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클라이밍ㅣ김인경·문지연] 불의 여인과 물의 여인이 있는 미묘한 볼더링 숲
비가 올 것 같았다. 상관없이 산에 들었다. 의외로 조용했다. 미세한 물기가 떠다니고, 디딜 때마다 "사사삭"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퍼졌다. 메마른 숲 향이 알싸하게 코끝을 적시더니, 5분쯤 지나자 느껴지지 않았다. 도시의 산인데 깊은 숲처럼 고요하고, 낮인데 저녁처럼 어둑했다. 묘한 느낌의 모락산과 이상한 힘이 있는 두 여인은 잘 어울렸다.
김인경·문지연과 함께 경기도 의왕시 모락산에 들었다. 모락산 볼더링타운이라 불리는 곳으로 2006년 경기클라이밍센터에서 개척했다. 육산처럼 보이는 낮은 산에 큼직한 바둑돌 같은 볼더가 곳곳에 있다.

길을 잘못 들었다 싶었는데 아래에 바위가 보인다. 여성 클라이머들에게 첫 인사를 건넨 바위는 동굴 오버행이다. 입을 쩍 벌리고 들어오라 유혹한다. 조-채인(V7), 대낮에도 컴컴한 루프(천장)에 매달려 밖으로 나오면 끝나는, 영화 '쇼생크탈출'을 압축시켜 놓은 듯한 볼더다. 몸풀이로 센가 싶은데, 김인경이 크래시패드를 털썩 밀어 넣는다.
숏커트의 헤어스타일처럼 행동도 과감하다. 8년 만에 온 모락산이라 온사이트와 다를 바 없지만 물러섬이 없다. 루프 가장 깊숙한 곳 어둠 속에서 스타트한 그녀의 숨소리가 굴 밖으로 뿜어 나온다. 힘 있게 팔을 쭉쭉 뻗고 세심하게 발을 걸어 까다로운 루프를 빠져나온다. 빛 속으로 나온 그녀가 크럭스를 남겨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홀드가 너무 멀다 싶은데 반동을 주더니 과감하게 몸을 날려 낚아챈다. 깔끔하게 등반을 끝낸 그녀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김인경(42)은 덕성여대 산악부 출신이다. 광명 매드짐(Mad Gym) 실내암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세대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체육대학 일반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여러 대학에서 스포츠클라이밍 강의를 했다.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소속이며 대학산악연맹 스포츠클라이밍 이사다. 대산련 공인심판 1급 자격을 가지고 있어 대회 심판으로 있으며 대산련 1급 공인지도자로서 프로급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긴 이력처럼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등반인생을 풀어왔다.
1993년 덕성여대 산악부에 입회하며 산에 빠져든 그녀는, 히말라야 고산등반의 꿈을 품었다. 그러나 1997년 대학산악연맹 가셔브룸2봉 원정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 크레바스에 빠져 15m를 추락했는데 운 좋게 눈 턱에 걸리며 5시간 만에 구조된 것이다. 2003년 다시 덕성여대 산악부원들로 팀을 꾸려 알래스카 데날리에 도전했으나 악천후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후 원정을 대비한 훈련으로 했던 스포츠클라이밍에 빠져들었다. 20대 후반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경기등반을 시작했지만,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특유의 열정으로 숱하게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2009년에는 스포츠클라이밍 아시아 챔피언십 종합 3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그녀의 열정은 교육으로 옮겨 갔다. 대학 스포츠클라이밍 강의를 위해 실내암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는데, 눈칫밥을 먹을 수밖에 없으니 암장을 차리게 된 것이다.


