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침대에서 떨어졌다

한은형 소설가 2024. 11. 6.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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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떨어졌다. 액체가 주르륵 쏟아져서 닦았더니 피였다. 뇌수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얼굴과 잠옷과 바닥에 피가 흥건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그렇게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벌떡 일어나다가 얼굴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아직 어디가 다쳤는지 모르고 만약에 심각한 상태라면 골든타임을 넘기지 말아야 하니까. 피는 계속 흐르고 있었는데, 어디서 피가 나는지 모르는 상태로 거실로 이동했다. 소파에 누워서 상처를 누르며 지혈했다. 지금 상황이 응급실을 가기 어렵다는 걸 알기에 제발 응급실에 갈 만한 상황이 아니길 빌었다. 뼈가 부러졌거나 머리가 다쳤거나 호흡 곤란이 오거나 그러지 않기를. 피를 닦으면서 빌었다.

피가 멎었다. 한 시간 삼십 분 만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멈춘 건 아니고 찢어진 틈으로 계속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철철 나오진 않았지만 여전히 피가 나왔다. 오른쪽 광대뼈로 떨어졌는지 오른쪽 얼굴이 심각했다. 광대뼈가 부었고, 눈썹과 눈 사이가 찢어졌다. 눈동자의 혈관도 터져서 구사마 야요이의 그림처럼 흰자에 빨간 동그라미가 생겨 있었다. 눈썹과 눈꺼풀 사이의 벌어진 틈으로 피가 나오는 광경이 신기했다. 고작 2cm 찢어졌는데 어쩌면 그렇게 계속 피가 나오는지 말이다. 살을 지탱하고 있는 피부가 조금 터졌을 뿐인데 그 많은 피가 쏟아지다니. 처리를 하면서 동시에 나는 나의 고통과 번거로움을 관찰했다. 일인칭 시점과 삼인칭 시점이 제각각 분주히 작동했다.

다음 일은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의사인 친구와 의사가 가족인 선배에게 전화해서 어떤 병원에 가야 하는지 물었다. 내과를 가야 할지 외과를 가야 할지 피부과에 가야 할지 판단할 수 없어서 그랬다. 내가 들은 답은 ‘외과를 가서 보여주고, 꿰매야 한다면 성형외과로 가라’였다. 동네 외과가 열자마자 갔다. 빨리 꿰매야 한다고 해서 수술대에 눕게 되었는데 의사가 말했다. 흉터가 생기는 게 싫으면 지금이라도 멈추고 성형외과로 가라고. 소독까지 다 하고 처치하려던 찰나에 나는 멈췄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성형외과 수술대에 누워 얼굴을 꿰맸다. 일곱 바늘을 꿰맸다고 의사가 말했다. 5일 후 실밥을 풀 때까지 얼굴에 물이 닿지 않게 하라고 했다.

침대에서 떨어진 것은 오전 7시 30분. 성형외과에 간 것은 오전 11시 30분. 가장 길고 정신없던 네 시간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넋 놓고 있을 수 없는 역설의 시간이었다. 동시에 많은 생각이 콸콸 흘러갔던 시간이기도 했다. 머리가 깨지거나 팔다리가 부러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낙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떨어지거나 넘어져서 다침. 또는 그런 상처’가 낙상이다. 지인의 어머니가 계단에서 떨어져 계단이 없는 집으로 이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침대에서 떨어져 다치는 것은 드문 일이겠으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거나 길을 걷다 넘어지는, 낙상이라는 사고는 얼마나 흔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생과 사가 갈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나의 병원 투어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성형외과를 간 다음 날 안과와 정형외과도 갔다. 성형외과 의사가 안과에 가서 눈에 문제가 없는지 보라고 했고, 안과 의사는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을 찍어봐야 한다고 했다. 안와골절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그러면 코를 풀다가 눈동자가 튀어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검사를 받고 나서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얼굴 좀 찢어졌다고 이런 소동을 벌이고 있는데 다른 아픈 사람들은 얼마나 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혼자 보행기를 끌고 병원에 온 노인도 보았다. 내가 노인이었다면, 사고가 났을 때 집에 아무도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했다. 과연 무사했을까?

80cm 높이 침대에서 떨어진 지 두 달째다. 처음에는 걸을 때도, 말할 때도 얼굴이 욱신거렸다. 팔다리와 얼굴의 멍은 빨개졌다 까매졌다 노래지면서 요란하게 사라졌다. 눈동자의 빨간 점도 사라졌다. 하지만 얼굴은 아직 아프다. 상처는 아물고 있다. 무사하지 못한 바람에 그동안 무사했던 것에 감사했고, 무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침대에서 떨어진 바람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침대에서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진 게 아니었듯이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도. 그래도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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