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한국인의 소울푸드, 국밥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 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밥은 우리네 '소울푸드'다.
옛날 선비가 과거 보러 가는 길에 주막에 들러 먹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영혼의 음식이다. 국밥은 오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나루터, 장터 등에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였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을운동회는 온 동네가 축제의 장이었다. 운동장에 만국기 끈이 묶여있는 미루나무 아래서는 낯익은 동네 아주머니가 분주했다.
천막 앞에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이글거리는 장작불을 조절하며 국밥을 끓였다. 소머리를 넣고 끓인 구수한 향기는 응원 중에도 자꾸 뒤돌아봤던 기억이 난다.
손자병법 '작전(作戰)의 장'(章)에 '전쟁은 속전속결'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손자는 전쟁이 길어질수록 국가에 심각한 손실을 초래하고 물자와 자원이 고갈되므로 국민에게 큰 부담을 준다고 했다. 음식도 그렇다.
음식은 준비 과정부터 신속한 제공이 중요하다. 국밥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네 '빨리빨리' 문화에 가장 잘 녹아있는 음식이다. 손님이 오면 국에 밥을 말아 토렴하거나 따로 밥을 덜어 즉시 나간다. 손님은 오래 기다리면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국밥은 고객이 음식을 주문하면 빨리 제공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최적화된 음식이다. 주방 동선까지 간소화하면 주문에서 서빙까지 시간도 줄일 수 있다. 예로 미국의 빨리빨리 대표 음식인 패스트푸드 중 잘 알려진 맥도날드가 있다.
1954년 시카고에서 프랜차이즈 1호점을 연 이래 현재까지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다. 맥도날드 형제가 노점을 연 것은 1940년이었다. 당시 맥도날드는 주력 메뉴가 햄버거가 아닌 바비큐였다고 한다. 형제는 곧 한계를 깨닫고 시스템을 간편하게 바꿨다.
즉석에서 최소한의 시간과 인력으로 공급할 수 있는 햄버거와 감자튀김, 음료수로 메뉴를 축소했다. 또한 주문 시스템을 개선하고 주방 동선의 효율성을 높여 속도전에 성공했다.
국밥은 예부터 가정에서보다 음식점에서 많이 팔던 음식이다. 국밥에 관한 조리법은 조선 말엽의 '규곤요람'에서 처음 나온다. 기름진 고기를 장에 졸인 것을 밥 위에다 부어 만든다고 했다.
국밥에는 주로 맑은장국을 이용한다. 맑은장국은 기름기가 없도록 끓인 후 간장으로 간을 맞춘 국이다. 주로 쇠고기의 양지머리를 이용하고 우둔살을 이용하기도 한다. 우둔살은 소의 볼기짝에 붙은 고기로 힘줄도 없고 기름도 섞이지 않아, 삶으면 잘 풀어지고 고기 맛이 잘 우러난다고 했다.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따르면 장국밥은 좋은 멥쌀을 깨끗이 씻어 밥을 짓고 국은 무를 넣어 끓인다고 나와 있다. 국밥 위에 나물과 산적을 얹기도 한다. 콩나물, 무나물, 고사리나물, 시금치나물 등을 무쳐놓은 다음에 고기를 두드려 양념한다. 먹을 때에는 고춧가루나 후춧가루를 식성에 따라 넣기도 한다.
국밥의 표준 조리 방법은 이렇다.
첫째, 양지머리와 사골을 같이 끓여서 뼈는 건지고 고기는 얇게 썬다. 국물은 차게 식으면 저절로 쇠기름이 엉겨서 하얗게 뜨게 되므로 쉽게 건져낸다.
둘째, 물과 고기의 비율은 고기 600g에 물 2.2리터 정도를 넣고 끓여서 2리터 정도로 졸았을 때가 알맞다.
셋째, 끓일 때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후추를 약간 넣는다.
넷째, 삶는 방법은 처음에 강한 불로 끓이다가 솟구쳐 끓어오르면, 뚜껑을 덮지 않고 약한 불로 푹 익도록 끓인다.
다섯째, 상차림은 그릇에 뜨겁게 끓인 국을 담고 밥을 한 덩어리 말은 다음 썰어 놓은 삶은 고기를 얹어 완성한다.
내친김에 국밥을 크게 분류해 봤다.
먼저 장터국밥이 있다.