클라이밍은 몸으로 푸는 수학
사선 크랙 앞에 문지연(41)이 섰다. 크랙에 손을 걸고 부드럽게 발을 옮긴다. 섬세하고 신중한 무브로 거친 바위를 부드럽게 풀어낸다. 상단을 올려 칠 때도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동작을 만들어 올라선다. 문지연은 김인경의 덕성여대 산악부 후배다. 부모를 따라 어릴 적부터 등산을 다니며 대학에 들어가면 꼭 산악부에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학년 때 산악부를 그만두었고 이후 워킹산행을 주로 했다.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한 건 김인경 덕분이었다. 대학원 시절 한국체육대학까지 통학 거리가 멀었던 김인경이 문지연의 집에 신세를 지면서, 대신 스포츠클라이밍을 가르쳐주기로 한 것이다. 2007년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한 문지연이 점점 빠져들면서, 두 사람은 2010년 동업으로 매드짐 실내암장을 개업했다.
김인경은 뜨거운 불이고 문지연은 차가운 물이다. 수학과 출신인 문지연은 논리적이며 합리적이다. 등반 스타일도 정반대다. 문지연은 "클라이밍은 몸으로 하는 수학 같다"고 말한다. 거리를 가늠하고 무게 중심을 이동해 밸런스를 잡고 하는 과정이 수학의 원리와 닮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정확한 분석을 통해서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문지연 스타일이다. 반면 김인경은 "클라이밍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하는 것"이라 말한다. "본능적인 동작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지연은 웃지 않는 무뚝뚝한 신입생이었다. 때문에 산악부에서 사람들과 친해지기가 어려웠는데, 김인경은 그녀의 숨은 진심을 보았다. 대학산악부 시절 김인경은 먼저 다가가 살뜰히 챙겨 주었고, 문지연은 대학산악부를 나간 후에도 김인경에게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인연을 이어왔다. 현재 문지연 역시 대산련 공인심판이며 대회에 심판으로 참가한다. 그럴 때면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힘들지만 잘 봐야 하는 그런 곳에 배치되는데 조용히 자기 역할을 다한다.
"지연이는 한결 같아요. 우직하고, 잔머리를 쓰지 않아요. 화려하지 않지만 묵묵히 뒤에서 텐트 치고 짐 나르는 그런 존재예요."

Array

큼직한 바위로 내려와 에스라인 변형 루트를 번갈아 오른다. 2010년 이후 선수보다는 지도자로 매진하고 있지만 김인경은 여전히 역동적인 무브로 노련함을 더해 볼더를 풀어낸다. 김인경의 최고 그레이드는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선운산에서 오른 5.13a~b이다. 그러나 하나의 루트를 수십 번 반복해 오르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아 온사이트를 주로 한다. 최고 5.12d까지 온사이트로 올랐으며, 지금도 5.12b까지는 온사이트로 오를 정도로 강하다.
문지연은 올해 포항 학담암에서 5.11d를 온사이트로 오르며 자신의 최고난도 등반을 갱신했다. 그러나 신중하고 조용해 질문을 하면 골몰히 생각하고 짧게 답한다. 등반 스타일도 반대라 김인경은 파워가 좋아 크랙에 강하고, 문지연은 균형 감각이 좋아 페이스에 강하다.
두 사람은 매드짐의 공동대표이자 강사다. 다른 성격이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보완하며 5년 동안 잘 운영해 왔다. 최근에는 김인경이 여자 선수를 길러내는 데 두각을 내고 있다. 그 시작은 사솔 선수였다. 현재 김민선, 조혜미, 박희연, 노지민 등을 가르치고 있다. 단순한 실내암장 회원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로 트레이닝하고 있다. 특히 여자부 경기에선 제자들이 대부분 상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성공적인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Array

