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英 석탄 퇴출, 섣불리 흉내 낼 일 아냐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4. 11. 6. 13: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폐쇄된 잉글랜드 노팅엄셔의 '랫클리프온소어'(Ratcliffe-on-Soar) 석탄화력발전소. 연합뉴스 제공

영국이 지난 9월 잉글랜드 노팅엄셔의 '랫클리프온소어'(Ratcliffe-on-Soar)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했다. 1882년 토머스 에디슨이 세계 최초로 런던에 세웠던 홀본 비아덕트(Holborn Viaduct)발전소로 시작된 영국 석탄화력발전의 역사가 142년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1991년만 해도 전력의 67%를 석탄에 의존하던 영국이 이제는 G7 국가 중 탈석탄 발전을 이룬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올해 G7은 2035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전면 폐쇄하기로 합의했고 EU와 OECD도 탈석탄을 가속화하고 있다. EU 27개국 중 벨기에·포르투갈·라트비아 등 10개국이 이미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했고 2033년에는 독일·불가리아·폴란드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석탄 화력 발전을 폐지하게 된다.

우리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석탄 화력의 퇴출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는 현재 7기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탈원전·탈석탄을 밀어붙였던 지난 정부도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8월 29일 2030년의 감축목표만 제시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에 대해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고 2026년 2월 28일까지 보완 입법을 권고했다. 입법 과정에서 탄소중립에 반드시 필요했던 비용 추계조차 제시하지 않고 무작정 밀어붙였던 탄소중립에 절차상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 '천연가스 열풍'으로 시작된 석탄 퇴출

영국은 전 세계에서 석탄을 가장 먼저,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경제력·국방력을 놀라운 수준으로 키웠던 국가다. 실제로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의 핵심은 1776년 제임스 와트가 개발한 '증기기관'이었다.

광산의 지하수를 퍼 올리는 펌프를 가동하기 위해서 개발했던 증기기관이 방적기·세탁기·증기기관차·선박을 비롯한 산업화 기계에 동력을 제공해 주었다. 증기기관은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일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석탄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 역사를 바꿔놓은 '제1차 에너지 대(大)전환'이 실현되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은 산업혁명 이후 '첨단 연료'로 자리를 잡은 '석탄'에 의해서 이룩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중엽까지 영국은 세계에서 석탄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국가였다. 1751년부터 1882년까지 전 세계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중 50.8%가 영국에서 배출되었을 정도였다. 

2022년 기준으로도 영국의 누적 배출량은 7.3%로 우리나라 1.8%의 4배가 넘는다. 사실 오늘날 전 지구촌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기후 위기를 일으킨 온실가스 과다 배출의 전통은 영국에서 시작됐다는 뜻이다. 그런 영국이 이제는 떠들썩하게 석탄 퇴출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다. 

영국의 탈석탄은 처음부터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노력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이 1993년부터 석탄의 비중을 줄이기 시작한 것은 당시 영국 사회에서 거세게 불기 시작한 '천연가스 열풍'(Dash for gas) 때문이었다. 북해 유전에서 생산되는 값싼 천연가스 공급이 늘어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영국 정부도 발전 사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서 천연가스 발전을 허용했다. 천연가스를 이용하는 가스 터빈 기술이 개발되면서 천연가스 열풍을 부추겼다. 1990년대에 그렇게 시작된 천연가스 발전의 비중은 2004년에 무려 30.3%까지 늘어났다.

2017년 기준으로 영국은 1차 에너지 소비의 대부분을 천연가스(39.0%)와 석유(35.9%)에 의존하고 있다. 수력·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가 3.0%를 차지하고 원자력도 7.9%나 된다. 1956년 세계 최초로 칼더홀에 상업용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했던 영국이 원전 건설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 것도 바로 북해에서 불어온 천연가스 열풍이었다.

●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는 환상

에너지 소비가 깨끗하고 안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 불은 처음부터 생활환경을 오염시키고 언제든지 재앙적인 화재(火災)로 돌변할 수 있는 더럽고 위험한 기술이었다. 실제로 동서고금의 거의 모든 도시가 대(大)화재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화재는 애써 만들어놓은 구조물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었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인류의 역사는 대(大)화재의 기록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인류는 에너지를 함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편익(便益)이 애써 감수해야 할 위험(risk)보다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류가 더럽고 위험한 에너지를 이용하는 문명 생활을 통해서 이룩한 성과는 획기적이었다.

7명의 노동으로 10명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던 농경목축 사회의 산업화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산업화와 함께 인구와 평균 수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석탄을 대량으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커먼 매연이 대기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석탄에 의한 대기 오염을 '발전의 상징'으로 인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1952년의 '런던 대(大)스모그'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사실 겨울철에 석탄을 난방과 취사용 연료로 사용하던 런던이 인구 집중에 의한 대기 오염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한 것은 14세기부터였다. 

취사와 난방용 석탄의 사용을 금지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석탄을 대체할 현실적인 대안을 찾지 못한 탓에 큰 효과는 없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런던의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석탄 검댕이 때문에 누렇게 오염된 런던의 공기는 완두콩 스프로 알려졌다. 런던의 거의 모든 건물은 석탄 검댕이로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1952년 겨울에는 고작 4일 만에 무려 4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독감이 퍼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밀어닥친 재앙이었다. 대(大)스모그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사망한 런던 주민의 수는 1만여 명을 훌쩍 넘어섰다. 런던의 스모그는 1956년부터 석탄 사용을 금지하면서 조금씩 해결되었다.

석탄의 사용이 자연·생활 환경과 생태계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연소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황산화물(SOx)·질소산화물(NOx)·미세먼지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석탄의 생산·운송·저장 과정에서의 사고와 오염도 걱정해야 하고 연소 후에 발생하는 재를 깨끗하고 안전하게 처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석탄을 무작정 포기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구촌 전체가 영국처럼 석탄을 대체할 수 있는 경제력과 에너지 자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가 그렇다. 영국이 장에 간다고 충분한 준비 없이 무작정 따라나섰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는 뜻이다. 

● 에너지 믹스에 국제표준은 없다

현대 사회의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국가 차원에서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확보해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뜻하는 '에너지 믹스'를 선택하고 구현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는 환경성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환경에 좋은 에너지라도 우리가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결국 에너지 믹스에는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국제표준'은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경제성·환경성·안전성·안보성 등의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일 뿐이다.

위험한 원전과 더러운 석탄을 포기하고 깨끗한 태양광·풍력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식의 감성적인 접근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위험하고 더러운 기술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석탄 등 화석연료보다 상대적으로 깨끗하게 보인다는 이유로 경제적·환경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신재생에 매달려서도 안 된다. 

태양광·풍력의 극심한 간헐성을 극복하고 수소를 안전하고 깨끗하게 생산·운반·저장·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신재생은 아직도 적극적인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미래 기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해 유전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믿고 있는 영국의 에너지 전환은 최악의 에너지 빈국(貧國)인 우리가 섣부르게 흉내 낼 일이 아니다. 중위도 지역에 위치한 우리에게는 태양광·풍력·수력 자원도 그림의 떡인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오히려 천연가스와 신재생의 유혹에 빠져버린 영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자신의 원전 기술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주목해야 한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