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나빠진 기업 늘어… 금리 내려도 주가 상승에 한계”
트럼프 당선되면 정유·방산기업 혜택
“기업 실적이 떨어지며 올 들어 신용등급 상향 조정보다는 하향 조정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기업 실적을 반영하는 주가의 상승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 신용등급평가 회사인 나이스신용평가의 이혁준 금융평가본부장은 지난 5일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들은 고금리가 지속되고 내수 경기가 둔화되면서 전반적으로 실적이 조금씩 저하되고 있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이 본부장은 나이스신용평가에서 기업 실적, 금리, 환율, 지정학적 변수 등을 고려해 금융회사 등 대기업 발행 회사채의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기업에 큰 영향을 주는 세 가지 요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 정책,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심화이다. 연준의 기준금리 방향성은 최근 수년간 정부, 기업, 가계 3대 경제 주체의 활동과 재무 구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동산 PF는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2년간 금융 당국의 전방위적 대응에 힘입어 경착륙 위기에서 벗어났으나 여전히 내수 경기와 금융 회사 실적의 저하 요인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심화는 세계화와 공급망 효율성을 후퇴시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한국 기업 현황은?
“그리 좋지 않다. 우리는 기업의 현재 경영 상황과 향후 전망을 종합해 기업마다 신용평가 등급과 향후 등급 전망을 부여하는데, 작년에는 상향 조정이 하향 조정보다 소폭 많았으나 올해부터는 하향 조정이 더 많아졌다. 작년 상반기는 나이스신용평가 기준으로 신용등급이나 등급전망이 상향 조정된 기업이 39개, 하향 조정된 기업이 25개였다. 올해 상반기에는 상향 조정이 27개로 줄어든 반면, 하향 조정은 47개로 늘었다.”
―주로 어떤 기업들이 하향 조정을 받았나?
“비금융회사와 금융회사로 나눠 봤을 때 금융회사, 특히 제2 금융권이 조금 더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에 금융 회사는 상향 조정 3개, 하향 조정 17개로 하향 조정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비금융회사는 상향 조정 24개, 하향 조정 30개로 하향 우위이기는 하나 강도는 금융회사보다 약하다. 금융회사 실적이 나쁜 이유는 부동산 PF가 증권, 캐피털, 부동산신탁, 저축은행 4개 업종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축은행 상황이 좋지 않다. 올해 상반기 신용등급 하향 조정 금융회사 17개 가운데 8개가 저축은행이었다.”
―하향 조정이 많아진 이유는?
“기본적으로 경기가 둔화돼 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미국 연준의 고금리 정책으로 이자 비용이 늘었고, 그 바람에 기업의 고객인 구매자의 구매력도 위축됐다.”
―1997년 외환 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비교하면?
“그때보다는 낫다. 외환 위기 때는 은행마저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할 정도로 경제 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몰렸지만 현재는 은행의 체력이 매우 튼튼해서 지지 기반이 견고하다. 또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비교해도 비금융기업의 부채 비율, 차입금 의존도, 영업이익률, 금융 기업의 자산 건전성, 자본 적정성 지표가 더 우량하다. 다만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중국이 고성장 중이어서 우리 제조기업의 수출이 좋았다. 또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60%대에 불과해 경기부양 정책을 통해 내수도 바로 회복시킬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은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돼 수출 기업의 실적 전망이 좋지 않고, 가계부채 비율도 90%대로 높아져 부양 정책을 쓰기도 어렵다.”
―금융 회사들은 고금리 덕에 돈을 많이 벌지 않았나?
“금융권에서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은행, 손해보험, 생명보험, 신용카드, 증권, 부동산 신탁, 저축은행, 캐피털 8개 금융 부문 중에서 은행, 생명보험, 손해보험은 실적이 좋지만, 나머지 5개 부문은 좋지 않다. 은행도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올해 이익은 작년보다 줄었고 대출채권 연체율도 올라가고 있다. 금리 하락기여서 향후 2~3년간은 은행 이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언제쯤 상황이 개선될까?
