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공원에서 ‘조류’ 빼려는 김포시…새들 방 빼라?
‘한강김포야생조류생태공원’ 조례 개정 추진
환경단체 “공원에서 ‘조류’ 도려내려는 시도”
“여기서 ‘조류’를 빼면 생태공원으로 아무 의미가 없죠. 제 생각은 그래요.”
지난 1일 이른 아침 경기 김포시 ‘한강김포야생조류생태공원’에서 산책 중이던 주민 이범주(71)씨는 큰기러기 수천 마리가 내려앉은 ‘낱알 들녘’ 앞에서 한동안 걸음을 멈춰 섰다. 10여년 전 김포시로 이주한 이씨는 매년 철새가 이곳을 찾는 모습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고 했다. “얘네들이 굉장히 정확하게 와요. 올해도 9월30일이 되니까 아파트 위로 새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벌써 한 해가 갔구나 그랬어요.”
낱알 들녘은 이 공원에 남아있는 약 3만1300평(10만3650㎡) 규모의 논이다. 2010년대 초반 김포 한강신도시 개발 때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한경변 농지를 활용해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당시 환경단체들은 신도시 개발로 한강하구를 찾던 철새들의 취·서식지가 줄어들 것이 우려되자 문제를 제기했고, 이들이 요구한 ‘철새 서식환경 보전 방안’을 환경부가 받아들인 결과다. 2015년부터는 김포시가 한국토지공사로부터 기부채납 받아 지금껏 운영해오고 있다.
애초 취지에 맞게 여느 공원과 달리 새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습지와 논을 잘 보존했고, 특히 벼 수확이 끝난 논은 해마다 큰기러기·쇠기러기·재두루미·저어새 등 야생조류가 찾는 ‘명소’가 됐다. 전체 면적이 약 19만8000평(65만5310㎡)에 달하는 이곳은 수도권 유일의 조류 생태공원이다.
이날도 가을걷이가 끝난 낱알 들녘에 큰기러기 2000여 마리와 쇠기러기 십수 마리가 부지런히 날아와 낟알을 주워 먹고 있었다. 간혹 ‘꽈안~ 꽈안~’하고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수천 마리가 모여 앉아있는데도 다투는 일 없이 평화로웠다. 2년 전 공원 옆으로 이사했다는 김은숙씨도 이 모습을 보려고 매일 아침 낱알 들녘 근처 길을 지난다. “며칠 전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새를 보고 ‘여기 아프리카 같다’ 그래요. 새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 들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시민들에게는 “철새가 자랑거리”지만 최근 김포시는 공원 이름에서 ‘조류’를 빼려고 하고 있다. 지난 9월9일 김포시는 이 공원의 운영·관리에 대한 조례를 개정해 ‘야생조류생태공원’이었던 명칭을 ‘생태공원’으로 변경하겠다고 입법예고했다. 더불어 습지 및 조류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던 ‘야생조류생태공원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 규정을 삭제해 위원회의 기능을 ‘김포시 도시공원위원회’로 통합하고, 공원 내 건물인 ‘에코센터’의 운영·사용을 맡는 위탁 주체를 ‘조류·생태 관련 단체 혹은 연구기관·비영리법인’에서 ‘법인·단체 또는 개인’으로 변경하겠다 했다.
이에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등 시민·환경단체들은 “김포시가 공원에서 ‘조류’를 도려내려 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날 현장을 함께 찾은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은 “시가 조례 개정을 통해서 공원의 주 기능을 ‘보전’에서 ‘이용’으로 변경하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도시 개발 당시 철새 서식지 훼손을 막고자 공원을 만든 것인데, 김포시는 그동안 공원 내에 관상용 나무, 나무데크, 서양식 물레방아를 야금야금 설치하면서 새들의 서식 환경을 파괴해왔다”고도 말했다. 공원의 명칭·조례에서 ‘조류’라는 문구가 삭제되면 “새들의 생존 공간”이던 곳이 아예 인간만을 위한 공원으로 바뀔 것이란 우려다.
야생조류에게 먹이터를 마련해주는 것은 최근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자연보전 방법인 ‘리와일딩’(재야생화, Rewilding)의 사례로도 여겨진다.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을 찾는 두루미를 연구한 최명애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지난달 서울 연세대에서 열린 ‘리와일딩 포럼’에서 “철원 농민들이 수확이 끝난 논에 볏짚을 덮어 두루미들이 먹을 알곡을 남겨뒀고, 일부 논에 물을 채워둠으로써 이곳을 찾는 재두루미가 1999년 500마리에서 지난해 5100마리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를 토지 공유(Land Sharing)을 통한 ‘수동적 재야생화’의 좋은 사례로 소개했다.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 또한 “동아시아 철새들의 중요한 기착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 윤 이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고양 장항습지와 김포평야가 맞닿아 있는 이곳은 러시아에서부터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오는 기러기, 두루미, 맹금류들에게 첫 휴식 공간이 되어준다”고 말했다. 황재웅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사는 “우리나라에서 조류 공원을 조성해 먹이주기를 하고 있는 곳은 서산 버드랜드, 낙동강 을숙도생태공원, 순천만국가정원 정도”라면서 “철새들이 지속해서 찾아오던 곳이 변화한다면 새로운 철새들은 취·서식지를 찾아 방황하게 될 것이고 결국 그곳을 찾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포시는 조례 개정을 하려는 이유에 “생태공원에 조류뿐 아니라 포유류·양서류·어류 등 다양한 종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포괄적 의미로 단어를 변경하는 것뿐”이라며 “조류라는 문구가 삭제되더라도 생태공원의 관리나 용도가 변경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조류를 도려내려는 시도’라는 주장은 이해관계로 인한 조류 단체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입법예고가 끝난 개정안은 현재 김포시의회의 내부 심의를 앞두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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