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클라이밍 이창현ㆍ장하숙 부부] 등반으로 인연 맺고, 등반으로 살아가는 클라이밍 부부

신준범 2024. 11. 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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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노스페이스 다이노월, 아내는 노원클라이밍센터 강사
가래비 우벽 믹스루트를 오르는 이창현. 피겨4자세로 오버행 턱을 돌파하고 있다.

영하 20℃에 이르는 강추위를 가래비는 반기고 있었다. 20m에 이르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씨익 웃고 있었다. 경기도 양주 도락산 가래비빙장이 시리도록 하얀 빙폭을 드러냈다. 나이아가라폭포를 축소시킨 것 같은 긴 벽은 사람의 솜씨다. 과거 채석장으로 쓰이다 지금은 클라이머들의 차지가 되었다. 1990년 한국등산학교 동문들이 발견해 '산학폭'이라 이름 지었으나 가래나무에서 유래한 가래비란 이름으로 굳어졌다.

서울에서 가깝고 차만 세우면 바로 빙벽이 펼쳐져 수도권 클라이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중앙 빙벽에는 줄이 여럿 걸려 있지만 바위와 얼음이 섞인 우벽에는 아무도 없다. 아니다. 한 사내가 벽 앞에 있다. 흰벽이 아닌 갈색벽이다. 얼음과 바위가 섞인 믹스등반인 것이다.

놀랍게도 살을 베는 듯한 추위에 한 겹 옷만 입었다. 그는 고요하다. 피켈을 양손에 들고 벽을 바라보는 모습이 차분하다. 홀로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기운이 흘러나온다.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 속에서 한 사내의 멈춰 있음이 유독 눈에 띈다. 고수인 것이다.

가볍다. 마땅히 디딜 곳이나 피켈 걸 곳이 없어 보이는데, 계속 오르고 있다. 비스듬히 누운 15m의 등반라인, 바위가 보일 정도로 얇은 얼음이 얼었다. 얼음 코팅 벽인 것이다. 비스듬한 크랙에는 딱히 편히 발을 놓을 수 있는 홀드나 맘 편히 타격할 수 있는 얼음이 많지 않다. 확실히 발이나 피켈이 걸리는 곳이 없는 페이스처럼 보이는 루트를, 미묘하게 풀어낸다.

자세히 보면 바위 사이의 미세한 틈에 바일을 걸고 양발을 안정감 있게 벌려 어떻게든 위로 치고 오른다. 엄청난 힘이 느껴지거나 화려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지만 그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대한의 벽을 오른다. 상단 얼음이 두꺼운 곳에서 스크루를 박느라 지체한 걸 제외하면 별 어려움 없이 벽을 올라 최상단 오버행에서 몸을 쑥 당겨, 완등해 낸다.

아이젠 이빨을 힘차게 박아 넣는 장하숙.실내암장 강사답게 가벼운 몸놀림으로 빙벽을 오른다.

사내가 벽을 내려오자 확보를 하던 여인이 얼어붙은 그의 손을 대신해 매듭을 풀어 준다. 클라이밍 강사 부부인 이창현(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44)과 장하숙(노원클라이밍센터·42)이다.

경기 등반을 눈여겨본 이들에게 이창현은 친근한 이름이다. 2007년부터 꾸준히 스포츠클라이밍과 아이스클라이밍대회에 출전해 늘 결승에 진출했다. 특히 아이스클라이밍에 두각을 보여 2009년에는 코리언시리즈 종합 1위에 올랐으며, 2013년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인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에서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아시아 챔피언 박희용에 이은 2인자의 자리에 이름을 올린 셈이다. 하드프리 최고난이도는 마이산 오페라하우스에서 오른 5.13d이며, 선운산에서 5.13a까지 온사이트로 올랐다. 최근에는 자연암벽보다 경기등반에 집중하고 있다.

노량진클라이밍센터에서 기량 닦아

이창현·장하숙 부부는 각자 스포츠클라이밍 강사로 활동 중이다. 남편은 서울 번동 노스페이스 다이노월에서, 아내는 '이창현 노원클라이밍센터'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등반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클라이밍 부부인 것이다.

두 사람을 이어준 것도 산이었다. 전북 남원이 고향인 이창현은 1991년 전주공대 산악부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구례가 고향인 장하숙 강사는 1991년 전북대산악회에 가입하며 등반을 시작했다. 같은 학번인 둘은 전공도 건축공학으로 같았다. 대학산악연맹 연합등반을 통해 서로 얼굴만 알던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건 서울에 올라오면서부터다.

두꺼운 빙벽 구간으로 접어들기 전 스크루를 박고 있다.
이창현이 등반을 앞두고 얼은손에 입김을 불어 녹이고 있다. 아내 장하숙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본다.

인연이었는지 직장이 옆 건물에 붙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졌다. 건축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등반으로 통했다. 노량진클라이밍센터에서 함께 운동하고 함께 산을 다녔다. 장하숙은 일에 파묻혀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생활에 지쳐 있었다. 산이 그리워졌고 인수봉을 오르고 싶었다. 이창현은 그녀를 데리고 선등으로 인수봉을 올랐고 이들 사이는 더 돈독해졌으며, 결혼에 골인했다.

1990년대에 전북과 서울에서 등반을 이어가던 이들은 결혼한 뒤 산에서 멀어지게 된다. 아내인 장씨는 임신과 육아로, 이씨는 일이 바빴다. 그는 도봉X스포츠랜드 실외암벽 관리를 맡았으나, 암장을 비롯한 인라인 등 전체 시설을 관리해야 했기에 막상 자기 등반을 할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코오롱에서 관리하던 시설이 도봉구와 시설관리공단으로 옮겨가면서 공무원이 될 기회도 있었으나 직장을 접고 실내암장을 개업했다. 이후 노원클라이밍센터를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장하숙은 두 아이가 초등생이 될 즈음부터 암장 운영을 맡았고, 이창현은 2007년부터 우이동 O2월드 실내암장 강사, K2 CnF 강사를 거쳐 현재 노스페이스 다이노월 강사를 맡고 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암장을 거치며 두루 노하우를 쌓았다. 덕분에 "스포츠클라이밍 강습에 있어서는 자신 있다"고 한다.

