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장 서식대로 썼을 뿐인데…“개인정보 누설”로 내부고발 ‘유죄’

김가윤 기자 2024. 11. 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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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비위 행위를 신고하는 고발장을 수사기관에 제출하면서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구체적인 인적 사항을 기재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는 1심 판단이 나왔다.

공익적 목적 등 정당행위에 대한 판단 없이 개인정보보호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ㄱ씨가 내부 고발을 하기로 마음먹고 확보한 피고발인의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알린 건 '개인정보를 받은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개인정보보호법 19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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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민원포털 누리집서 제공하는 공식 서식
경찰 민원포털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고발장 서식 갈무리.

직장 내 비위 행위를 신고하는 고발장을 수사기관에 제출하면서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구체적인 인적 사항을 기재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는 1심 판단이 나왔다. 공익적 목적 등 정당행위에 대한 판단 없이 개인정보보호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24일 부산지법 형사12단독 지현경 판사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ㄱ씨는 직장 내 초과근무 수당 부정수급이 의심되는 사건을 내부 고발하면서 ‘고발장 서식’이 요구한 대로 피고발인의 성명, 전화번호,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고발장에 적어 제출했다. ㄱ씨가 작성한 고발장은 경찰 민원포털 누리집에서 제공하고 있는 공식적인 서식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피고발자는 ㄱ씨를 수사기관에 고소했고, 검찰은 ㄱ씨의 행위가 ‘개인정보 누설’에 해당한다며 ㄱ씨를 재판에 넘겼다.

한겨레가 6일 판결문을 확인해보니, 법원은 공익신고·고발을 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입력하려면 당사자의 동의를 받거나, 법 위반이 되지 않을 만큼의 정보를 입력하고 나머지는 수사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ㄱ씨가 내부 고발을 하기로 마음먹고 확보한 피고발인의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알린 건 ‘개인정보를 받은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개인정보보호법 19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ㄱ씨 쪽은 “형사사법 절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피고발인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 위반의 고의가 없다”, “(공익적 목적이므로) 형법 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 판사는 “형사고소·고발을 할 땐 개인정보의 목적 외 이용·제공 행위를 허용한다는 특별한 법률 규정이 없다”, “이름만 적어도 수사기관이 충분히 피고발인을 특정할 수 있었다”는 사유를 들었다.

법원의 이런 판단은 2022년 대법원 판단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법원은 고소·고발을 할 때 당사자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제출한 건 개인정보보호법이 금지한 ‘누설’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조합장 비위 행위’를 내부 고발하며 피고발인이 녹화된 폐회로텔레비전(CCTV) 자료나 자금 송금 내역 등 구체적인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출한 사례였다. 당시 대법원은 “(개인정보 제공이) 범죄 행위로서 처벌 대상이 될 정도의 위법성을 갖추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대법원은 개인정보 유출에 있어 공익적 목적을 따져봐야 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대리수술 의혹’을 고발하며 진료기록 등을 수사기관에 제출한 행위에 대해 “개인정보 유출에 해당하지만,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어 위법성이 없는 행위로 봐야 한다”며 무죄를 확정한 것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경찰이 민원포털을 통해 제공한 공식 고발장 서식에 나와 있는 대로 피고발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을 기입한 게 문제가 됐다. 이를 범죄로 처벌한다면 이런 고발장 서식으로 피고발자 개인정보를 요구한 경찰도 책임을 져야 한다. 법원의 기계적인 법률 적용으로 내부고발자를 범죄자로 몰면서 공익 목적의 고소·고발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보통 수사기관에 피고발인 정보를 충실히 기재하는 걸 두고 개인정보를 ‘누설’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법원이 공익적 목적이나 ‘표현의 자유’ 부분을 더욱 인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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