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이해관계에 자극받는 고립된 개인’들의 집합 [기자의 추천 책]

김연희 기자 2024. 11. 7.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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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심리적 내전'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날이 많다.

한 사회가 '사적 이해관계에 자극받는 고립된 개인'들의 집합이 될지, 자발성을 갖춘 유기적인 공동체가 될지는 그 사회의 전반적인 신뢰 수준에 달려 있다.

이런 분류에 불쾌감을 느낄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책에서 후쿠야마는 전후 일본의 반성이 독일만큼 철저하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언급한다). 1995년 선례로 꼽은 모델들이 이후 어떻게 쓰러져갔는지도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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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구승회 옮김
한국경제신문사 펴냄

요즘 부쩍 ‘심리적 내전’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날이 많다. 국회에서 벌어진 다툼도, 교실에서 생겨난 갈등도, 진료실에서 일어난 시비도 법원의 판결을 종착지로 내달린다. 승소하는 측과 패소하는 측은 정확히 가려지지만, 결국 모두가 패자의 늪으로 침잠해가는 광경을 매일같이 목격하는 기분이다. 문제가 생기면 법을 고치고 제도를 개선하길 거듭하지만,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트러스트〉는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출세작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을 펴내고 3년 뒤인 1995년에 나왔다. 제목 그대로 ‘신뢰(트러스트)’라는 사회적 자본에 천착했다. 이 책에서는 ‘자발적 사회성’이라는 용어로 자주 쓰이고, 에밀 뒤르켐이 ‘유기적 연대성’이라고 이름 붙인 그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뒤르켐은 계약만으로는 유기적 연대성을 창출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사회학자다.

서두에 인용된 뒤르켐의 저서 〈사회에서의 노동의 분배〉 속 구절이 〈트러스트〉라는 책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 나라는 국가와 개인 사이에 2차 집단이 끊임없이 끼어들어 개인으로부터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자기의 행동권으로 강력히 유인하고, 그리하여 사회적 삶이라는 총체적 물결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때만 유지될 수 있다.”

현대인은 ‘합리적으로 유용성을 극대화하는 개인’을 기본값으로 상정한다. 후쿠야마는 이 관점의 설명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모델이며 신고전파 경제이론의 이데올로기적 전제를 숨기고 있음을 지적한다. 일상에서 내리는 선택 하나하나를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관습이나 문화, 전통, 타인의 시선 등에 판단의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다.

한 사회가 ‘사적 이해관계에 자극받는 고립된 개인’들의 집합이 될지, 자발성을 갖춘 유기적인 공동체가 될지는 그 사회의 전반적인 신뢰 수준에 달려 있다. 신뢰는 윤활유 같아서 고신뢰 사회는 저신뢰 사회에서 치르는 온갖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후쿠야마는 ‘신뢰는 중요하다’는 도덕책 같은 소리에 그치지 않고 고신뢰 사회(일본· 독일·미국)와 저신뢰 사회(프랑스·중국 등)의 형성 과정을 문화사적으로 분석한다. 자발적 사회성을 형성한 사례로는 일본의 평생고용제, 독일의 사회시장경제, 도요타의 린 생산방식 등을 꼽는다.

이런 분류에 불쾌감을 느낄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책에서 후쿠야마는 전후 일본의 반성이 독일만큼 철저하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언급한다). 1995년 선례로 꼽은 모델들이 이후 어떻게 쓰러져갔는지도 우리는 알고 있다. 한 나라를 거침없이 저신뢰·고신뢰로 재단하는 태도에서 ‘역사의 종언’을 고한 자의 오만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무형의 자본인 신뢰를 사회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 가시화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30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 더욱 값지게 와닿는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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