매서운 날씨 탓에 한참 동안 불을 쬐다 벽 앞으로 간다. 중앙 빙벽 오른편의 얼음벽이다. 물이 살짝 흐르고 있어 등반하는 사람이 없지만 개의치 않는다. 장하숙 강사는 7년 넘게 회원들을 지도해 왔기에 군살 없이 날씬하다. 시즌 첫 얼음, 긴장될 법하지만 거침없이 타격하고 킥한다. 그녀는 부드러운 스냅으로 손목을 쓴다. 부드럽게 바일을 꽂고, 힘 있게 아이젠을 박는다. 쫙 뻗은 N보디 자세에서 긴 다리가 눈에 띈다. 장점을 살려 가벼우면서도 당찬 등반을 한다.

1 까다로운 오버행 구간에서바일을 입에 물고 자세를 바꾸는 이창현.2 가래비 우벽의 전형적인 믹스등반 루트를 영하 20℃에 육박하는 강추위 속에서 이창현이 오르고 있다.

상단에 대형 고드름이 달린 구간에서 옆으로 방향을 튼다. 12월이라 아직 물이 흐르는 얼음이다. 아래에서 보는 사람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빙질이 걱정되지만, 오로지 등반에 몰입해 과감하게 아이스바일 날을 꽂는다. 남편은 걱정이 되는지 로프를 풀어 주면서도 무브가 바뀔 때마다 조언을 덧붙인다. 갈수록 몸이 풀리는지 상단으로 갈수록 N보디 자세가 시원하게 나온다. 가벼운 무브로 등반을 마치고 하강한다.

지리산 자락이 고향인 그녀가 대학산악부에 들어가자 어머니는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살았는데, 또 산이냐"고 했다. 그는 "지리산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월출산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연히 월출산 산행을 갔다가 멋있는 풍경에 반해 산악부에 가입했다. 기합을 받기도 하고 힘든 산행을 하면서도 산악부에 남은 건 "암벽등반이 재미있어서"였다. 산악부 첫 등반이었던 대둔산 신선바위에서 운동화를 신고 쑥쑥 오른 그녀를 선배들이 다시 보게 되었다. 지금은 암장 관리하며 아이들 키우느라 자기 등반할 시간이 없지만, 선운산에서 5.11b까지 온사이트로 오른 실력파다.

등반에 굶주린 야수의 몸짓

이창현은 경기등반을 즐긴다.

"선수대기실에서 출전을 기다리는 순간이 가장 설레요. 루트파인딩 때 봤던 홀드를 하나하나 기억하는 순간이 가장 짜릿하고 행복해요. 막상 등반할 때는 아무 생각 없어요. 연습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니 정직한 운동이에요."

장하숙 역시 남편을 따라 대회를 다녔지만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스트레스가 되어 자주 출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대회에 나가는데, 동영상을 찍을 때도 긴장해서 손이 떨릴 정도라고 한다. 아들 도현 역시 부모의 열정과 재능을 물려받아 초등부 경기에서 여러 번 우승을 차지한 꿈나무 챔피언이다. 선운산에서 5.12a급 루트를 온사이트로 올라 바위꾼들을 놀라게 했다.

1 부드러운 스냅으로 타격하는 노원클라이밍센터 장하숙 강사.2 믹스등반의 짜릿함을 즐기는 이창현.주로 경기등반을 하지만 승부욕보다는 즐기는 마음으로 오른다.
산악부 연합등반에서 만나 등반으로 연애한 이들 부부는 지금도 자일파트너로 살고 있다.

이창현이 옷을 벗는다. 우벽 앞에 선다. 코팅된 얼음마저도 적은 드라이툴링 등반이다. 추위에 몸이 굳어 보였던 첫 등반과 달리, 등반에 굶주린 야수처럼 공격적인 몸놀림이다. 페이스처럼 보이는 비스듬한 오버행 라인에 어떻게든 피켈 날을 끼워 밸런스를 잡아 몸을 끌어올린다. 부드럽게 퀵드로를 걸어 로프를 통과시킨다. 파워풀하진 않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무브, 바일을 입에 물더니 손을 바꿔 오버행 턱을 '피겨4' 자세로 돌파한다. 빙벽을 오르는 이들의 타격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홀로 바일을 걸면서 소리 없이 오른다. 조용한 파이팅이다. "완료" 하는 낮지만 분명한 음성이 가래비에 울린다.

클라이밍으로 맺어진 부부는 대둔산을 좋아한다. 대학산악부 시절 첫 등반을 했던 곳이며, 단 둘이 처음 왔던 산이었다. 대학 시절 등반을 배운 추억이 많은 곳이라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은 찾는다. 대둔산에서 온 가족이 등반을 하고 서로의 자일 파트너가 되어 주는 것이다.

경기에 임하는 태도도 승부욕보다는 즐기는 분위기다.

"몇 년 전만 해도 월드컵 우승이 목표였어요. 지금 목표는 다치지 않고 꾸준히 대회에 나가는 거예요. 월드컵 최고 기록인 4등에 만족해요. 이젠 아들 등반도 보면서 경기를 즐기는 거죠."

자기 등반보다 아들의 등반에 울고 웃는 나이가 된 이창현과 장하숙. 로프로 이어진 이들 클라이밍 가족은, 이제 새로운 벽을 향한 등반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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