1920년대부터 전국의 읍면 소재지에 상설시장과 오일장이 자리를 잡았다. 장이 서는 날이 되면 장터 주변에 간이로 국밥집이 세워졌다. 장을 보는 사람들이나 시장 상인들이 이곳에서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우곤 하였다.
금방 먹을 수 있도록 주방에서 미리 그릇에 밥과 국을 한데 말아 손님에게 대접하던 것이 장터국밥으로 불렸다. 기본적으로 소고기와 무를 넣어 끓인 국물에 밥을 만 뒤 푹 익은 소고기와 무를 얹고, 고사리나 콩나물, 시래기, 우거지 등을 고명으로 얹은 형태다.
주재료인 소고기는 양질의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함유돼있어 면역력 향상과 근육형성에 도움이 되며, 성장기 어린이는 물론 원기 회복이 필요한 성인과 노인에게도 효과적인 식품이다.
또한 비타민과 철분이 풍부하여 임산부에게도 이롭다. 약선에서 소고기는 맛이 달고 성질이 평평해 어디에나 어울리는 식재료다. 또한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인체의 소화기관은 물론 전체적으로 기운과 혈액을 보양한다고 했다.
두 번째로 돼지국밥을 꼽을 수 있다.
돼지 뼈로 우려낸 육수에 돼지고기 편육과 밥을 넣어 먹는 국밥이다. 돼지국밥의 유래에는 다양한 설이 있다.
전쟁 중에 피난길을 전전하던 이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돼지의 부속물로 끓인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본래 돼지국밥은 밀양과 부산, 대구 지역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 오다가 현재는 그 세 가지 방식이 혼합된 형태를 보인다.
돼지고기는 편으로 썰고, 부추는 4㎝ 간격으로 썰어 갖은양념으로 무친다. 고춧가루, 간장, 다진 마늘, 참기름, 새우젓 등을 섞어 다진 소스를 만든다. 그릇에 밥을 담고, 썰어놓은 돼지고기를 얹는다. 여기에 육수를 붓고 그 위에 만들어 놓은 부추무침을 얹는다.
기호에 따라 다진 소스로 간을 하거나, 새우젓이나 소금으로 간한다. 돼지고기는 소화가 쉽고 단백질이 풍부해 근육 형성, 체력 보강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불포화지방산이 함유돼 있어 혈관의 콜레스테롤 축적을 막아줘 동맥경화와 같은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다. 약선에서 돼지고기는 장수에 도움이 되는 약이라고 했다.
맛은 달고 짜며 성질은 약간 평평하다. 인체의 신장을 보양하고 좋은 혈액을 생성해 기침, 천식을 예방하며 병후 기력 회복을 돕고 갈증을 멈추며 피부를 좋아지게 하고 대소변을 원활하게 한다고 했다.
세 번째로 순대국밥이 있다.
돼지 뼈를 우려 만든 육수에 순대를 넣어 끓여 먹는 국밥이다. 순대국밥에는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순대를 포함해 간, 염통과 같은 내장 부위와 머리 고기도 조금씩 들어간다. 순대는 전국에서 즐겨 먹는 대중 음식으로 지역마다 만드는 방법과 형태가 다르며 평안도와 함경도의 아바이순대, 강원도의 오징어순대, 충청도의 병천순대 등이 유명하다.
가장 대중적인 순대는 당면과 찹쌀을 섞어 만든 찰순대이다. 순대국밥에 들어가는 순대는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보통 숙주, 배추, 두부, 선지, 돼지고기 등을 갖은양념과 함께 비벼낸 후 깨끗이 씻은 돼지 곱창에 넣어 만든 것을 사용한다.
순대의 재료로 쓰이는 돼지 피는 빈혈과 어지럼증에 좋다. 돼지 뼈를 푹 삶은 육수에는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해 회복기에 있는 환자에게 좋은 영양식이다. 약선에서 돼지 피는 맛은 짜고 성질은 평평하며 심장에 좋은 혈액을 생성해 인체의 나쁜 기운을 아래로 내려 격렬한 두통이나 현기증, 헛배가 부른 것을 예방한다고 했다.
훌훌 불어가며 한 그릇 뚝딱 먹는 국밥은 한국의 가장 오래된 외식 메뉴였고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메뉴다. '소울푸드'하면 국밥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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