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더디고 힘들어도 시들지 않는 ‘철수의 한국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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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글날에 즈음하여 움틈학교 복도에 이중의 언어로 표기된 '명문'들이 나붙었다.
이런 심오한 생각을 품은 아이들에게 나는 매일 밥 먹었냐는 인사만 던진 것인가! 즐거운 반성을 했다.
한국에 온 지 1년 남짓 된 청소년들이니 모국어를 잊었을 리 없고 그간 발전한 한국어 실력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모국어에 기대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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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소리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마라. 꿈은 결코 남의 박수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심오한 생각을 품은 아이들에게 나는 매일 밥 먹었냐는 인사만 던진 것인가! 즐거운 반성을 했다.
지난주엔 움틈학교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가 있었다. 한국에 온 지 1년 남짓 된 청소년들이니 모국어를 잊었을 리 없고 그간 발전한 한국어 실력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모국어에 기대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 기대했다.
암기한 원고가 날아갈까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자신이 쓴 자신의 이야기라도 외국어란 그릇에 담아놓으니 생경해서 그런가 보다. 무대에 오르니 두근거리는 심장이 종결욕구를 자극했다. 시선을 중앙에 고정하고 며칠간 공들인 원고를 후다닥 암송하고 들어갔다.
철수는 좀 달랐다. 한 문장을 말하고 다시 생각을 모아 또 한 문장을 말했다. “제가 달리기를 한 이유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입을 열어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다시 입을 열어 “이것을 풀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철수의 이야기는 다음 문장을 기다리게 했다. 달리는 건 힘들었지만 잡생각이 없어진다고 했고 자꾸 달리다 보니 달리기 리듬을 찾았다고 했다. 안양천에서 한강까지 달려보고 싶다고 했고 마라톤에 도전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끝까지 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말까지 떨리는 목소리로 한 문장씩 마무리 지었다.
철수의 발표는 다른 아이들의 서너 배나 걸렸다. 이주 생활의 힘듦을, 외국어의 장벽을, 앞날의 막연함을 떨쳐내면서 혼자 걸어본 내공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더딤이다.
원고를 생략하고 빨리 관문을 통과해서 안도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이주와 편입학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아 나이를 묵혔다. 한국어도 학교 공부도 무엇하나 빨리 통과할 수 없는 현실을 겪었음인지 이 정도의 긴장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어려운 시간 혼자 달리면서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온 습관 때문인지 누구에게 박수받을 생각 없이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혼자 걸었는지 걸으면서 어떻게 자신을 다독였는지 그래서 얼마나 강단이 생겼는지 보여줬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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