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클라이밍ㅣ전양준·김한진] 용암처럼 폭발하여 거룡의 등골을 타고 오르리라

신준범 2024. 11. 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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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등산학교 교육센터 직업강사들의 인수봉 하늘길ㆍ거룡길 등반

힘과 힘의 대결이다. 좌향 사선 크랙. 왼쪽으로 비스듬히 뻗은 바위틈이다. 크랙에 두 손을 넣고 양 발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써서 올라야 한다. 5.10a 난이도라 쉽게 봤다간 추락하고 만다. 힘과 균형감각을 요하는 만만찮은 바윗길이다. 사선 크랙을 오르면 옆으로 이동해 다시 사선 크랙을 오르는 계단식 라인이다.

1969년 박창규, 장경린, 강영택 등이 개척한 북한산 인수봉 하늘길이다. 피치마다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짜릿한 크랙과 슬랩이 섞여 있어 중급 클라이머의 등용문이라고도 불린다. 단순히 힘이 좋아서 오를 수 없고, 기술만 좋다고 오를 수 없다. 힘과 밸런스, 자연 바위 경험이 쌓여야 오를 수 있는 바윗길인 것이다.

폭우가 지나간 다음날 깨끗한 하늘을 배경으로 거룡길 1피치를 오르는 전양준.
등반라인을 바라보며 거룡길 1피치를 오르는 전양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반듯한 미남형의 사내가 로프를 묶는다. 튀어나온 팔의 힘줄에서 평소 운동량을 가늠한다. 전체적으로 등반 내공이 있어 보이는 단단한 몸이다. 선반처럼 튀어나온 좁은 바위턱인 레지(ledge)를 따라 이동해 5m 높이의 사선 크랙 아래 선다. 볼트에 로프를 건다.

하늘에 닿을 듯 뻗은 하늘길이란 낭만적인 이름과 달리 1피치 크랙은 사고가 많이 났다. 사망 사고가 나면서 볼트가 생겼으며, 첫 볼트에 로프를 걸었다 해도 추락하면 아래 레지에 부딪혀 발목을 다치곤 했다.

양손을 크랙에 집어넣고 박차고 올라선다. 오른발은 오른쪽 크랙 옆 벽을 밀고, 왼발은 슬랩을 디디며 짝힘을 이용한다. 아래에서 보기와 달리 살짝 오버행이다. 균형을 잡아 몸을 지탱하기가 쉽지 않다. 자세가 불안해 보이나 싶더니 몇 번 동작을 가다듬어 바로 잡는다. 넓게 벌린 다리와 바위틈에 집어넣은 그의 팔에서 근육의 폭발적인 힘이 전해 온다. 뜀뛰기 하듯 살짝 왼발을 튕겨 올린다. 양발과 양손을 번갈아 쓰며 힘으로 사선 크랙을 눌러 올라선다.

손가락 끝으로 낚아챈 홀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김한진. 거룡길 1피치의 인공등반 구간을 자유등반으로 돌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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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 스타일은 다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는 두 사람.

두 번째 사선 크랙은 몸이 풀려 수월하게 올라 옆으로 이동하여 피치를 마친다. "완료"를 외치는 힘 좋은 사내는 코오롱등산학교의 막내 강사 김한진(33세)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 온 코오롱등산학교 교육센터 김성기 팀장은 그의 등반스타일에 대해 "꼼꼼하면서도 과감한 등반을 하며 온사이트에 강하다"고 평한다. 또한 "막내 강사인 만큼 기본기를 쌓으며 성장하고 있는 중이며, 숙련되면 폭발적인 기량을 보여 줄 것"이라 높게 평가한다.

몸 자체가 돌멩이 같은 다부진 체격의 사내가 사선 크랙으로 진입한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역삼각형의 단단한 등판에서 베테랑 클라이머의 분위기가 전해 온다. 과감하게 몸을 띄워 오르면서 균형을 잡는다. 탁월한 힘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재밍을 구사해 까다로운 크랙을 수월하게 돌파한다. 몸이 풀렸는지 트래버스해 만나는 두 번째 사선 크랙은 여유롭게 올라선다. 넘치는 파워의 사내는 코오롱등산학교 중견 강사인 전양준(47세)이다.

전양준·김한진 강사는 우이동 코오롱등산학교 교육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업 등산 강사다. 동양 최대의 실내빙벽장인 인공빙장과 실내암장 관리와 교육을 맡고 있다. 이곳을 찾는 지역주민, 소방관 등 공무원, 코오롱스포츠 직원 등 다양한 교육을 매주 진행하고 있다.

