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총장 간선제 일방 추진에 '발칵'…학내 반발 심화
1993년 이후 직선제…교수·학생·직원들 비대위 구성
교수들 "사실상 임명제…이사장이 대학 사유화"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회관 건물 앞에 '총장님은 우리 손으로 뽑을래요. 앞으로도 직선제로 쭈우욱'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수막 게시 주체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공동비상대책위원회'다.
한국외대가 총장 선출방식을 기존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학교 구성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교수와 학생들은 공동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하고 공동대응에 나섰다.
6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외대 학교법인 동원육영회는 총장 간선제 도입을 논의 중이다. 김종철 동원육영회 이사장은 지난 6월25일 진행된 제6차 이사회에서 "주요 대학들의 총장 선출 제도를 확인했는데 상당수 대학들이 총장후보추천위원회 선정 절차를 거쳐 3~5명 내외의 후보를 이사회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확인된다"며 "이런 총장 선출 방식을 포함해 다양한 방식에 대해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절차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사회에 참여한 임원들도 "현재 우리 학교법인은 공식적인 총장 선출 규정이 없으므로 어떠한 선출 방식이든 공식 규정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 "직선제의 장점도 있지만 현재 직선제를 채택하는 학교는 몇 군데 없으며, 선출 방식을 떠나 리더십을 갖춘 훌륭한 분 모시는 것이 목적이므로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며 간선제 도입에 힘을 보탰다.
한국외대는 지난 1993년부터 교수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해왔다. 이후 2021년부터는 학생과 직원까지 구성원 모두 투표에 참여해 총장을 뽑고 있다. 직선제는 학내 구성원의 직접 선거로 총장 후보를 선출·추천하고 학교법인 이사회에서 임명하는 방식이다. 한국외대는 2021년 제12대 총장 선거 당시 교수와 직원, 학생으로 구성된 총장후보추천위원회(총추위)에서 직선으로 선출한 후보자 2명을 이사회에 추천하면 이사회에서 면접 등을 통해 최종 총장으로 임명하는 절차를 밟았다.
반면 학교법인이 제안한 간선제는 총추위에 법인 대표자를 새롭게 포함시켜 법인 산하에 총추위를 꾸리고, 총추위가 이사회에 후보를 무순위로 추천하면 이사회는 후보자 중 1인을 총장으로 선임하는 방식이다. 내년 제13대 총장 선거를 앞두고 학교법인이 30년 넘게 이어져온 직선제 대신 간선제를 도입하려 하면서 교수와 학생, 직원 등과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이다.
한국외대 교수협의회와 서울캠퍼스·글로벌캠퍼스 총학생회, 한국외대 직원노동조합은 각 대표자 9명이 참여하는 비대위를 꾸리고 공동대응에 나섰다. 비대위와는 별개로 기존 직선제 투표 반영 비율을 논의하기 위한 규정개선협의회(협의회)도 구성했다.
이사장이 총장 선출방식 관련 명확한 규정이 없는 허점을 파고들어 차기 총장 선출을 앞두고 독단적으로 간선제로 바꾸려 한다는 게 비대위의 주장이다. 동원육영회 정관 제43조2항에는 '법인이 설치·경영하는 학교의 장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용한다'고만 돼 있다.
비대위는 간선제가 아닌 사실상 임명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달승 비대위원장(교수협의회 회장)은 "그동안 자율적으로 운영되던 총추위를 이사회에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새롭게 총추위를 꾸리려 하는 것은 사실상 임명제로 보인다"며 "현 이사장이 대학을 사유화하는 부분이 있고 총장을 간선제로 뽑는 건 단계적으로 대학을 사유화하는 마지막 퍼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교수협의회 관계자는 "이사장의 복심은 모르지만 이사회가 원하는 총장을 뽑고 싶은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며 "이사장이 제안한 간선제 방식도 많은 구성원들이 불편해하는 이유는 이름이 간선제지 그냥 임명제에 불과하다. (법인에서) 뽑고 싶은 사람을 뽑겠다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학생들도 이사장이 총장 직선제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외대 학생들이 결성한 '훕스피커' 조세연 단장은 "법인이 총장 직선제 변경을 위해 개별 단과대학, 대학원 등 각 전공·학문단위별 설득을 진행하려고 한다"며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총장을 선출한다면 학생 의견은 배제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외대 재학생 A 씨는 "학생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학생들 말을 따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B(19) 씨도 "비대위 소속은 아니지만 학생의 의견을 덜 듣겠다는 것이니, 학생으로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학생들은 빠른 시일 내 협의회에서 규정 개선안을 논의할 것도 촉구하고 있다. 협의회는 서울캠퍼스와 글로벌캠퍼스 총학생회장 2명과 교수협의회장, 노동조합지부장 총 4명으로 구성됐다. 비대위와 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양 캠퍼스 학생회장 임기가 내달 종료돼 자칫 잘못하면 논의의 구심점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학교법인 측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학교법인은 교수협의회장과 직원노동조합지부장 등에게 보낸 공문에서 "직선제는 선거 과정에서 과열 선거 운동으로 교육과 연구 분위기가 훼손되고 구성원 간 파벌이 형성되는 등의 부작용으로 대학 경쟁력이 저하되는 측면이 있다"며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서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각종 개혁 시책들을 추진하기 위해 비전과 리더십을 갖춘 총장 임명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법인과 학교는 엄연히 별개의 기관으로 사안마다 담당자도 다르고 다른 회사"라며 말을 아꼈다.
zz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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