV, 라디오, 냉장고 등의 전자제품 디자인을 구상하고 다양한 펜슬과 물감, 붓을 이용하여 렌더링을 하셨다. 집에는 미술과 디자인 관련 서적이 상당히 많았고, 이 책들과 아버지의 그림, 렌더링을 줄곧 보며 자란 것은 내가 건축을 전공하게 된 기초적인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금성사에 근무하시는 1960년대 말∼1980년대 초반 사이에 해외 출장을 수도 없이 다녀왔는데 주로 디자인 박람회, 전시회 참관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1년에도 몇 번씩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미국, 유럽, 일본으로 해외출장을 가시고 돌아오시는 날이면 무슨 축제일처럼 항상 온 식구가 공항 마중을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게이트를 나오며 웃는 얼굴로 나를 안아주던 아버지의 스킨 냄새도 아른거리는 추억이 되었다. 아버지는 출장을 다녀오실 때마다 장난감을 한 보따리씩 갖다 주셨는데 특히나 일본 철제 로봇과 전 세계의 미니카를 꾸준히 사 가지고 오셨다. 당시에는 국제선이 일본을 경유하여 김포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도쿄를 경유할 때 단순히 공항에서 환승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톱오버를 통해 도쿄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한국으로 이동하는 일이 흔했다. 그러다 보니 덤으로 주어진 일본 여정에서 장난감을 사다 주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30여 대의 크고 작은 철제 로봇과 수백 대의 미니카, 어쩌면 나는 당시 전국에서 철제 로봇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던 어린이였을 수 있다.

아버지는 가끔 가족과 이웃들을 집에 모아놓으시고 해외에서 찍은 슬라이드 사진을 하얀 벽에 환등기로 비추어 보여주시며 이런저런 재미있는 외국 경험 얘기를 해주셨다. 당시엔 해외 여행이 자유로웠던 시절도 아니고 인터넷은커녕 비디오도 보급되기 이전이어서 생생한 해외여행 후기를 화면으로 보고 듣는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체험이었다. 얼마 전에 죽마고우를 만났는데 작고하신 나의 아버지를 회상하는 가운데 그 ‘슬라이드 쇼’를 통해 문화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였다. 나도 그것을 배워 필름 카메라 시절에 해외여행을 가면 슬라이드 필름으로 수백 장씩 찍어와서 프로젝터로 크게 띄워놓고 지인들과 나의 여행 경험을 나누곤 하였다.

아버지는 내가 열 살 되었을 즈음 회사를 창업하셨다. 나는 개업식에도 참석하고 아버지가 외근 다니시는 중에도 재미로 쫓아나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직장인에서 사장이 된 아버지는 일 때문에 늘 늦게 귀가하셨고 차에 간식거리를 항상 두고 다니셨는데 졸음이 오거나 끼니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던 것 같다. 사업은 어린 내가 보아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떤 때는 무척 잘되는 것 같다가 한동안 가라앉는 경우도 많았고 아버지의 고뇌에 찬 모습을 많이 보며 사업이라는 자체에 겁이 났을 만도 한데, 부전자전인지 나는 한술 더 떠서 아버지보다 더 젊은 나이에 회사를 만들어 사업가 인생을 살고 있다. 아버지가 마련해주신 창업 자본금이 20여 년 사업을 통해 수백 배로 일취월장하였지만, 내리사랑을 당연스럽게 생각했던 것일까, 자본금을 대어 주셨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지내다가 최근에 어머니를 통해 기억이 소환되었는데 나의 삶은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아버지의 큰 은혜를 입었음을 새삼 느꼈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았던 공간과 물건들은 정리가 많이 되었고, 이제 세월의 흐름 속에 모든 것이 조금씩 빛바래 가겠지만 나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지극 정성은 마음 깊은 곳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바라보던 세상, 그리고 그분이 손수 만들어 주신 추억들은 내 인생의 지침이 되었고, 지금도 나의 삶 속에 짙게 스며 있다. 언젠가 저 하늘 어딘가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 역시 그의 모습처럼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들 신지웅(이에이엔테크놀로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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