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동학- 철학실종시대, 사라진 강원 동학사를 찾아서] 19. “강원은 동학의 잠재적 힘 키운 자리”

김진형 2024. 11. 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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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은 생명사상…‘농민반란’ 누명 이제는 벗어야”
싸움 대신 조화 이루는 삶 추구
‘개벽운동’ 표현 반란 시선 탈피
동학군 자주독립 유공 서훈해야
일제 횡포에 천도교로 바꿔 등록
어용 학자 유사 종교 취급·폄하
현대적 수련 등 대중에 다가가야
박인환·차상찬 선생 선양 필요
북한 관계 개선 통로 열 대표 단체
동학 삼경설 모든 생명 공경 사상

수운 최제우 탄생 200년. 천도교로서는 가장 의미가 깊은 해다. 동학 130주년도 함께 맞이한 올해 가을, 윤석산 천도교 교령은 최근 수운 최제우 출세 200년 행사에서 “사람과 자연, 자연과 자연이 서로 유기적 관계를 이루고 서로가 아끼고 존중해야만 새로운 차원의 삶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시인이며, 인제 출신 박인환 시인의 연구의 권위자이기도 한 윤 교령은 동학의 정신적 가치를 알리는데 매진하고 있다. 그는 정선에서 쓰인 동학의 최고 역사서 ‘최선생문집도원기서’를 번역한 국내 최고의 동학 연구자이기도 하다.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윤석산 교령을 만났다. 최제우 탄생 200년을 맞아 다시 출간한 시집 ‘용담 가는 길’에 실린 시도 본지에 보내 왔다. “천도교인은 절을 잘하고, 말을 잘하고, 술을 잘한다”는 그의 언변에서 모두를 한울처럼 생각하는 가족같은 친근함도 느껴졌다. 진심 어린 인사와 말과 배려의 가치, 우리에게 남은 동학의 정신이다.

▲ 윤석산 천도교 교령이 최근 서울 수운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130년 전 민중들이 동학에 뛰어든 이유는.

“동학 지도자들이 정말 훌륭했다. 우리가 사는데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사사천’은 일마다 한울님 아님이 없고, ‘물물천’은 사물마다 한울님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동학은 민중들이 저마다의 일에 긍지를 갖게 했고,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줬다. 삶을 바꾸려니 자신이 처한 현실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수운 선생의 가르침은 모든 계층을 망라해 손잡고 힘을 합해야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직 동학혁명을 농민 반란 으로만 보는 시선이 있다.

“일부 진보 세력이 동학을 계급투쟁으로만 이용했다. 머리띠 두르고 죽창 들고 싸우는 사람으로만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동학은 싸움 대신 조화를 이루고 어떻게 훌륭한 삶을 이룩하느냐에 있다. 중요한 것들은 드러나지 않은 채 표피만 이용했다. 이제는 누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학의 진정한 모습은 생명사상을 통해 너의 나의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나는 혁명이라는 말 대신 ‘개벽운동’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혁명이 권력자를 바꾸는 것이라면 개벽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동학군 서훈문제도 남아 있다.

“2차 동학농민 혁명은 일제에 대항한 자주 독립운동이다. 을미의병 참가자들은 서훈이 완료됐는데 아직 동학 지도자들에 대한 서훈이 안된 것은 문제가 있다. 전국의 수많은 곳에서 동학군이 죽었다. 이제는 그들의 넋을 위로해야 한다.”

-천도교 입교 계기는.

“집안이 천도교인데 30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전에는 혁명만 생각했는데 수련을 하면서 내가 한울님을 모셨음을 알게 됐다. 방학 때이면 경기 가평 화악산에 올라가 수련을 했다. 한울님에게 물려받은 성품을 체득하는 과정이었다. 주문을 열심히 외우다 보면 주문만 남고 나는 없어진다. 계속 수련하다 보면 한울님만 남고 나는 없어진다. 계속 읽다 보면 한울님은 없어지고 나만 남는다. 이렇게 반복하면 한울님도 없고 나도 없다. 알고 보면 너도 있고 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바로 하늘의 모습을 깨닫는다.”

-동학·천도교만의 종교적 특수성이 궁금하다.

“기복신앙이 없다. 나 하나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잘 살아야 한다. 우리는 수능 100일 기도 같은 것을 안한다. 정당하게 시험 봐서 대학에 가야지, 내 자식 합격시키고 다른 자식 떨어뜨리는 일은 안한다. 한울님은 전지전능하지 않고 선과 악을 택하지 않는다. 내 개인의 행복을 위하는 행동을 우리는 ‘각자위심’이라고 말한다. 각자위심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나 혼자 잘 사는 것보다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천도교의 또 다른 특징은 전문교역자가 없다. 교도라면 능력에 따라 누구든지 교령사나 교령이 될 수 있다. 종교 내 권력이 없다.”

-천도교인은 절을 잘하고, 말을 잘하고, 술을 잘한다는 말이 있다고 들었다.

“절 잘한다는 것은 굽신거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진심어린 인사한다는 뜻이다. 말 잘한다는 것은 현혹하는 청산유수가 아니라 진심이 담겨서 상대를 감복시키는 일이다. 내 진심을 담고 상대에게 정성을 다해서 말하고, 상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사람과 자연, 신이 전부 그렇게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제도권 종교가 아니라는 시각이 아직도 있다. 교세도 많이 줄었다.

