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클라이밍 | 김민선·박희연] 나비 날개를 가진 소녀, 진달래 꽃 사이로 날아오르다!

신준범 2024. 11. 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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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김민선과 매드짐 박희연의 불암산 볼더링
발레리나의 꿈을 접고 스포츠클라이머로 변신한 김민선이 바위를 응시한다.

순간 소녀는 나비가 되고 바위는 꽃이 되었다. 소녀의 등반은 흡입력이 있었다. 부드럽고 강인해 흡사 나비가 꽃을 향해 날아오르는 순간 같았다. 과감하게 몸을 날려 흐르는 홀드를 잡아채자, 온 몸의 근육이 나비의 아름다운 문양처럼 살아났다. 여인이 저 근육을 만들기 위해선 사내들보다 얼마나 더 많은 땀을 흘렸을까. 알에서 나와 애벌레를 거쳐, 번데기가 되어 비로소 나비로 태어난 것이다. 소녀에서 클라이머가 된 김민선·박희연이다.

불암산 불암사 인근의 볼더링 숲을 찾았다. 불암산 볼더링 타운은 2006년부터 조규복·차호은(조규복클라이밍센터)씨가 주축이 되어 개척해 지금은 새로운 볼더링 메카로 각광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자연바위의 감촉이 익숙한 건 아니다. 인공 홀드의 촉감에 익숙한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들이다. 단순히 취미로 등반하는 것이 아닌 인공암벽을 오르는 데 모든 것을 건, 프로선수들이다. 실내암장과 실외인공암벽에서 등반하던 선수들이 모처럼 산에 들었다.

몇 년 만에 찾은 불암산 불암사 기슭, 산 위에서 내려오며 볼더를 고른다. 몸 풀기로는 세다 싶은 사선 오버행 크랙, 오를수록 크랙이 좁아져 홀드가 미세해진다. 발이 시원하게 걸리는 곳도 없어 중상급자가 아니면 스타트조차 쉽지 않다. 김민선과 박희연이 돌아가며 바위를 끌어당긴다. 손이 들어가는 순서와 밸런스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바로 떨어진다. 시작부터 어려운 문제에 막힌 듯 보였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김민선이 치고 오른다. 발로는 균형만 잡고 두 팔의 근력으로 수수께끼 같은 크랙에 번갈아 손을 넣으며 쑥쑥 올라가 문제를 해결한다. 불암산이 놀란 걸까. 바람이 불어와 벚꽃 잎이 흩날린다. 155cm의 단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파워와 강한 승부욕으로 압도적인 무게의 바위를 제압했다.

클라이머가 된 발레리나 김민선

까다로운 오버행 크랙을 강한 근력과 유연한 균형감각으로 오르는 김민선.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소속인 김민선(19)은 여자 스포츠클라이밍의 떠오르는 샛별이다. 중학교 때부터 전국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했으며, 고교 때부터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다. 원래는 발레리나가 꿈이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오랫동안 발레를 했지만 "키가 작아서 선이 예쁘지 않아 그만뒀다"고 한다.

등반은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그녀의 부친은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정해진 날은 무조건 산행을 하는 등산마니아였다. 때문에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 따라 지리산 산행을 하는 등 산을 찾는 것이 익숙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실내암장에서 인공홀드를 처음 잡았다. 처음 입문한 해에 초등부 전국대회에 나가 난이도와 속도 경기에서 3위에 올라 재능을 입증했다. 몸이 유연하고 등반을 풀어내는 감각이 남달랐다.

이후 운동을 그만두며 클라이밍은 짧은 추억으로 남는 듯했으나, 중학교 때 다시 홀드를 잡았다. 등반할 때의 짜릿했던 느낌이 잊혀지지 않았다. 발레와 클라이밍은,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 양극단의 운동 같지만 김민선은 "비슷하다"고 한다.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이 다 있고 밸런스를 잘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박희연, 김민선 두 사람 모두 광명 매드짐 실내암장에서 대표인 김인경(덕성여대산악부OB) 강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김인경 강사는 못 올라가는 걸 질책하기보다 행여 잘못 떨어져서 다치지 않을까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엄마 같은 스승이다.

김민선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경기도 광명의 매드짐 실내암장에서 김인경 강사의 집중적인 트레이닝을 받았고, 이후 실력이 급성장해 지난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 대회 난이도 경기에서 우승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단국대학교 국제스포츠학과에 스포츠클라이밍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등반에 올인한 박희연

불암산 볼더를 처음 찾은 박희연. 바위의 촉감이 익숙지 않음에도 몸을 날려 상단의 밋밋한 홀드를 잡아채는 순간이다.

모서리가 뱃머리처럼 튀어나온 바위. 크랙으로 시작되는 사선 오버행 라인이 오를수록 희미해지는 모양새다. 오를수록 잡을 것이 미세하고 멀어지는 까다로운 볼더인 셈이다. 흰 피부의 박희연이 매달린다. 170cm의 큰 키와 긴 팔다리가 늘씬하다. 문제는 두려움이다. 완등 직전까지 올라가 한 번만 팔을 뻗으면 끝이다 싶은데 높이에 대한 두려움에 풀썩 떨어진다. 자연 바위 등반 경험이 많지 않음을 감안하면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녀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다부지게 라인을 타고 올라 과감하게 팔을 던져 흐르는 홀드를 낚아챈다. 상단의 보이지 않는 홀드를 손으로 찾아 발을 올려 기어코 올라선다. 마음 졸이며 바라보던 스파터 김민선과 김인경 강사가 환성을 지른다.