"여자 선수는 여자 코치가 가르치는 게 효과적이에요. 여자 아이들은 설득과 이해의 관계가 돼야 해요. 남자 코치들은 여자 선수가 울면 당황하지만, 여자 코치는 감정이 북받쳐서 그런지, 속이려고 그런 건지, 생리 때문에 그런지, 힘들어서인지 알 수 있어요."
김인경과 문지연은 실내암장을 운영하는 데 세 가지 수칙을 세웠다. 두 사람은 이 수칙을 철저히 지킨 덕분에 암장을 지금껏 잘 운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인사하기와 술 마시고 입실금지, 긍정 마인드다.
"어린 선수들에게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해요. 겨우 등반 하나 잘한다고 인생의 선배들에게 버릇없이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긍정 마인드는 항상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운동하는 것이다. 특히 "나는 못 해요"라거나 "너는 그것밖에 못 하니" 같은 부정적인 말을 세 번 이상하면 더 이상 암장에 나올 수 없단다. 문지연은 암장을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우리"라고 말한다. 3명 이상만 모이면 분파가 생기고 분열이 생기는데 그렇지 않은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항상 서로 인사하고, 한 달에 한번 통합수업을 열어 볼더링 게임을 즐기며 정을 나눈다. 때문에 "탈의실에 뭔가 두고 가더라도 없어지는 일이 없고 끼리끼리 무리지어 파를 나누는 일도 없다"고 한다.
두 사람은 나이 마흔이 넘었지만 미혼이다. 이들은 "먼저 시집가는 사람이 솔로로 남는 사람에게 암장을 넘겨주기로 했다"고 웃으며 얘기한다. 김인경은 아이 키울 때도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는다면 전인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곁에서 따뜻한 스킨십을 나누며 알뜰히 보살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일을 모두 그만둬야 해요. 과연 내가 피해의식을 갖지 않고 그럴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겉을 보면 문지연이 여성적이고 김인경은 반대인 것 같지만, 막상 같이 있으면 김인경이 요리를 하며 엄마 역할을 한다.

Array

강성백이 내가 살 길을 알려 주었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내릴 줄 알고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우중등반을 한다. 빗방울이 "툭툭 투두둑" 낙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쁘지 않다. 묘한 분위기의 모락산이다. '시리우스', 2m 높이의 작은 볼더다. 오버행이라 빗방울이 직접 들이치지 않는다. 산악부 선배인 김인경이 코치를 하고 문지연이 벽을 매만진다. 벽을 보는 눈빛이 깊다. 문지연이 집중력을 발휘해 홀드를 움켜쥐고 일어선다.
두 클라이머는 독특하다. 만약 내일 인류가 멸망한다면 김인경은 클라이밍만 할 것이며, 문지연은 수학 문제를 원 없이 풀겠다고 한다. 특히 문지연은 로또에 당첨되면 노인복지센터를 짓고 싶다고 한다. 어릴 적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여 할머니 손에 컸는데, 그것 때문인지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복지센터를 짓고 싶다고 얘기한다.
"저는 좋고 싫음보다는 목적이나 사명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항상 옳고 그름을 많이 생각해요. 책임감, 사명감, 소명감을 찾으려 많이 노력해요. 사람들은 제가 너무 딱딱하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요."
스스로를 차분히 분석하듯 말한다.
"저는 워킹 타입이지 등반 타입은 아니에요. 분석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고 침착하고…, 암장을 운영하면서 그 안에서 재미를 발견했어요."
문지연은 스포츠클라이밍과 분석하는 능력을 살려 경희대 대학원에 진학해 스포츠 의과학을 전공했다.
김인경은 2001년 설악산 장군봉 등반 중 사고로 죽은 강성백(정승권등산학교 강사)을 잊지 못한다. 가깝게 지낸 사이였기에 충격이 컸다. 6개월 동안 우울증으로 집 밖을 나가지 못했으며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 매년 기일이 되면 함께 등반했던 친구들과 그가 죽은 자리를 찾는다. 강성백은 평소 산에 대해 얘기할 때 진지했고 늘 세 가지를 이루고 싶어했다. 우리나라 모든 산을 가고 싶다는 것, 흰 산을 가고 싶다는 것, 선수로 좋은 성적 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가 죽은 후 김인경은 대신 이뤄 주겠다고 결심했다. 2002년 '강성백을 추모하며'라 적힌 표지기를 봉우리마다 걸면서 백두대간을 56일 만에 일시종주 했다. 2003년 등정에는 실패했지만 등반대장으로 데날리를 다녀왔으며, 먼저 등정하는 사람이 강성백의 초상화를 정상에 묻기로 했었다. 이후 숱하게 많은 스포츠클라이밍과 드라이툴링대회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세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내가 살 길을 강성백이 알려 준 것 같다"고 말한다.
한 명이 바위를 타고, 한 명이 손을 뻗어 추락에 대비한다. 빗방울이 숲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여성 클라이머의 움직임이 숲과 우아하게 어울린다. 차가운 물 같은 여인과 뜨거운 불 같은 여인의 이상한 힘이 모락산을 지배하고 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