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130)] 트롯가수 파파금파, 편견 뚫고 카네기홀 굿퍼포먼스
무속인 편견 걷어내고 트로트 가수로 다양한 공연 '종횡무진'
'부친 애환' 담은 신곡 '오사카의 밤' 작사가로 조항조와 협업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얼굴이 알려진 유명 연예인들이 어느날 갑자기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얼마전엔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서 '순돌이' 역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아역 출신 배우 이건주가 무당이 됐다는 소식이 화제였다.
30여년간 배우 활동을 하다 무속인의 길을 선택한 배우 정호근이나, MBC 15기 공채 개그맨 출신 예능인 김주연의 경우도 인력(人力)으로 막을 수 없는 특별한 운명을 피하지 못해 같은 길을 택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파파금파(본명 이효남)는 20여년간 무속인으로 활동하다 가수로 전업한 케이스다. 트로트 가요계에는 의사 경찰 변호사 국회의원 등 이색 직업 출신 가수가 많지만 무속인 파파금파는 뒤늦게 가요계에 뛰어들어 음악적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의 독특한 이력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그는 미국 카네기홀에서 무속인 가수로 단독 공연을 하고,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아리랑굿 콘서트'에서 황해도 굿을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이는 한국 토속 신앙을 새로운 한류로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됐다.
파파금파는 젊은 시절 못다한 꿈을 펼치고 싶어 첨엔 가벼운 마음으로 음반을 냈다가 기대 이상으로 높은 반응을 얻자 차츰 활동 영역을 키워가게 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그를 방해했다. 노래실력과 무관하게 무속인이란 사회적 편견이 가로막았다.
라디오와 케이블TV 등에서 빠르게 호평을 받았지만 지상파 방송 출연은 번번이 제동이 걸렸다. 한때 '가수를 포기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포기는 패배를 인정하는 것, 적극 응원해주는 팬들의 호응이 그에게 다시 용기를 내게 했다. 그는 "내 노래를 좋아하는 단 한명의 팬만 있어도 활동을 하겠다"는 뚝심으로 마음을 다졌다.
그를 향한 관심도는 가요계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고정팬들이 응원하고 지지하면서 팬덤도 생겼다. 최근 발표한 '오사카의 밤'과 '부모님 전상서'는 그가 자신의 스토리를 담아 가사를 직접 썼고, 두곡 모두 그의 중저음 보이스에 실려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편견은 또 다른 편견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25년이란 짧지 않은 무속인 생활을 거쳐 대중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숨어있을지 궁금했다. 그를 둘러싼 편견과 선입견을 걷어내고 본모습을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인터뷰는 5일 오후 서울 양재동의 T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가수로 데뷔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흔히 인생은 정답이 없다고 말하잖아요. 제 인생은 남이 대신 살아주는게 아니라 제가 사는 것이고 제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무속인이 된 것까지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제 의지대로 다시 뭐든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난 뒤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무속인이 되기 전에 가수의 길을 걸었다가 포기해야했던 아픔을 노래로 다시 치유하고 싶었죠. "
파파금파는 88년 태광음반 '할말이 있어요'로 데뷔했다가 3개월만에 군에 입대하면서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전역후 가수로 복귀하지 못하고 운명적으로 무속인이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고, 무속인으로 명성을 얻고 입지를 다진 2019년 '인생은 회전목마'로 재데뷔했다. 그는 "나중에 후회할 일이 없도록 가수로서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원래 꿈은 연기자였다고 들었다.
"네 맞습니다. 어려서부터 꿈은 연기자였죠. 서울예대 연극영화과를 갔던 것도 이 꿈과 희망을 이루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었고요. 그런데 저도 몰랐던 내면의 욕구는 음악이었어요. 가수의 길로 방향을 틀면서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연기나 음악이나 궁극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왜, 따로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았던 인기 가수나 배우들이 얼굴이 유명해진 뒤 뒤늦게 실력을 인정받는 연예인 화가로 활동하기도 하잖아요.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끼의 소유자다. 무속인으로 살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늘 예인(藝人)의 피가 꿈틀 거렸다. 다른 형제들은 공부에 매진해 모두 명문대에 진학한 반면 그는 예술대학을 고집했다. 연기자가 꿈이었던 그는 서울예대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그런데 막상 졸업 후엔 음악에 더 끌렸다. 예술은 정상에 서면 모두 비슷해진다는 말이 있지만, 연기자 데뷔 직전 음반을 내고 가요계로 방향을 틀었다.
-파파금파라는 예명이 매우 독특하게 와닿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다.
"제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세상을 떠나셨는데, 제가 어렸을 때 일본으로 건너가 돈을 벌었다고 해요. 저는 가수 데뷔 전까지 20년간 '금파'라는 예명으로 무속인의 삶을 살았는데 살아온 세월에 회한만 남기고 떠나신 제 아버지를 떠올리며 '파파'를 추가했어요. 뭔가 다르게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도 도전과 꿈,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
파파금파는 고향이 제주다. 그가 어렸을때 부친은 일본 오사카에서 온갖 힘든 일을 마다 않고 열심히 일했다. 오직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였다. 지금도 오사카에는 당시 그의 아버지처럼 일본에 살다가 가정을 이룬 후손들이 많다. 오사카에 제주 출신 후손들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최근 선보인 신곡 '오사카의 밤'(김정욱 작곡)은 자신의 부친에 대한 애틋함을 반추하는 의미를 담았다.
-신곡 '오사카의 밤'은 직접 가사를 썼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만들어졌나.