타고난 힘으로 거침없이 등반하는 전양준

전양준 강사는 1989년 오산대학교 산악부에서 등반을 시작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워낙 힘이 좋았다. 장난친다고 살짝 밀어도 친구들이 다치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네가 운동하면 주변 사람들 다칠까봐 겁난다"며 운동을 못 하게 했기에, 산악부에서 시작한 암벽등반은 그의 적성에 딱 맞았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입생 때 연중 100일을 산에 머물렀고, 1년 만에 인수봉 40개 루트를 모두 선등으로 올랐다. 군 제대 후 노량진클라이밍센터에 다니며 더 깊이 빠지게 되었고, 인생의 진로를 등반으로 정하게 되었다. 당시 박형규 센터장과 박희영씨의 영향을 받아 개척과 루트세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많은 빙벽대회의 루트세팅을 하기도 했다.

하늘길 1피치 크랙 사이에 프렌드를 밀어 넣는 김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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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진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훈남 총각 강사다.

1995년 빙벽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청악산우회에 가입, 1997년 제1회 설악산 토왕폭 빙벽대회에서 준우승에 오를 정도로 기량이 급성장했다. 1997년은 여로 모로 그에게 전환점인 해였다. 국내 선운산에 5.12b까지 오른 그였는데, 태국 프라낭에서 5.13급 루트 두 개를 완등했다. 그는 "일주일 동안 70개 루트를 온사이트로 오르며 기량이 성장했으며, 외국 클라이머들의 등반을 보며 많은 걸 느꼈다"고 한다.

해외원정을 다니기 위해 건물외벽 청소를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동안 했다. 이런 열정으로 1998~1999년에 설악산 소토왕골에 청악암장을 개척했으며, 2005년 트랑고 네임리스타워(6,239m)를 신 루트로 등정했다. 이후 중국 쓰꾸냥 빙벽원정, 미국 요세미티, 남미 아콩카구아 등지에서 활발한 등반을 해왔다.

설악산 소토왕골 개척 당시 15m를 추락하는 큰 사고를 당한 그는 그때의 충격으로 허리 디스크 판 하나가 완전히 눌려 없어졌다. 그때의 후유증이 심해져 결국 외벽청소를 그만두게 되었고, 2011년부터 코오롱등산학교 교육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거룡길 2피치, 용의 몸통을 타고 인수봉 정상을 향해 승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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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등산학교의 중견강사 전양준과 막내강사 김한진이 한 줄을 묶었다. 하늘길에서 본 서울 강북구와 노원구 일대가 시원하다.

지금은 중국 등반전문가로 변신 중이다. 방송통신대학 중국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며 꾸준히 중국 등반을 다녀왔다. 올해에만 5번을 다녀왔다. 개인 등반과 중국 코오롱등산학교 교육 관계로 다녀왔으며, 하반기에도 화산의 600m 벽 루트 개척을 위해 갈 예정이다. 신 루트는 중국 클라이머와 함께 개척할 계획이다. 땅이 넓은 만큼 루트를 낼 만한 암벽이 많지만, "외국인이 지나치게 초등과 신 루트 개척을 많이 하면 현지 산악인들의 거부감을 살 수 있기에 중국 산악인과의 소통과 교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요즘은 원정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중국 쓰꾸냥을 자주 추천한다.

"히말라야 5,000~6,000m 산 원정만 가도 보통 한 달이 걸려요. 날씨가 나쁘면 더 길어질 수도 있고요. 시간이나 비용을 내기가 만만찮아요. 중국은 가깝잖아요. 일주일 정도면 충분히 정찰하고 쉬운 곳은 5,000~6,000m라 해도 정상을 다녀올 수 있어요. 고소를 체험할 수 있는 5,000m대 등반을 준비한다면, 현실적인 부분과 효율적인 부분을 고려했을 때 중국이 답이에요."

거룡과 사내들의 힘 대결

하늘길을 내려와 거룡길로 간다. 1972년 거리산악회 장봉완(현 한국등산학교 교장)·김제훈·고 전재운이 주축이 되어 개척한 남면의 대표적인 루트 중 하나다. 크랙과 슬랩, 페이스가 까다롭게 포진하고 있어 전 피치를 자유등반으로 오르면 상급자, 즉 중수 이상의 고수로 인정받게 된다.

김한진이 거룡의 꼬리를 부여잡는다. 툭 튀어나온 용의 발톱을 부여잡고 힘이 넘치면서도 유연하게 몸을 끌어올린다.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강약을 조절하며 길을 찾고, 오르기를 반복한다.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동작으로 바위와 호흡한다. 하단을 넘어 좌향 사선크랙을 따라 1피치의 크럭스로 향한다. 인공등반으로 올라서는 이들이 많은 페이스 아래에서 힘 쓸 준비를 한다. 자유등반으로 넘어서면 5.12b에 이르는 거룡의 크럭스다.

