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력수요 태양광으로 충당 못해···수도권 LNG발전 확대해야"
데이터센터 증가로 공급 태부족
송전망 건설은 만성적인 지연에
원전 등 발전량 조절도 쉽지않아
운영 유연한 LNG 발전이 대안
'전력망 확충법' 국회 통과 절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목표가 지나치게 높아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등의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액화천연가스(LNG)발전을 늘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의 발전량을 쉽게 늘리거나 줄이기 어려운 만큼 LNG로 부족한 틈새 수요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민간발전협회와 전력산업연구회가 주관한 ‘급변하는 전력 산업과 민간 발전의 역할’이라는 이름의 세미나에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설비는 현재 23GW에서 2038년에는 115.5GW까지 늘어나게 된다”며 “2030년까지 매년 평균 6.1GW씩 증가해야 하는데 태양광과 풍력이 대폭 늘어난 2020년에도 4.5GW 커진 데 그친 만큼 해당 전망은 현실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태양광이 들어서기 어려운 전답, 과수원, 목장 용지, 임야가 대부분”이라며 지금대로라면 송전망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경직성 전원 비중이 너무 높아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원전을 포함해 발전량을 조절하기 어려운 경직성 원전 비중은 지난해 39.1%에서 2030년 50.5%, 2038년 64.7%로 급증하게 된다. 원전은 싼 전기를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지만 전력수요 변화에 원전을 가동했다가 멈추는 것이 어렵다.
문제는 수요 급증이다. 이날 발표에 나선 윤원철 전력산업연구회 연구위원은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증가로 전력망 총수요가 2026년까지 연 2.6% 늘어나고 AI용 전력수요는 연 14.5%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정부는 지난해 대비 2038년까지 연평균 1.8%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과거 15년간 평균 3.3%에 비해서도 낮은 수치다. 이를 고려하면 전체 증가 예상치도 적고 신재생발전 확대 폭은 과도하게 잡아 양쪽에서 큰 공급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민간 중심의 LNG발전 확대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LNG발전 설비용량의 경우 지난해 43.3GW에서 2038년 69.5GW로 전체 설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같은 기간 30%에서 26.1%로 쪼그라든다. 손 교수는 “전력저장장치를 크게 늘리는 것은 돈이 없어서 못하고 송전망은 돈이 있어도 (지역 주민의 반대에) 못하는 상황”이라며 “민간이 주도하는 수도권 LNG발전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주장했다. 윤 위원 역시 “수요지 인근에서 유연한 운영이 가능한 LNG발전소가 유리하다”며 “재생에너지 보급과 LNG발전소 투자를 위한 민간 발전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하루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를 통해 인허가 절차를 개선하고 영향 평가 특례 등을 통해 국가 주도로 중요 전략망을 신속하게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신규 송전망의 민간 참여 확대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박 교수는 “전국의 전력수급은 안정적인 상황이지만 지역별 전력수급 불균형은 매우 심각하다”며 “비수도권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전력소비는 수도권에서 하는 구조인데 송전망 건설은 만성적인 지연을 겪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독일은 특례법을 통해 국가 필수 전력망 사업을 명시하고 인허가 최소화 및 분쟁 절차 간소화를 추진하고 있고 미국은 국가 필수 전력망 사업을 정부가 선정하고 있다”며 “우리도 핵심 지역 설비 지중화를 통한 주민수용성 향상이나 전력망과 도로·철도 등 국토계획과의 공동 건설을 추진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추가로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위원과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 등은 전기요금 정상화와 함께 독립 규제 기관의 설립을 주장했다.
송전 제약과 전력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전력 당국이 도입하기로 한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LMP)’가 민자 발전사의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시행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유수(사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전력 산업이 공기업 위주의 과도한 규제 체제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전력수급 상황을 반영한 LMP는 그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분산에너지특별법은 국가균형발전 등을 위해 지역별 소매요금을 차등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근거해 올 5월 도매요금(발전사에 지불) 비용부터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차등 적용하는 내용의 지역별 가격제 도입을 예고한 상태다. 지역별로 다른 전력 자급률에 따라 전기요금을 차등 부과해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전력 공급지(발전소)와 소비지(수요) 간 불일치 현상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내년에는 도매요금을, 2026년부터는 소비자요금을 각각 차등 적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LMP가 당초 취지와 달리 비수도권 발전기의 도·소매요금만 일괄 하향 조정하는 쪽으로 추진되면서 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은 “전력 시장은 수요 독점사업자 한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왜곡돼왔다”면서 “LMP도 진정한 가격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소매요금 차등화가 아니라 한전의 전력구매요금을 절감하기 위한 도매요금 차등화로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주를 제외했을 때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만 양분한 지역 차등이 제대로 된 촘촘한 시그널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라며 “돈 없는 한전을 고려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고 꼬집었다.
황태규 GS EPS 상무는 신규 수요 및 공급부터 적용하고 기존의 수요·공급에 대해서는 발전사들이 가격 신호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감안해 일정 기간 유예한 후 새 제도를 적용하는 중재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LMP를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2050년까지 향후 25년간 지금과 같은 중앙 공급 기반으로는 안전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산업용 등은 자가발전과 효율 향상 등을 통해 중앙 의존도를 낮추고 LMP 도입으로 수도권의 설비투자 유인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상윤 기자 prize_yun@sedaily.com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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