박희연은 "아직 자연바위를 잡을 때 손이 따갑지만, 바위를 놓치면 더 다칠 것 같아 더 세게 홀드를 잡고 올랐다"고 한다. 그리곤 "무서우면서도 재미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매드짐 소속인 박희연(23)은 고려대학교 신소재공학과를 올해 졸업한 재원이다. 취미로 등반을 하던 전공교수의 권유로 2014년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원래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었으나 등반에 매료되어 매드짐에서 훈련하며 선수로 대회에 나가고 있다.

학교 친구들은 취업도 하지 않고 등반만 하는 그녀에게 "미친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녀는 클라이밍에 모든 걸 쏟아 붓는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박희연은 "올인하고 싶을 정도로 등반이 재미있다"고 한다.

불암산의 인기 볼더인 망치를 오르는 박희연. 김민선이 예의주시하며 추락에 대비한다.

길쭉하게 툭 튀어나온 바위 아래 크러시패드를 깐다. 불암산의 인기 볼더인 '망치 볼더'다. 김민선이 바위 천장에 매달린다. 중력을 극복하고 바윗길의 리듬을 탄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19세 소녀의 등 근육이 막강한 진가를 드러낸다. 섬세한 균형감각과 동물적인 등반본능으로 온 몸의 근육을 총동원해 바위를 오른다. 완등 직전 크럭스, 확 끌어당기거나 발이 딱 걸리는 홀드가 없다. 오버행을 버텨준 근력이 하강 곡선을 그릴 만큼의 시간, 추락을 예상하는 순간에도 김민선은 동작을 바꿔가며 오를 방법을 찾는다. 흐르는 바윗면에 과감하게 발을 올리고 양손으로 바위를 끌어안아 그냥 오른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무브와 과감한 선택이 일궈낸 완등이다.

오를수록 희미해지는 홀드 까다로운 볼더를 강한 집념으로 오르는 김민선.

그녀의 성장을 지도한 김인경 강사는 "엄청난 탄력을 가지고 있다"며 "동물적인 순간적 반응능력이 상당히 강하고 몸이 유연해 부상도 덜한 편"이라 평한다. 김민선의 약점은 단신이라는 것, 대신 작은 만큼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은 테크닉을 구사해 악착같이 오르는 것이 그녀의 스타일이다.

마당바위 기존길을 정교한 감각과 파워로 오르는 박희연. 고려대 신소재공학과를 올해 졸업했으며 현재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에는 스페인 로데야르에서 5.13b 루트를 완등하는 성과를 거뒀다. 온사이트는 이때 5.13a까지 올랐다. 늦은 오후 한국에서 함께 온 친구들이 먼저 떠나고 손정준 센터장의 확보로 40m 벽을 올랐다. 완등했을 때의 그 느낌이 아직 손끝에 남아 있다.

김민선은 사춘기라 예민했던 중학생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우울한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등반이었다. 벽을 오르는 순간은 모든 고민이 다 사라졌다. 그녀의 목표는 등반을 계속하는 것이다. 몇 등을 하겠다기보다는 더 나은 등반실력으로 계속 나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순수한 소녀에서 강인한 클라이머로 다시 태어나다

1 등반이 끝나고, 크러쉬패드를 메고 기분 좋게 웃으며 하산하는 박희연과 김민선(오른쪽). 2 등반 전 홀드를 청소하는 박희연. 탁월한 체격 조건과 체력, 긍정적인 마인드가 강점으로 꼽힌다. 3 단신의 단점을 유연함과 노력으로 이겨내고 있는 김민선. 홀드를 쥔 손에서 완등에 대한 의지가 묻어난다.

마당바위 오른편의 사선 크랙 라인을 박희연이 오른다. 잘 올라가다 마지막 승부처에서 휙 떨어진다. 자연 바위의 높이에 대한 두려움, 인공 볼더링에 비해 불확실한 안전에 대한 생각이 등반 기량을 가로막고 있다. 김인경 강사는 "체격 조건과 체력, 정신력이 무척 좋다"며 "기술적인 면만 가다듬는다면 잠재력이 무한하다"고 얘기한다.

박희연이 대학 졸업 후에도 등반에만 몰두할 수 있는 건 친언니의 도움이 크다. 직장인인 언니는 동생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향후 몇 년간 경제적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그녀의 꽃무늬 초크백 역시 언니가 손수 만들어준 것이다.

가족의 지원 속에 박희연은 무섭게 등반에 몰두하고 있다. 꾸준히 운동하는 것은 기본이며, 올해 첫 대회였던 코엑스에서 열린 볼더링 대회에는 경기가 끝나고서야 신종플루에 걸린 걸 알았을 정도로 경기에 온 신경을 몰입했다. 새장을 빠져나와 처음 산에 온 것마냥 들뜬 표정의 그녀는 "앞으로 자연바위 볼더링을 더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마당바위의 '기존(V4)길'을 오른다. 사선으로 흘러내린 바위의 무늬를 따라 나비처럼 소녀들이 오른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암벽화의 발끝에서 나풀거린다. 사뿐사뿐 날개짓하듯 정교한 몸짓으로 볼더를 풀어낸다.

나비 문양처럼 예쁜 외모의 김민선과 박희연은 안전한 길이 아닌, 거친 바윗길을 택했다. 크럭스를 맞닥뜨렸을 때 두 사람은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몸을 던지는 승부사 기질을 갖고 있다. 순수한 소녀에서 강인한 클라이머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꽃 사이로 나비가 날아오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아하고 강인한 날개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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