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美 대선 후 대한민국… 이제 국격에 맞는 책무 수행해야
중·러·이란 등 권위주의 거세지만 자유·민주는 인류사의 도도한 흐름
美 대선 미칠 결과 염려하지만 단기적 국익만 따지는 管見
10대 부국이라면 걸맞은 책임 필요
한미 동맹 위한 분담금 늘리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 공헌해야
전쟁 같은 선거였다. 미국은 청홍으로 양분됐다. 경합 지역 표심은 박빙으로 점쳐졌다. ‘동전 던지기(toss-up)’나 다를 바 없다 했다. 세계 최강 국가의 최고 권력을 다투는 싸움이니 그야말로 진검승부였다. 힘센 정치인, 돈 번 기업인, 목청 높은 언론인, 책 파먹는 지식인, 인기 있는 연예인, 입 큰 유튜버까지 혼탁한 선거판에서 실시간 ‘말의 전쟁(war of words)’을 벌였고, 인플레에 시달리는 평범한 시민들도 일터에서, 마을에서, 온라인에서 갑론을박하며 각개 전투를 치렀다. 결과는 트럼프의 넉넉한 승리였다.
2017년 2월 이래 미국의 간판 언론 ‘워싱턴포스트’는 1면 제호 아래 “민주주의, 어둠 속에서 사망하다”란 구호를 내걸고 있다. 극심한 분열과 살벌한 투쟁이 그러한 발상을 부추기지만, 좌충우돌의 극한 대립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민낯이다. 민주주의는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상충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한 표씩 던져서 정권을 형성하는 데서 시작된다. 바로 그 점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죽긴커녕 꿈틀꿈틀 생동하고 있다. 1788년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이래 236년의 세월 동안 미국 시민들은 4년마다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모두 60회에 걸쳐 대통령 선거에 참여해 왔다. 헌법의 준엄한 명령에 따라 치러진 선거의 결과에 그 누구도 감히 불복할 순 없다. 게임의 규칙은 엄격하며 실정법은 강력하다.
입헌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는 인류 정치사의 경험과 지혜를 집약하고 있다. 18세기 말 영국의 식민지 아메리카의 연방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은 물론 서유럽 근세 정치사의 선례를 샅샅이 뒤져가며 열띤 논쟁을 거쳐 헌법의 초안을 짰다. 군주정을 부정하여 공화정을 수립한 미국의 국부들은 국가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 정부를 셋으로 쪼개고, 다수당의 전횡을 막기 위해 의회를 둘로 나눴으며, 다수 독재와 폭민 정치를 막기 위해서 ‘법의 지배’를 명시했다. 최소 62만 명이 목숨을 잃은 남북전쟁(1861-1865)을 치르고서 지켜낸 50개 주의 연방(union)이기에 지금도 미국 대선은 전국 득표율과 어긋날 수 있음에도 선거인단 투표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지 3년 후에 10개 수정안을 담은 권리장전을 채택했으며, 이후 200여 년에 걸쳐 17개 수정안을 추가로 인준하여 공화국의 헌정사를 중단없이 이어왔다.
세계 최초의 민주 국가 미국에서 선거 민주주의가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사적 중대성을 갖는다. 민주주의 퇴조가 두드러지는 시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동구,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혼란과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엘살바도르, 헝가리, 세르비아, 튀니지. 튀르키예 등의 민주주의는 질식 상태에 이르렀고, 보츠와나, 조지아, 온두라스, 인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의 민주주의도 표류 중이다. 그 틈에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은 ‘악의 동조’를 이루고 반자유의 선전전을 펼쳐서 ‘글로벌 사우스’(개발도상국)의 독재화를 유도하고 있다.
다시금 국제 정세는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 양상이다. 권위주의의 도전이 거세지만 민주주의는 놀라운 탄력성을 보인다. 지난 8월 방글라데시 시위대는 15년간 군림하던 독재자 셰이크 하시나를 몰아냈다. 수백 명이 죽고 2만 명 이상이 다치면서 얻어낸 민주의 승리였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자유의 투사들은 지난 7월 재집권한 마두로 정권에 대항하여 부정선거의 숱한 증거를 밝혀내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 표면상 독재정권은 강력해 보이지만, 민주주의는 쉽게 사망하지 않는다. 인류 공동의 지혜가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디지털 정보혁명의 시대이기에 더더욱 자유와 민주의 확산은 인류사의 도도한 흐름이다.
일각에선 과민한 논객들이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반도에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며 염려증을 보이지만, 단기적 국익만 따지는 관견(管見)일 뿐이다. 10대 부국이라면 그에 합당한 책임 의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한미동맹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면 기꺼이 분담금을 늘리고, 국제적 원조로 큰 혜택을 입은 만큼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강화에 물심양면으로 공헌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은 유엔군의 도움을 받아서 공산 전체주의의 침략을 물리치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하여 두 세대 만에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를 이룬 세계사에 보기 드문 모범국가이기 때문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성공 기원”...부시, 트럼프 이름 뺀 당선 축하 성명
- 젤렌스키 “北과 첫 교전”… 美 “사망자 다수”
- [팔면봉] 오늘 尹 대통령 ‘무제한’ 기자회견에 정치권 이목 집중. 외
- 막말·성추문, 두 번의 탄핵 소추, 대선 불복에도… 다시 백악관으로
- 이념보다 경제적 이익 앞세워… 김정은 다시 만나 ‘북핵 딜’ 가능성
- 국방부·환경부 홈피 등 디도스 공격 받아… 친러 해커 단체 “우리가 했다”
- 이재명 선고 앞두고… 김동연·김경수 독일서 만났다
- “마지막 기회… 국민이 세다고 느낄 쇄신책 내놔야”
- 딥페이크 신고한 영상 24시간 내 바로 지운다
- “수입품에 관세 20%” 美 무역장벽 더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