“한일합방 후 일제가 사회단체를 다 없애고 종교·교육단체만 남기면서 동학이 천도교로 이름을 바꿔 등록했다. 이후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 어용학자들이 유사 종교로 치부했다. 여기서 오해가 생기고 가치 폄하를 당했다. 슬픈 현실이지만 차근차근 하면 된다. 기존 지도자들이 잘못한 부분도 많다. 현재 동경대전은 너무 어려워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시 만들었다. 경전의 가르침은 어렵게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불교의 템플스테이처럼 현대적 수련방법도 만들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영성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학을 갑오년 혁명과 3·1운동으로 보고 있지만 나는 영성 때문에 천도교를 믿는다. 천도교가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향후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는 천도교의 역할이 중요해지지 않을까.

“지금은 막혔지만 북한과의 통로를 가진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천도교다. 필요하면 외교도 해야하고 견제도 해야 한다. 통일 문제는 정치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되고 문화적인 해결 방법을 찾는다면 꽉 막힌 길도 열릴 수 있다고 본다.”

-현대 사회는 130년 전과 다른 문제들을 껴안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비전문가가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혼란은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끌어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여야가 갈라져 싸우니 갈등이 불가피하다. 모든 문제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일본 문제도 우리 국익에 이익이 되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역사를 보면, 시류에 편승한 사람들이 부귀영화를 누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웃과 형제들과 정말 행복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우리 집안 형제들도 한 달에 한번씩 만나 밥을 함께 먹는다. 그게 너무나 좋다. 어떤 사람들은 형제 간에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잘 산다는 가치를 어떻게 현창시키느냐가 바로 동학이 하는 일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좋다고 가르치는 세태가 문제다.”

-박인환 시인 연구도 하셨다.

“김수영은 4·19 이후 민중, 참여 시인의 대표, 박인환은 센티멘탈리즘의 대표가 됐다. 잘못된 상정이다. 1983년 박인환 평전을 쓴 것도, 많은 사람들이 김수영을 읽듯 박인환도 읽어야 하는 시대임을 알리고 싶었다. 분노와 저항도 필요하지만 인간의 내면은 페이소스 같은 다른 측면의 감정도 필요하다. 박인환이 아니면 누가 가능했겠나. 가치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양분화 시켜 가르치고 외우게 하는 것은 문학이 아니다. 2026년은 박인환 탄생 100주년이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 다시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춘천 출신 언론인이자 천도교인 차상찬 선생이 국내 언론 처음으로 전봉준 장군의 사진을 공개했다. 별건곤 1931년에서다.

“차상찬 선생이 천도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셨고 업적도 많다. 옛날 야담이나 전설 등을 많이 모아 책을 냈다. 최근 전집이 나오고 있지만 학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관심도가 낮다. 굉장한 지식인이었는데 업적을 객관화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미진했다. 천도교인으로서도 차상찬 선생은 훌륭하신 분이다. 선양사업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동학에 있어 강원도가 갖는 의미는.

“수운 최제우 선생이 1864년 순도했고, 제자인 해월 최시형 선생은 강원도 영월로 피신해 정선, 강릉, 인제를 발판삼아 흩어진 동학도를 모았다. 그렇기에 강원도는 동학혁명의 잠재적인 힘을 키운 자리다. 최시형 선생이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세력을 키우지 못했다면 1894년의 동학혁명은 일어날 수 없었다. 1880년 인제에서의 동경대전 초판 발간도 모든 계획의 수순이었다. 결집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줘야 했기 때문이다. 천도교 최초의 역사서인 도원기서도 정선에서 쓰였고 내가 처음으로 번역했다. 홍천 자작고개와 같은 전적지도 의미를 지니지만, 그 지역의 사람들도 피해 사실 자체 보다 오히려 동학의 근본을 얘기해 달라는 경우가 많았다.”

-동학의 가치를 생명의 문제로 풀어낸다면.

“동학은 한 마디로 생명사상이다. 인간 위주가 아니라 생명 위주의 생각이다. 내 생명만큼 타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우주 전체적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가 한울님을 모셨고, 내가 한울님을 먹는 것이다. 두 가지 이상의 기운이 합쳐져서 다른 기운을 만들어 낸다. 개별 생명만을 강조하다 보면 서로 싸우고 갈등하게 된다. 개미 한 마리도, 저 풀 한 잎도 한울이 모신 생명으로서 소중하다. 나만 하나님을 모신게 아니다. 오늘 점심에 먹은 밥이 내게 들어와 새 기운을 만든다. 하늘·사람·만물을 공경하는 삼경설도 동학에서 나왔다.

-기후위기의 해법도 될 수 있겠다.

“그런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 나만의 위기가 아니라 모두가 같이 넘는 것이다. 산에서 뱀이 콱 물어 죽을뻔 했는데. ‘아니 뱀도 하느님 모신 것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이 정도의 사랑이 가능하도록 진정한 한울님의 마음을 회복해야만 한다. 동학의 가르침 중 ‘경물’이 있다. 무조건 아끼는 게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 따라서 써야 한다는 뜻이다. 사물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쓸 수 있는 그 경지가 되면 어떤 도덕을 완전히 갖췄다고 얘기할 수 있다. 이게 천도교가 가르치는 일, 동학이 남긴 철학적 메시지다.” 진행·정리/김진형

■ 윤석산=1947년 서울 출생. 한양대 교수·한국시인협회장 역임. 한국시문학상, 편운문학상, 펜문학상 등 수상. 시집 ‘용담 가는 길’, ‘밥 나이, 잠 나이’ 및 학술서 ‘박인환 평전’, ‘일하는 한울님, 해월 최시형의 삶과 사상’ 등 출간. 현 천도교 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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