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 인공호흡기 좀 지워줘"…엄마가 오열했다[인류애 충전소]
"온통 인공호흡기 꽂은 사진"이라 맘 아프단 엄마 말에, 다 지워준 사진작가
"5살 딸 키우는 아빠라 맘 아파, 사진 고칠 때 누군가 손 잡고 함께 해주는 느낌이었어요"
지난 8월 5일. 8개월 아기의 자그마한 심장이 멈췄다. 이름은 이태윤. 모습 태(態), 진실로 윤(允). 이름을 받았을 때 가장 세 보여서, 이거다 싶어서 지어줬었던. 양대혈관 우심실 기시증(DORV)이란 선천성 심장병. 대동맥과 폐동맥의 자리가 바뀌어 있던 병. 그러느라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아기. 소아 중환자실 병동에서 많은 이들 사랑을 받으며 회복되길 바라고 바랐던 태윤이.
병원과 집 사이 왕복 4시간 거리. 그 길을 매일 버스 타며 중환자실을 오갔던 태윤이 엄마는, 그날 경기도 시흥을 들어갈 무렵 긴급 전화를 받았다. 태윤이가 심폐소생술(CPR) 중이에요, 어머니.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부리나케 발길을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정지한 심장을 살리려던 절박한 몸짓들. 의료진이 차트에 'CPR 1시간째 시행 중'이라고 적는 걸 본 엄마의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엄마는 생각했다. 이게 태윤이의 선택이구나, 홀로 외롭게 싸우고 있구나, 이젠 그만 힘들게 해야겠다고.
"이제 그만해주세요, 선생님."
소아 중환자실에서 동병상련하던 다른 아기 엄마가 가장 먼저 달려왔다. 태윤이 엄마가 말했다. 언니, 내가 심폐소생술을 멈춰달라고 했어. 그가 함께 울어주며 이리 답했다. 그게 너한테 평생 한이 되겠구나.
사랑하는 태윤이가 하늘의 아기 별이 되었다고. 태윤이 엄마가 스레드(SNS)에 소식을 알렸다. 함께 올린 사진엔, 분유가 담긴 태윤이 젖병과, 노란 푸우 장난감과, 작은 새 인형과, 그리고 하늘색 액자 속 태윤이 사진이 있었다. 숨을 쉬기 위해 삽관하느라 의료 기기를 매달고 있는 모습이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쪼그만 액자 속 사진을 확대해서, 온몸에 붙은 의료 기기의 선을 정확히 따서 구분해야 했다. 광희씨는 엄청 긴장하고 집중했단다. 천주교 신자이지만 냉담하는 그가, 선을 따는 내내 '하느님, 도와주세요'를 속으로 반복해 외쳤다고 했다.
다행히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의료 기기 윤곽선을 따서 구분하고, 몸에서 떼어 지워내었다. 광희씨는 당시를 이리 회상했다.
"사실 이런 윤곽선 따는 작업을 정말 못 했는데, 제 손을 누군가 잡고 함께 해주는 느낌이었어요. 아이 잃은 엄마 마음을 위로해주라고, 하늘에 계신 신께서 지켜봐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호흡기에서 자유로워진 태윤이 사진을, 광희씨는 태윤이 엄마에게 보내주며 이리 글을 남겼다.
'태윤이 어머니, 문득 태윤이 사진을 보다가 갑갑한 기도 삽관이 눈에 걸렸습니다. 사진으로나마 저런 기구 필요 없는 태윤이 모습 보시라고, 감히 사진에 손을 대었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을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이게 아주 조금의 위로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임신 20주쯤 정밀 초음파로 이미 선천성 심장병이 있단 걸 알았던 아기였다. 태윤이가 태어난 뒤 얼마 안 돼 작은 가슴에 수술 자국이 새겨졌었다. 인공호흡기를 몸이 부착하는 게 자연스러웠었다. 그리 고된 삶이었기에, 태윤이 엄마는 사진을 보며 감회가 남달랐단다.
"살아 있을 때 (호흡기 없는) 태윤이 맨얼굴을 본 게 언제였었나 싶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안 달렸던 게 신생아 때, 그 잠깐 말고는 없더라고요. 사진 작가님이 아기 사진에 손을 댔다고 죄송하다고, 의료 기기가 지워진 사진을 보내주셨어요. 너무 감사한 거예요."
태윤이 엄마가 그 말을 하며 또 펑펑 울었다. 그의 핸드폰 배경 화면은 당연하게도, 여전히 태윤이었다. 태윤이가 떠났어도 영원히 태윤이 엄마.
병을 안 뒤 아파도 좋으니 잘만 태어나달라고, 혹여나 아프면 치료해준다고.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해주고, 최선을 다하고도 떠날 때 미안하단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애달픈 마음. 태윤이 엄마도 태윤이도 혼자가 아녔다. 태윤이 가족과 연결된 많은 이들의 사랑이 쏟아졌기에.
