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창덕궁은 시장 연결된 ‘도시건축’… 山까지 감안한 ‘친환경 설계’[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이것은 주나라의 사회규범을 담은 주례(周禮)의 고공기(考工記)를 동아시아의 궁궐과 도시를 만드는 규범으로 삼았기 때문에 한양뿐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동아시아 수도들 역시 마찬가지다.
‘고공기’는 그림과 함께 궁궐을 중심으로 도시의 크기를 비롯해 성문 위치와 개수, 도로 크기 등을 자세히 설명하여 예(禮)를 갖춘 도성을 계획하도록 방향을 제시했다. 》
도시는 행정적 의미의 ‘도성’과 상업적 의미의 ‘시장’을 합성한 단어다. ‘고공기’에는 전조후시(前朝後市)라 하여 행정 영역과 상업 영역을 명시하고 있다. 경복궁 앞에 있었던 6조 거리와 창덕궁 앞에 있던 조방이 ‘전조’이고, 현재 종로는 ‘후시’에 해당한다. 동아시아에서 시장의 형태는 12세기에 남송을 기준으로 크게 전환된다. 남송 이전에는 구역 안에 시장이 설치되었다면, 남송 이후로는 통행이 빈번한 가로를 따라 시장이 배치된다. 한양의 경우에는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 다시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한양의 주요 간선도로 양쪽에 상업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시전행랑’을 한양 도성 전체에 설치해서 기존 도시를 재구성하고 수도로서 면모를 갖추도록 계획했다. ‘시전행랑’은 동일한 열주가 반복된 구조로 유럽에서는 ‘아케이드’와 같다. 이런 혁신적인 선형도시건축은 서울에 대한 새로운 자부심이 될 수 있다.
한양의 궁궐은 동아시아의 규범을 따르는 동시에 산세를 중심으로 한 풍수를 적용하고 있다. 풍수를 단순히 복을 바라는 미신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지만, 실제 풍수는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생태적 생활을 의미한다. 10만 명 이상이 먹을 수 있는 식수와 육로, 수로를 이용한 물자의 수송, 국토 전체를 관리할 수 있는 적절한 위치, 수도 방위 등은 매우 실질적이고 구체적일 수밖에 없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경복궁을 바라보면 바로 뒤 북악산이 있고, 그 뒤로 멀리 두 배 이상 높은 북한산이 있다. 하지만 두 산의 거리 차이 때문에 광화문에서 바라보면 두 산의 높이는 비슷하게 보인다. 이것은 묘한 착시를 일으켜 평지에 두 봉우리가 우뚝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두 산 사이 거리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창덕궁은 북한산 응봉 자락을 따라 몇 개의 산봉우리를 거쳐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정면의 긴 도로가 종로3가까지 축을 이루고 있다. 외국인들이 서울에 와서 가장 놀라는 사실 중 하나가 도심 사이로 바로 옆에 붙은 것처럼 보이는 산의 풍경이다. 거대한 빌딩 사이로 보이는 산의 풍경은 매우 인상적이며 인왕산이나 북한산에 올라 바라보는 서울은 감탄을 자아낸다. 풍수를 바탕으로 산과 강을 고려한 건축과 도시풍경은 선조들의 놀랍고도 감사한 유산이다.
1907년 전후 그려진 북궐도형과 동궐도형은 가로세로 약 1.14cm의 모눈을 긋고 그 위에 중건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의 전체 건물들을 다이어그램 형식으로 그린 배치 도면이다. 모눈 한 칸은 건물의 기둥과 기둥 사이인 ‘간(間)’을 나타낸다. 각 칸 안에는 방, 청, 문, 주(주방), 낭(행랑), 고(창고), 측(화장실) 등을 적어서 ‘간’의 용도를 알 수 있게 했다. ‘간’들이 연결된 행랑의 특이점은 각 모눈 안에 적힌 글자의 방향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글자의 방향이 건물의 정면 방향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문(門)’이라는 글자가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으면 오른쪽이 들어오는 방향이 된다. ‘방(房)’도 글자의 방향에 따라 방의 정면이 표현된다. 이런 글자의 방향을 통해서 복잡한 궁궐의 공간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일반적인 ㅁ자 집은 중정을 중심으로 집의 정면이 있지만, 궁궐의 경우는 一자, ㄱ자, ㄷ자, ㅁ자 등의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이 모여 있어 반드시 그렇지 않다. 정면 칸이 있는 마당은 내부적으로 사용되고 배면 칸이 있는 마당은 통로로 사용된다. 외부 공간의 성격을 건물들의 정면과 배면의 관계를 통해서 구성하는 것은 디지털 비트인 0과 1로 디지털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경복궁과 창덕궁은 자연스럽게 배치한 것 같지만 동아시아의 규범, 자연환경, 철학이 건물들의 집합적 관계를 통해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다. 전통은 현재의 가치 위에서 더욱 빛난다. 옛것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온고지신은 미래의 바탕이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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