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민으로 받아줬더니… “사상 전향 강요” 소송 낸 北 간첩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고 나온 북한 직파 간첩이 출소 후 “국가가 주민등록과 취업·정부 지원 등을 빌미로 ‘사상 전향’을 강요했다”고 주장하며 국가배상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패소했다. 법조계에서는 “전향을 거부한 간첩이 주민등록증 발급 과정 등을 문제 삼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조선노동당 산하 대남공작기구인 정찰총국 소속이었던 염모(58)씨는 “남조선으로 침투하라”는 정찰총국 지시와 함께 공작금 3만달러를 받고, 2011년 국내에 침투했다. 브로커를 통해 중국 위조 여권을 구해서 들어왔다. 염씨의 임무는 우선 중국인인 척 국제결혼을 해서 합법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서울·경기 지역의 주요 다중시설과 인천항 부두를 촬영하는 등 군사적·정치적 기밀을 빼내는 것이었다. 염씨는 북한에서 직파되기 전에 작성한 ‘적구(敵區·적의 구역) 활동 계획서’에 따라 추진 경과를 수시로 이메일을 통해 정찰총국에 보고했고, 지령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무려 5년 가까이 국내에 숨어 간첩 활동을 한 것이다.
2016년 중반 염씨는 공안 당국에 적발됐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간첩·특수잠입) 등 혐의로 그를 기소했고, 같은 해 8월 1심은 염씨에 대해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 염씨가 항소하지 않아 1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염씨는 5년 형기를 다 채우고 2021년 5월 만기 출소했다. 가족도 고향도 없는 그는 출소 후 서울과 대구 등 정부가 운영하는 보호시설에서 지냈다. 하지만 수시로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하거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래도 염씨는 ‘북한 주민도 한국 국민’이라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정식 국적을 가진 한국 국민이었다.
하지만 주민등록증이 문제가 됐다. 염씨처럼 북한 출신 주민들은 법원 허가를 거쳐 주민으로 등록이 돼야 우리 사회에서 신분 인정은 물론 정부 지원 등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염씨는 출소 후 곧바로 주민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아 취업을 하거나 의료보험 등 정부 혜택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염씨는 2021년 10월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에 “주민등록증을 발급해달라”는 민원을 넣었다.
국정원은 염씨의 민원에 “일반 탈북민처럼 주민등록 관련 지원을 받으려면 전향 의사를 표시하거나, (전향 여부와 상관없이) 법원에서 주민등록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염씨는 “전향이라는 것은 사상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향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전향을 하지 않은 채 직접 가정법원에 주민등록 신청을 했고, 법원의 심판을 거쳐 작년 1월 정식으로 주민등록을 마쳤다. 행정기관을 통해 주민등록증도 받았다.
그런데 염씨는 올해 5월 “경찰이나 국정원, 법무부 소속 공무원들이 주민등록이나 주거, 직업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사상 전향을 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기본권과 인권이 침해됐다”며 국가배상 소송을 냈다. 그는 “국가가 주민등록증을 늦게 발급해줘서 그동안 경제 활동을 하거나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면서 재산상 손해 8000만원과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2000만원 등 총 1억원을 청구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213단독 이현종 판사는 최근 염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라 탈북민이 국가의 지원을 받으려면, 보호를 받겠다는 의사를 정부에 표시해야 한다. 그런데 염씨는 보호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오히려 북한에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했다”면서 “공무원들이 염씨에게 사상 전향을 강요하거나 이에 동조했다고 볼 구체적인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객관적 자료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사 공무원들이 주민등록 절차 등을 지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위법한 직무 집행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염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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