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 74주년… 재조명되는 美 해병대원의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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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 74주년을 맞아 미국 국방부가 당시 큰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미 해병대원 제임스 포인터(James Poynter) 병장을 추모했다.
포인터는 진주만 공습 직후인 1942년 2월 미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1950년 10월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북진하기 시작했고, 포인터의 미 해병 7연대도 진격 부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그렇게 유복자로 태어난 바이런 포인터는 1967년 미 해병대에 자원 입대함으로써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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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터지자 재입대 후 한국으로 파병
전우 구하고 장렬히 산화… 명예훈장 추서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 74주년을 맞아 미국 국방부가 당시 큰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미 해병대원 제임스 포인터(James Poynter) 병장을 추모했다. 포인터는 미국에서 군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에 해당하는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다.
1950년 6월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터졌다. 당시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던 포인터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해병대에 재입대한 그는 해병 1사단 7연대 1대대에 배치됐다. 포인터가 속한 부대는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직후 최전선에 도착했다. 그는 북한군을 무찌르고 서울을 되찾는 과정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워 생애 처음으로 동성무공훈장(Bronze Star)을 받았다.
치열한 교전 도중 포인터의 눈에 적군이 23m쯤 떨어진 곳에서 기관총 3정을 설치하고 사격을 가하려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는 적군 기관총 진지를 향해 재빨리 수류탄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쏜살같이 달려가 기관총 사수들을 살해함으로써 이를 무력화시켰다. 다만 그 과정에서 포인터도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포인터의 장렬한 전사 모습을 지켜본 동료 해병대원들은 사력을 다해 중공군의 진격을 막아냈다. 그 결과 미군은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부대를 재정비할 수 있었다. 고인의 시신은 본국으로 봉환돼 캘리포이나주 샌디에이고의 포트 로즈크렌스 국립묘지에 묻혔다.
미 국방부는 고인의 용기와 공적을 기려 1952년 9월4일 명예훈장을 추서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남편을 대신해 부인 캐더린 포인터가 훈장을 받았다. 포인터가 한국에 파병되기 전 캐더린은 아들 바이런을 임신한 상태였다. 그렇게 유복자로 태어난 바이런 포인터는 1967년 미 해병대에 자원 입대함으로써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랐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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