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글로벌 ‘관세 난타전’ 비화 땐 한국 수출 60조원 넘게 감소 관측도

박준우 기자 2024. 11. 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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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대미 무역흑자, 무역압력 빌미되나…한미 FTA 개정 압력 가능성
미중 공급망 블록화 강화도 韓경제 부담…안덕근 “통상 리스크에 신속 대응”
게티이미지뱅크

무차별 ‘관세 폭탄’을 공약으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머쥐면서 세계 무역 질서가 극심한 불확실성에 휩싸일 전망이다.

미국이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열고, 중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이에 맞불을 놔 ‘세계 관세 대전’이 벌어지면 세계 무역 위축으로 한국은 최악에 60조원대에 달하는 수출이 감소하는 직접적 경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새 미국 정부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커진 한국의 대미 무역 수지 흑자를 빌미 삼아 한국을 특정해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압력을 비롯한 통상 압력을 가해 올 가능성도 거론돼 정부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맞춘 대응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보편 관세 WTO 회원국에 재앙"…세계 무역 1조달러 타격 예상도=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후 공약대로 관세를 인상한다면 세계 무역 판도에 즉각적 변화가 초래된다.

그는 중국산엔 60%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나머지 국가 수입 상품에도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현재도 높은 대중 관세 장벽을 더욱 높이고, EU·캐나다·한국 등 핵심 동맹에까지 보편 관세를 매겨 자국 산업과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생각이다.

무차별 ‘관세 난타전’ 양상이 벌어지고 세계적으로 자국 우선주의 통상 정책이 강화되면 수출 주도 한국 경제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상무장관을 지낸 윌버 로스는 최근 정치 전문 매체 더힐 기고문에서 보편 관세 도입 시 "다수 WTO 회원국에 재앙적 일이 될 것"이라며 글로벌 무역에 1조 달러에 달하는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국은 직접 관세 부과로 대미 수출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관세 전쟁으로 무역에 타격을 받은 중국 등 제3 국가로 수출도 감소하는 다층적 피해를 볼 수 있다.

미국이 중국산 IT 품목에 고율 관세를 매겨 중국 기업이나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애플 등 글로벌 기업에 영향을 주면 중국 현지로 반도체 등 중간재를 공급하는 한국 수출에도 타격을 주는 식이다.

구체적인 한국의 피해 전망도 나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달 31일 보고서에서 미국이 양자 FTA가 있는 한국을 포함해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주요국이 맞대응하는 최악 시나리오가 펼쳐진다면 한국 수출이 최대 448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감소도 0.29%∼0.69%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 미국의 ‘8위 적자국’ 한국…트럼프 압박 대상되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눈에 주요 무역 적자국인 한국이 눈에 들어 선순위 무역 압박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미국 정부 통계로 한국은 미국의 주요 적자국이다. 한국은 2021년까지 미국의 14위 무역 적자국이었는데 이후 꾸준히 순위가 올라 올해 1∼8월 기준 중국, 멕시코, 베트남, 독일, 아일랜드, 대만, 일본에 이어 8위까지 올라왔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2023년 444억달러로 역대 최대였다. 올해 1∼9월도 399억달러로 연간 기준으로 또 최대 기록 경신이 유력하다.

한미 FTA가 존재하지만 새 미국 정부가 대한국 무역 압박을 마음먹었을 때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장상식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FTA는 법률에 준하는 외국과의 조약이라서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만 수정하긴 어렵다"면서도 "트럼프 집권 1기에 수십 년 된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해 철강 수입 제한을 한 것처럼 다른 방안을 동원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관세 전쟁’으로 인한 무역 위축 외에도 미중 정면충돌 우려가 커진다는 점도 한국 경제에는 또 하나의 불안 요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가드레일’을 통한 중국과의 ‘경쟁 관리·충돌 방지’ 기조를 중시했다.

반도체, 이차전지 등 경제 안보에 직결되는 첨단 전략 산업에 초점을 맞춰 중국을 배제하되 일반 경제 부문에서는 상호 이익이 되는 중국과의 협력 틀을 유지하는 이른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차원의 정교한 접근법을 취했다는 평가다.

반면 트럼프 진영은 공급망 전반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디커플링(decoupling) 전략을 더욱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의 1∼2위 교역국은 나란히 중국, 미국이다. 관리되지 않은 미국과 중국 간의 전면적인 충돌은 두 나라와의 교역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큰 불확실성을 드리우게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산업 전반에 걸친 미중 디커플링이 심화할 때 한국 경제의 후생이 최대 1.37% 감소할 것으로 우려했다.

◇ 정부 "다양한 고위급 채널 가동으로 대미 협력 강화"

정부는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미국발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가운데 여러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통상 리스크에 신속하게 대응해 우리 경제 안정과 기업들의 이익을 지켜내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그간 여러 공개·비공개 채널로 국내 국제·통상 전문가,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통상 대응 전략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대미 접촉(아웃리치)을 확대해 미국 조야와 네트워크 확대를 도모해왔다.

한 통상 당국 관계자는 "민감성 탓에 외부 공개할 수 없지만 트럼프 후보 당선을 포함한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정부 차원의 대응책 논의가 이뤄져 왔다"고 전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전면적 정책 수정이 있을 것이나 당분간 트럼프 행정부 조치가 정비될 때까지 차분히 상황을 주시하는 게 필요하다"며 "정부와 산업계가 글로벌 산업 전략을 통해 시장 및 주력 품목 다각화하는 노력을 최대한 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열린 글로벌 통상전략회의에서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미 대선 이후에도 다양한 고위급 채널을 통해 산업·통상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의 원활한 경영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미 양자 차원의 대응과 협상력 제고 못지않게 정부가 안정적 세계 통상 질서의 유지를 공동 이익으로 하는 중견 국가 간의 연대에도 적극 나서는 등 국제 통상 환경 조성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국과 같이 대외 개방도가 높은 국가의 경우 다자 통상 질서 회복과 안정적인 통상환경 구축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미들파워 이코노미’인 중견 국가들과 연대와 공조를 통해 공급망의 블록화가 전 산업에 걸쳐 진행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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