태윤이보다 먼저 떠난 아기 엄마들에겐 "절대 엄마 잘못 아니야" 그리 위로했으면서. 교통사고의 확률이라고, 그저 그렇게 된 것뿐이라고 말했으면서. 눈을 감은 태윤이에게는 미안하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장례식의 기억은 드문드문 남아 있다고 했다. 너무 황망해서 울음도 거의 안 나왔다고 했다. 술을 한 잔 마시고 태윤이 예뻤다고 울고. 다시 한 잔 하고, 왜 하필 태윤이냐고, 왜이리 순식간에 뺏어가냐고 꺽꺽 눈물을 쏟았다.
물도 못 마시고 먹기만 하면 토하러 갔다. 중환자실에서 함께한 언니가 밤에 와서 이리 말했다.
"너 밥 먹는 거 다 보고 갈 거야. 안 그러면 안 갈 거야. 빨리 먹어. 어떻게든 먹어."
그 덕분에 밥을 겨우 먹었다. 태윤이 참 예뻤다고 울며 추억했다. 표정 천재였다고. 화나는 표정, 웃는 표정, 아빠 째려보는 표정까지. 사랑 많이 받았다고. 마지막 날 의료진 한 명 한 명 다 인사한 뒤에야 떠났다고. 그리 말하며 자꾸 울었다.
49재 때 수목장에 걸 사진이 필요했다. 태윤이 엄마가 회상했다.
"정말 평생 아팠던 사진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사진 작가님께 다시 부탁 드렸지요. 너무 죄송한데, 비용 지불할 테니까 태윤이한테 달려 있는 것만 다 지워주실 수 있냐고. 근데 선뜻 돈도 안 받고 해주시겠다고 했어요. 덕분에 그 사진이, 태윤이 나무에 걸려 있어요."
사진작가 광희씨는 아팠던 태윤이 얼굴 부기를 빼고, 의료기기를 하나하나 지워주었다. 비용을 주겠단 걸 어떻게 받느냐고 반문했다. 포토샵에 있는 '생성형 채우기' 기술로 옷도 바꿔주었단다.
"8개월 남자 아이가 입는 우주복을 만들어줘, 명령어를 넣었어요. 30분 넘게 반복해서 맘에 드는 게 나올 때까지 했지요."
병원 침대에 있는 것도 싫어서, 배경을 다 바꿨단다. 적어도 사진 속에서나마 태윤이가 집에서 엄마와 함께 지내길 바랐기에. 광희씨가 말했다.
"미국에 그런 말이 있어요. '자식 잃은 엄마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요. 부모는 얼마나 살리고 싶었을까, 아이는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생각하니 맘이 정말 아픕니다."
에필로그(epilogue).
태윤이가 한 달 반 동안 집에서 지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기억이라고 했다. 어떤 게 생각나느냐고, 태윤이 엄마에게 물었다.
"태윤이가 모빌을 보고 있는데, 거기서 나는 소리에 맞춰 옹알이를 하고 있는 거예요. 웃기도 하고요. 그게 너무 예뻐서 기억나요. 밤에 잠도 못 자고 힘들어도 제일 행복했어요."
진짜 '응애'라는 소릴 내기도 했다고. 해맑게 웃을 때면 '이제 엄마를 알아 보나' 싶어 설레게 했던 아이.
인터뷰에 응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이런 거라고, 태윤이 엄마는 끝으로 이리 말했다.
"태윤이처럼 아픈 부모님들이, 이 글을 보고 1분이라도 힘을 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애들은 부모가 포기 안 하면 진짜 버티거든요. 엄마 아빠가 마음 잘 잡고 흘러가는 대로 살면 언젠가 이것도 다 끝난다고요."
그러나 혹여나 부모가 자식이란 세상을 잃어야 할 때가 오면, 또 이리 당부해주고 싶다고 했다.
"정말 그런 상황이 안 왔으면 좋겠지만, 그런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오면요. 엄마, 아빠가 한 선택이 제일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세상 그 누구보다 아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진짜 너무 감사한 분들이 많아요. 내과쪽에서 살펴주신 삼성서울병원 송진영 교수님, 흉부외과 박일근 교수님, 전태국 교수님. 병원에서 항상 마주칠 때마다 밝게 인사해주셨던 양지혁 교수님. 태윤이 사랑으로 돌봐주신 소아 중환자실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선생님들 덕분에 후회 없이 치료 받을 수 있었다고요.
8개월이란 짧은 시간 동안 태윤이 엄마였어요. 그 시간을 엄마로 살게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 말씀드리고 싶어요.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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