“금융 회사가 부실 자산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 우량 부문의 수익으로 다른 부분의 적자를 메우고 대주주 자본 확충을 통해 재무 건전성을 빨리 회복해야 실적이 호전될 수 있다. 특히 금융 회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동산 PF는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 당시의 경착륙 위기감은 지났지만 연착륙하려면 앞으로 1년 정도는 더 걸릴 것이다.”
―금융업 외 업종의 동향은?
“중국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수출 기업과 내수 기업의 실적 저하가 눈에 띈다. 포스코 등 철강, 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 OCI 등 태양광, SK온 등 2차 전지 부문이 부진하다. 내수 기업인 소매유통업의 경우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진출 영향으로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롯데쇼핑과 이마트의 신용등급이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 건설업도 공사 원가와 금융 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저하되는 가운데 신규 수주 감소로 사업 기반이 위축되는 모습이다.”
―내년에 한국 기업에 영향을 미칠 가장 큰 변수 세 가지를 든다면?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금리) 방향, 미국 대선 이후 새 정부의 정책 기조, GDP(국내총생산) 대비 높은 국내 가계부채 비율이다. 금리의 경우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되겠지만 글로벌 경제의 블록화, 지정학적 리스크(불확실성) 확산 등 인플레이션 자극 요인이 여전히 많아 코로나 사태 당시와 같은 초저금리 수준으로 내려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PF 부담을 고려해 그간 미국보다 기준금리 인상폭이 작았기 때문에 인하 여력도 크지 않다.”
―가계부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정부는 가계부채의 절대적 규모를 줄이기보다는 증가 속도를 GDP 성장 속도보다 낮추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 그대로 밀고 나가면 될 것이라고 본다.”
―원·달러 환율이 계속 오르고 있다. 기업의 달러 수급에 문제가 있나?
“기업들은 달러 수급을 잘 관리하고 있다. 최근 환율 상승은 미국의 관세 강화 등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을 다시 자극할 수 있는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는 우려와,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미국 증시 투자 금액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환율 상승이 내년 기업 경영에 미칠 영향은?
“과거에는 수출 기업이 많은 한국에는 환율 상승이 유리하다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관세 절감이나 보조금 혜택을 얻기 위한 해외 투자가 늘어 환율 상승이 꼭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오히려 환율 상승은 국내 수입 가격을 상승시켜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제약하기 때문에 기업 경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내년에 주목하고 있는 업종과 전망이 있다면?
“비금융업종에서는 한국 수출의 양대 축인 반도체와 자동차이다. 반도체는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AI(인공지능)를 중심으로 한 큰 변화의 흐름에 뒤처지면서 체면을 구겼으나, 저력이 있으므로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한다. 자동차는 현대·기아차가 괄목한 만한 성장을 해서 글로벌 3위까지 위상이 올라왔으나 최근 영업이익률이 꺾이기 시작했다. 두 업종 모두 불확실성이 높아진 거시경제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중요하다.”
―금융업은?
“증권업을 주목하고 있다. 증권업은 최근 10년간 금융 당국의 대형화 정책에 힘입어 외형 확대와 수익성 다변화를 이뤘으나 부동산 PF를 급증시키는 등 금융권 전체의 불확실성을 높였다. 현재 금융 당국이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어서 내년에 증권업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어떤 투자 전략을 취하는 것이 좋나?
“일반적으로 금리 하락은 주식과 채권 투자자 모두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지난 2012~2013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연 2.5%까지 인하하는 동안 코스피는 오르지 못하고 박스권 장세를 보였다. 경기가 나빴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를 낮췄지만 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의 부실채권 비율이 의미 있게 개선되지도 않았다.
지금도 그때와 상황이 비슷하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에서 연 3.25%로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 기대감이 미리 반영되어 있던 회사채와 국고채 금리는 오히려 상승(채권 가격은 하락)했다. 가계부채가 과다한 상황이라 금융회사들의 연체율 개선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일반적인 통념을 맹신해 특정 금융상품에 지나치게 편중된 투자를 하기보다는 개인들의 투자 성향에 따라 적절히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전략이 좋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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