"저는 아버지에 대한 애환이 남들과 달라요. 아주 어렸을 때는 함께 살지 못했고, 철이 들 무렵엔 두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했어요. 성장해가는 동안 부친에 대한 그리움이 늘 가슴에 맺혀 있었죠. 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오사카를 방문했어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도톤보리 강이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고향의 가족을 그리며 살았을 아버지의 외로움이 생생히 되살아나더군요."
파파금파가 직접 쓴 가삿말은 부친을 떠올리는 순간 즉흥적 시상으로 떠올랐다. 그는 "타국에서 얼마나 많이 외로우셨을까 생각하니 저도 몰래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가사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가요계 선배인 조항조가 새롭게 다듬었다. 아버지에 대한 개인적 그리움과 애틋한 추억을 누구나 공감할 대중가요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살짝 방향을 틀었다.
이에 대해 조항조는 "누구나 무명가수 시절은 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음악적 실력과 재능이 넘쳐나도 어떤 계기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면서 "평소 아끼는 후배 가수인데 노랫말 사연을 듣고 마음이 이끌려 함께 가삿말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유명 가수가 자신의 곡이 아닌, 인지도가 낮은 가수의 작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은 드물다. 이 노래는 둘의 공동 작사곡이 됐다.
-이 곡은 일본어 버전 음반도 새로 내놨다고 들었다.
"'오사카의 밤'은 소재 자체가 일본이다보니 스토리에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워낙 원곡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어 버전을 녹음하게 됐어요. 최근엔 한일 가수들이 같은 무대에서 경연하는 프로그램도 생겼잖아요. 애초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마침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젊은 후배 가수들도 많이 생겨 이래저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갈색레인 코트에/ 추억을 꺼내 입고/ 외로움을 달래며 걷고 있는/ 쓸쓸한 오사카의 밤/ 화려한 도시의 불빛들은/ 도톤보리 강물을 삼키고/ 그리움에 헤매이는 나는/ 또다른 사랑 찾아 어둠을 삼키네/ 아아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여/ 아아 멈추지 않는 그리움이여/ 쓸쓸해 보이는 오사카의 밤/ 외로이 흐르는 강물/ 아아아 아아아 술한잔에 그리움을 달래어 보네'(파파금파의 '오사카의 밤' 한국어 가사 1절)
-함께 발표한 '부모님 전상서'도 반응이 꽤 좋다.
"네 저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어서 놀랍습니다. 사실 '오사카의 밤'이나 '부모님 전상서' 모두 애절함이 담긴 잔잔하고 차분한 노래입니다. 아버지를 떠올린 '오사카의 밤'은 소재나 무대가 일본이다보니 제 개인적인 감상에 더 치우친 노래라고 할 수 있어요. 반면 어머니의 소망과 아쉬움을 담은 '부모님 전상서'는 한번 들으면 누구나 금방 공감할 수 있는 친근감이 있어요. 진미령 선배가 방송에서 한번 부르고 나서 더 화제가 됐어요."
그가 부른 또다른 노래 '부모님 전상서'는 연기자로 성공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희망을 떠올리며 직접 작사한 노래다. 트로트 차트에 오르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 곡은 '오사카의 밤' 조항조와 진미령 등 트로트 선배 가수들 사이에서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호응을 얻고 있다. 진미령은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곡을 직접 커버송으로 불러 주목도를 키우기도 했다.
-수년전 카네기홀과 미 국회의사당에서 가진 무속 공연은 서양인들로부터 꽤 흥미로운 볼거리로 평가받았다고 들었다.
"서양 사람들의 시각은 동양적 문화에 은근히 관심이 많은 것같아요. 제 굿 퍼포먼스에 더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 이유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송강호 전도연이 주연한 '밀양'이라는 영화가 있었죠. 이 영화는 해외에서 더 높이 평가됐던 것으로 아는데요. 아마도 이는 영화 속에 깔린 신앙적 요소와 함께 한국적 시각의 내면 연기로 표출된 용서와 고통을 서양인들이 더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파파금파는 2019년 미국 카네기홀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아리랑굿 콘서트'에서 황해도 굿을 공연으로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그가 언급한 영화 '밀양'(2007년)은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깊고 복잡한 지를 보여주며 용서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준 작품으로 국내 보다 해외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도연은 당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송강호는 팜스프링스국제영화 국제비평가협회 남자 배우상을 수상했다.
-가수로 출발했다가 무속인으로, 다시 가수로 재데뷔했는데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누구나 살다보면 한 두가지 인생 버킷리스트가 있어요. 꼭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다시 가수로 활동하게 된 것은 못다한 꿈을 채우고 싶어서예요. 더 나이 먹기 전에 후회할 일을 미리 차단하려는 거죠. 마침 발표한 노래들이 반응을 얻으니 일석이조가 됐고요. 한번 신내림을 받은 이상 언젠가는 돌아가야할 운명이긴 해요. 그렇더라도 당장은 노래에 전력투구를 해볼 생각이에요."
그는 강신무다. 가족의 내력이나 학습을 통해 세습되는 무당이 아니라, 숙명적으로 타고난 운명이어서 자력으로 바꿀 수 없다고 한다. 그는 가요계 복귀 직전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두 차례 공연을 했고, 이를 계기로 미국 카네기홀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황해도 굿 퍼포먼스를 했다. 그리고 그해 대한민국 예술문화인 대상 시상식에서 전통예술인상을 수상했다.
파파금파는 인터뷰 내내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쳤다. 그는 "지금껏 수없이 많은 도전을 하면서 실패와 시련을 반복적으로 겪었고, 그렇게 살아갈 운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0번을 도전해 1~2번만 뜻을 이뤄도 크게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실패를 두려워했다면 감히 가요계를 다시 노크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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