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대중의 시대와 저널리즘의 위기
필자는 교수회장직을 수행하며 학내 현안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감한다. 공론의 장은 사안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균형 잡힌 시각을 전제하지만, 바쁜 삶을 살면서 이미 고정된 시각을 가진 구성원이 많은 현실에서는 이성적 토론이 추동하는 공론화의 이상은 공허하다. 무관심과 그에 따른 무지, 편견, 이기심, 냉소주의, 양비론, 노선(강온)에 대한 견해차 등은 교수 사회라고 다를 것이 없다.
엘리트 또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교수들이 오히려 더 심할지도 모른다. 코로나 이후 파편화된 비대면 사회, 각자도생의 난세에서 공동체는 무너지고 오피니언 그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조직·인사·예산을 틀어쥐고 있는 총장의 영향력이다. 학내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힘과 이해관계만이 남는다. 따라서 교수회의 건전한 견제 기능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대학도 정치와 사회의 축소판이고, 교수도 지식인이 아닌 '대중'이 되었다는 말이다.
대중이라는 용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욕망과 정념에 사로잡힌 비이성적 존재, 광기와 감정에 휩쓸리는 군중, 종종 주권을 갖는 국민을 지칭하는 말로 대중은 사용된다. "대중(국민)은 언제나 옳다"는 말은 입에 발린 정치인의 수사에 불과하다. '중우(衆愚)'의 위험성은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를 혐오했고 그의 수제자인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주장했던 이유였다. 스피노자도 집단지성을 믿지 않았다. 이러한 서구의 철학적·사상적 흐름은 엘리트주의에 기초한 근·현대의 대의민주주의로 완성됐지만, 트럼프의 등장, 브렉시트 등의 사례가 증명하듯 대중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민주주의는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사회적·경제적 양극화가 큰 원인이지만, SNS, 유튜브 등 정보매체와 스마트폰은 대중의 시대를 초래한 환경적인 요인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부의 총량은 늘어났지만 재분배에 실패해 평균적인 시민의 삶은 팍팍해졌고, 디지털화의 진전으로 지식과 정보는 넘치는데 시민들의 합리적인 사고력은 감퇴하는 역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대중의 시대는 엘리트 집단을 혐오하거나 불신하고, 가짜뉴스나 음모론이 쉽게 확산되는 반이성주의의 시대이다.
반이성주의는 진영화의 산물인 동시에 진영화를 더욱 공고히 했다. 표심을 얻기 위해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 정치권에 만연한다. 트럼프 같은 강력한 선동정치가가 권력을 잡게 되면 민주주의는 '독재'(파시즘)로 흐를 수 있다. 다수결의 원리는 독재를 정당화할 뿐이며, 입법권과 사법권을 압도하는 행정권에 대한 마땅한 견제 수단은 없다. 국가의 최고 권력은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 상업주의에 취약한 언론을 길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중의 욕망과 무지를 탓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대중이 모든 문제의 근원도 아니다. 헌법과 법률을 개정해 법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반면, 중심을 잡아주는 정치권과 언론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특히 진실 보도와 정론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의 근본토양이다. 언론 스스로 이익집단이 되거나 기계적인 중립만을 지키려고 한다면, 위험부담이 큰 탐사보도를 꺼리고 선정적인 보도에 치우치거나 취재원이 건넨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기는 정보제공자의 역할에 만족한다면, 언론의 미래도 없고, 민주주의의 미래도 없다.
좋은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부나 광고주에 의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편파보도라는 비난이 쇄도하거나 시청률 또는 구독자가 급감할 수도 있다.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브 등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견제하는 감시견의 역할을 충실히 하느냐가 '참 언론'인지 여부를 좌우한다. 마찬가지로 이성적 논의를 주도하는 감시견이 교수회 본연의 역할이다. 교수 사회 내부의 공동체를 회복하고 정론을 지향하는 교수회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고민한다. 민주주의의 미래가 공동체의 미래다.
최인호 충남대 교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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