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인류문화유산에 장 담그기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4. 11. 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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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 보낸다. 사랑방에 두고 먹도록. 내가 손수 담갔는데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

연암 박지원이 아들에게 고추장 단지를 보내면서 쓴 편지다.

장 담그는 일은 김장보다 중요해서 길일을 택하는가 하면 목욕재계하고 고사도 지냈다.

도시 골목길에서 놀다 보면 간장 달이는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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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 보낸다. 사랑방에 두고 먹도록. 내가 손수 담갔는데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

연암 박지원이 아들에게 고추장 단지를 보내면서 쓴 편지다. 연암은 상처 후 자식들을 홀로 뒷바라지하면서 장도 직접 담갔다. 조선 선비들은 부엌과 척졌을 것 같지만 요리하는 것을 흉으로 여기지 않았고 특히 장에는 신경을 많이 썼다. 장 담그는 일은 김장보다 중요해서 길일을 택하는가 하면 목욕재계하고 고사도 지냈다. 담근 장 위에는 숯을 넣고 붉은 고추를 띄웠다.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의 용도이면서 숯에 항균 기능이 있으니 위생학적 고려이기도 했다. 시기에 따라서 음력 정월장, 이월장, 삼월장 등으로 불렸는데 기온이 낮은 이른 봄에 담가야 잡균이 들지 않고 단맛이 난다.

장년 세대라면 메주 띄우던 시골방 냄새를 기억할 것이다. 오래전에 작고한 조모를 생각할 때마다 쿰쿰하면서 고소하기도 한 메주 냄새가 함께 떠오른다. 도시 골목길에서 놀다 보면 간장 달이는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오곤 했다. 집집마다 간장을 달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냄새를 못 맡은 지 사십 년은 더 된 것 같다. 요사이 집에서 간장을 달이면 이웃들이 신고할지도 모른다.

우리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인류문화유산에 다음달 등재될 예정이다. 메주를 띄워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지난해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동아시아 두장(豆醬) 문화권 중 한국에만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맛은 발효미이고 그 기본을 이루는 것이 장맛이다. 흰밥을 술술 넘어가게 하는 간간하면서 그윽한 맛.

요즘은 간장과 고추장을 일부러 구해 먹는 외국인들이 많다. 서양인들이 된장찌개 냄새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전긍긍하던 때도 있었는데 한식팬이라면 청국장 정도는 가뿐히 먹어줘야 하는 시대가 됐다. 장은 세계인의 조미료가 되었는데 주변에서 장 만드는 사람을 보기는 어려워졌다. 장 담그기 기능전수자를 뽑아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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