능숙하게 로프를 당기는 김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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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에서 활발한 등반을 하고 있는 전양준. 방송통신대 중국어학과에 재학 중이며 아침에는 중국어 회화학원을 다닐 정도로 열심이다.

루프처럼 살짝 튀어나온 벽은 맨들맨들하다. 홀드가 작고 멀다. 발을 올리기 쉬운 곳도 없다. 사선 크랙을 따라 최대한 왼쪽으로 몸을 올려, 일어나며 손을 뻗는다. 멀다. 잡거나 디딜 곳 없이 추락한다. 탄력이 넘치는 등반을 하던 김한진이 막힌다. 신중히 일어나 보고, 과감하게 몸을 던져도 보지만 번번이 추락한다. 선배인 전양준은 "내가 갈 테니 내려오라"고 장난스럽게 얘기한다. 전양준은 "김한진 실력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데 심리적인 부분에서 막혀 오르지 못하는 것"이라 진단한다. 그의 도발이 통했는지 순간 용암이 분출하듯 몸을 휙 던져 홀드를 잡아낸다. 인수봉 남면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띠, 용의 몸통에 올라선다. 악전고투로 크럭스를 뚫자 순풍에 돛 단 듯 용의 몸통을 타고 쌍볼트에 확보를 한다.

김한진은 부산 사나이다. 대학을 잠깐 다니다 하사관으로 입대해 중사로 제대했다. 북한산 송추계곡 인근에서 군생활을 하며 22세 때부터 불광동 써니사이드 실내암장에서 운동하며 등반에 입문했다. 그의 인생에 전환점을 마련해 준 스승인 코오롱등산학교 김성기 강사를 여기서 만난 것이다.

경민대학교 소방학과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려던 그를 김성기 강사가 붙잡았다. 김 강사가 소개해 준 회사에서 2년을 일하고, 다시 부산에 내려가려 마음먹은 김한진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김성기·박미숙 강사 등과 함께 미국 요세미티 등반을 갔다. 여기서 그는 거대한 벽을 자유등반으로 오르는 즐거움에 눈을 뜨게 된다. 인공등반 루트가 많은 요세미티에서 자유등반 루트를 찾아 등반한 것이다.

알프스 6대 북벽을 오르고 싶다는 김한진. 목포대 레저스포츠학과 석사과정 수료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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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을 마치고 장비를 정리하는 전양준과 김한진. 북한산 기슭의 우이동 코오롱등산학교 교육센터를 지키는 강사들이다.

알프스 6대 북벽에 도전하는 훈남 강사

이후 2010년 우이동 코오롱등산학교 교육센터가 생기며 지금까지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인공홀드로 등반에 입문한 그가 거친 야생의 산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건, 알프스를 가면서부터다. 2011년 불광동 암장 회원들을 주축으로 알프스 에귀디미디, 마터호른, 돌로미테 등반을 하면서 알파인 거벽등반의 혹독한 성취감을 알게 되었다.

2012년에는 돌로미테 3대벽이라 불리는 마르몰라다, 토파나, 치마그란데 북벽을 올랐다.

올해에는 피츠바딜레 북벽을 캐신루트로 오르며, 유럽의 대표적인 북벽 6개 중 2개를 오르게 되었다. 알프스 6대 북벽 등반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겨버린 것이다. 치마그란데 북벽과 피츠바딜레 북벽 등반에서 악천후도 만나고 계획에 없던 비박을 감행해야 했지만 지금은 거벽등반이 "그냥 좋다"고 말한다.

"책으로만 보던 역사가 있는 벽을, 옛날 그대로 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그 유명한 산악인들을 따라서 제가 등반할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전양준은 전투적으로 거룡에 뛰어든다. 거침없는 몸짓으로 용을 향해 돌격한다. 좀처럼 떨어질 것 같지 않던 검고 강한 근육의 사내가 크럭스를 넘지 못하고 뚝 떨어진다. "이걸 어떻게 올랐냐"며 탄식을 한다. 여유롭게 쉬지 않고, 용서할 수 없다는 듯 붙고 또 붙는다. 인공등반의 유혹을 버리고 자유등반으로 기어코 올라선다.

용의 몸통인 인수봉 남면의 거대한 띠에 오른 두 사내가 먼 곳을 바라본다. 중국과 알프스, 바라보는 산은 다르지만 같은 길을 가는 코오롱등산학교 강사 전양준·김한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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