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전세사기 판 깔아주나”···148억 전세사기 일당 감형 파기 촉구한 피해자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서영섭씨는 2022년 2월을 잊지 못한다. 한 동짜리 아파트 전체 세대에 집이 경매에 부쳐졌음을 알리는 우편물이 꽂혔다. ‘전세금을 올려 달라’는 임대인의 말에 어렵사리 1000만원을 마련해서 준 지 5개월 만이었다. 서씨는 인천에서 조직적으로 전세사기를 벌인 남모씨 일당에게 목숨 같은 8500만원을 빼앗겼다. 그가 사는 아파트 주민을 포함해 피해자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추홀구에만 서씨 같은 피해자가 최소 665세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6월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이 제정되고 ‘피해자 인정’을 받았지만 서씨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법원에 가려고 월차도 자주 내다보니 직장에서 눈치가 보여서 결국 회사도 그만둬야 했다”며 “자녀 계획도 다 틀어지고 일상 회복이라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피해를 본 아파트에 여전히 살고 있지만 주변 피해자들이 이사 나가길 반복하면서 분위기만 뒤숭숭할 뿐이다.
서씨는 주범인 남씨가 1심에서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을 때만 해도 정의구현이 조금이나마 이뤄질까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8월 항소심 재판부가 남씨를 징역 7년으로 감형하면서 기대는 무너졌다. 공인중개사 등 나머지 일당 9명도 1심에서 징역 4~13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무죄 또는 집행유예로 전부 감형받았다. 재판부는 남씨가 재정 악화를 인지한 것으로 추정되는 2022년 1월 이후 받은 보증금만 피해 금액으로 인정했다. 검찰이 기소한 건 ‘남씨 일당이 피해자 191명에게서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가로챘다’는 혐의였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그 중 68억원만 피해액으로 인정했다.
서씨는 “8500만원을 보전받을 길이 전혀 없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나 같은 피해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며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우편물이 왔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겪어온 일이 도대체 전세사기 피해가 아니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씨를 비롯한 피해자 1516명은 6일 대법원에 남씨 일당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검찰과 남씨 일당이 모두 상고해 남씨 사건은 대법원으로 가게 됐다. 피해자들은 “전세사기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법이 없다면 처벌이라도 제대로 해서 경종을 울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항소심 판결을 파기환송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지역 전세사기 피해자들도 대법원의 상식적 판단을 촉구했다. 이철빈 전국대책위 위원장은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기계적 법리해석과 무책임한 판결이 아니라 이 사건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달라는 것”이라며 “이렇게 솜방망이로 처벌하면 분명 5년, 10년 뒤에 전세사기 대란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법원도 공범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근 변호사는 “항소심은 공인중개사가 직접 임대인이 된 경우에만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봤는데 미추홀구 사건처럼 바지임대인과 공인중개사가 서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임대차 계약을 맺은 경우는 처벌할 방법이 없어진다”며 “법원이 국민 상식과 동떨어지지 않았음을 항소심 파기환송으로 보여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대책위는 오는 11일부터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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