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을 해달라고 민원합시다 [플랫]

플랫팀 기자 2024. 11. 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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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가 긴장된 표정으로 유튜브 앱을 열어 휴대전화를 넘겨줬다. 이상한 영상을 봤는데 잘못한 거 같아서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했다. 화면엔 한 여성이 속옷만 입고 나와서 여러 가지 옷을 갈아입는 이른바 ‘룩북’ 영상 목록이 떴다. 당황스러웠다. 이런 영상은 어쩌다 초등학생에게까지 가 닿게 됐을까. 당황스러운 감정이 지나가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구독자와 조회 수가 상당한 채널 소유자에게도, 이 영상을 보며 환호하는 구독자들의 댓글에도, 유해 콘텐츠를 플랫폼이 다 막아낼 수 없지 않으냐는 체념 섞인 주장에도 화가 났다. 아이에게는 이런 영상의 문제점과 이런 영상이 만들어지게 되는 구조를 설명해줬다. 다시 같은 일이 있을 경우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2020년 6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1,2학년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외설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채식주의자> 같은 문학 작품과 성교육 관련 도서 2500여권이 도내 도서관에서 폐기된 것에 대해 “성희롱과 성폭력 사례가 늘고 있어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그런 평가에 동의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아이들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되레 묻고 싶다.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 세상에서 이렇게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유해한’ 콘텐츠들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들의 주장은 앞뒤가 바뀌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하지 못해 아이들이 평등한 관계와 섹슈얼리티, 재생산 건강에 대해 배우지 못하는 게 문제지, 외설적이라 생각하는 콘텐츠를 막아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라면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단체의 주장을 무시하는 것이 맞다. 오히려 그런 주장에 동조하는 자들이 교육기관의 장이 돼 아이들의 교육을 막으면서 성희롱, 성폭력 걱정을 한다는 게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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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아이들이 성적인 존재라는 것을 부정할 때 아이들은 자신의 성욕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한편 다른 사람을 대상화하고 이를 놀이로 여긴다. 그 결과가 ‘딥페이크 성착취물’ 문제다. 같은 반 친구를 성적 대상물로 만들어 친구들에게 공유하는 10대 아이들의 행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물론 학교와 사회는 피해자의 회복을 최우선 원칙으로 가해자는 가해 행위를 한 만큼 처벌받고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온 가해자들이 10대라는 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증거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

교육을 막아온 사람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묻고 싶다. 그러는 사이 성교육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이들은 성교육도 사교육으로 해결한다. 일부 부유층에선 그룹을 만들어 맞춤형 성교육도 받는다고 한다. 그러는 와중에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성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어디에서 제대로 된 관계 맺기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자신의 월경 주기도 잘 모르고, 피임 방법은 당연히 배운 적 없는 아이들이 교실 밖에서 이성친구를 사귀지 못하도록 막으면 해결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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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과목에서 선행 학습을 용인하는 국가에서 유일하게 뒤로 미뤄두는 교육이 성교육이다.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가이드는 ‘포괄적 성교육’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포괄적 성교육은 자신의 몸, 욕망, 성적 자기결정권을 이해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관계 맺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교육이다. 유네스코는 포괄적 성교육을 했더니 아동·청소년이 성행위를 시작하는 시기가 늦어졌고, 성행위 빈도가 줄었고, 파트너 수가 감소했고, 콘돔 사용이나 피임률이 증가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성교육이 조기 성애화를 조장한다는 오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취재 중 만난 한 교사는 성교육을 하고 싶어도 민원 때문에 어려움이 크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가 생각해낸 해결책은 ‘성교육을 해달라는 민원’이다. “학교는 민원을 무서워합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원하는 시민들이 학교에, 교육청에 성교육을 원한다고 민원을 넣어주세요.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자 하는 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주세요.” 보수단체가 아이들의 교육을 막아야 한다고 전화한다면, 아이들에게 교육이 필요하다고 전화하자. 아이들을 잘 교육하자는 시민들이 많아진다면 희망은 있다

▼ 임아영 젠더 데스크 layknt@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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