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스러운 현실… 그곳이 곧 지옥

안진용 기자 2024. 11. 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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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
혼란 빠진 대중 지지로 권력 얻고
거짓선동으로 공포정치 펴는 모습
온라인상 사이버 레커 모습과 흡사
끔찍한 사회붕괴 풍경·우려 담아
작품 속 ‘지옥’, 구체적 묘사 없어
연상호 감독 “예측 불가한 공간”
‘지옥2’에는 지옥의 사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구원이라 믿고 맹목적으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선동한 햇살반 교사(문근영 분)가 죽음에 이르지 못하자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당신의 두려움, 그 근원은 무엇인가?”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2’(감독 연상호)는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통상 ‘지옥’(地獄)은 죽은 후 이승에서 지은 죄를 묻고 벌하는 곳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혹자는 “사는 게 지옥”이라고 말한다.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승의 척박한 환경도 지옥과 다름없단 뜻이다. 이처럼 지옥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지옥2’는 지난 2021년 11월 공개된 ‘지옥’의 속편이다. 전편의 핵심 키워드는 고지(告知)와 시연(試演)이다. “너는 ○월 ○일 ○시에 죽는다”는 ‘고지’를 받은 인간은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이 되면 지옥의 사자가 나타나 죽음으로 그를 벌하는 ‘시연’이 진행된다. 이 모습을 지켜본 인간들은 혼란에 빠진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행하는 공격은 피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고지를 받은 이들은 ‘죄인’이라 불리며 손가락질을 받는다. 이런 주위의 시선은 또 다른 폭력이다. 결국 두려움은 종교를 향한 집착을 낳는다. 고지와 시연을 분석하고 신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새진리회 정진수(김성철 분) 의장이 추앙받는 이유다. 하지만 절대선인 줄 알았던 정진수 의장 역시 고지의 대상이었고 결국 시연을 받게 된다. 여기까지가 시즌1의 줄거리다.

시즌2의 핵심 키워드는 부활(復活)이다. 고지와 시연을 받고 죽었던 정진수와 박정자(김신록 분)가 부활한다. 시연을 받은 수많은 이들 중 왜 두 사람만 부활한 것일까? 아울러 죽은 후 그들이 겪은 사후 세계, 즉 진짜 지옥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 답을 가진 부활자의 목소리에 대중은 다시 귀기울인다.

그러나 ‘지옥2’는 “왜 그들은 부활했나?”에 몰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들을 둘러싸고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음모를 꾸미는 집단에 초점을 맞춘다. 새진리회는 박정자를 감금한 채 그를 통해 새로운 신의 의도를 전파해 주도권을 쥐려 한다. 박정자의 두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소도는 박정자를 구해 가족에게 돌려보내려 한다. 반면 정진수는 폭력적 성향이 강한 화살촉과 손잡는다. 그들의 힘을 빌려 박정자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들 세력을 이용해 통제 가능한 시스템을 세우려 한다.

연상호(위 사진) 감독은 폭력과 선동을 일삼는 화살촉의 리더 바람개비(아래)를 통해 현대 사회를 비꼰다.

각 집단 모두 고지와 시연, 부활을 지켜보며 혼란에 빠진 대중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쟁취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근간에는 ‘두려움’과 ‘절망감’이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인간은 종교에 빠지고, 집단을 구축하고, 제도에 기댄다. ‘지옥2’에는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새진리회가 신흥 종교라면, 화살촉은 과격한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무정부 집단이다. 그리고 이런 혼란을 악용해 국민을 지배하려는 무능한 정부가 존재한다.

이 중 화살촉의 존재는 공포스럽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고, 이 과정을 생중계한다. 자극적인 장면을 담은 라이브 방송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바람개비(조동인 분)는 ‘공포 정치’를 펴는 우두머리다. 이는 유튜브와 같은 SNS를 기반으로 각종 허위 사실과 날조, 선정적 장면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이버 레커와 흡사하다. ‘지옥2’는 이들을 제어하는 공권력이 작동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사회 붕괴가 초래되는지 전시한다.

‘지옥2’는 부활자들이 경험한 지옥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다. 하지만 “지옥은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끝없는 절망감”이라고 부르짖는 박정자의 목소리를 통해 ‘진짜 지옥’이 무엇인지 넌지시 알린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비롯해 여러 드라마·영화 속에서 묘사한 지옥은 신체적 고통을 주는 형벌로 점철됐다. 하지만 ‘지옥2’는 심리적인 고통에 방점을 찍는다. 고지를 받은 후에도 자신의 죽음보다 남겨질 두 아이를 걱정하던 ‘엄마’ 박정자가 경험한 모든 지옥에는 ‘아이들의 부재’가 있었다.

반면 부활한 정진수가 경험한 모든 지옥에는 사자가 나타나 그의 신체를 훼손했다. 새진리회의 초대 의장으로 무결한 존재여야 했던 정진수는 고지를 받아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단죄를 뜻하는 지옥의 사자와 마주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당신의 지옥과 나의 지옥은 다르다.”

‘지옥2’는 박정자의 이 한 마디로 귀결된다. 모두가 지옥의 모습을 궁금해하지만, 누구 하나 같은 삶과 죽음이 없듯, 같은 지옥도 없다는 웅변이다. 각자의 두려움과 바람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지옥 역시 같을 수 없다. 그러니 정형화된 지옥의 이미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연상호 감독은 “흔히 가진 지옥에 대한 이미지가 있는데, 전 어릴 때부터 의문이었다”면서 “그 어떤 일도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면 적응될 수밖에 없다. 사지가 찢기는 고통은 어마어마하겠지만, 그걸 1000년 동안 당하면 익숙해질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지옥은 반복되거나, 예측할 수 있으면 안 되는 공간”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지옥’ 시리즈는 설명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미지의 현상으로 인해 인간이 겪는 근원적 공포를 다룬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 장르다.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그린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를 비롯해 ‘놉’ ‘미스트’ 등의 외화가 여기에 해당된다. ‘지옥’은 한국형 코스믹 호러의 효시라 할 만하다. 연 감독은 “‘지옥’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참혹함과 공포감을 자아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코스믹 호러’ 장르의 문법을 따라 충실하게 작업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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