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전 종목 석권·타이거즈 V12 지휘한 정의선 회장 철학
"변화 멈추면 쉽게 오염돼"…혁신과 도전의식으로 경쟁력 제고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양궁 대표팀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5개 전 종목을 석권하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양궁대표팀의 선전엔 대한양궁협회 회장사인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의 전방위 지원이 녹아있다.
최첨단 훈련 장비를 제공하고 파격적인 재정 지원으로 선수들의 훈련을 도우면서 대표팀 선발이나 협회 운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아 공정한 경쟁을 끌어냈다.
아울러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 의식을 고취하며 한국 양궁의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현대차그룹의 철학은 올해 계열사 기아가 운영하는 프로야구단 KIA 타이거즈에도 고스란히 주입됐다.
KIA는 2024시즌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숱한 위기를 극복했다.
연공 서열을 타파한 감독 선임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공수 조직력으로 새 바람을 몰고 왔다. 아울러 외국인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할 때마다 발 빠른 계약과 적확한 투자로 전력난을 최소화했다.
KIA 구단은 역대 최대 실적을 창출한 모기업처럼 7년 만에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 12전 불패의 타이거즈 한국시리즈 우승 신화를 이어가며 최고의 한해를 만들었다.
KIA의 통산 12번째 한국시리즈(KS) 우승엔 정의선 회장의 철학과 그룹 문화가 투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작부터 남달랐던 KIA,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KIA는 2024 정규시즌 개막을 앞둔 지난 2월 전임 감독이 불미스러운 일로 중도 퇴진하자 이범호 1군 타격 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발표했다.
1981년생인 이범호 감독은 프로야구 최초의 1980년대생 사령탑으로 팀 내 최고참인 1983년생 최형우보다 불과 두 살 많다.
KIA가 주변의 우려를 뒤로하고 역대 최연소 감독을 선임할 수 있었던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모그룹 분위기를 따른 결과다.
정의선 회장 역시 2005년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은 뒤 지연, 학연 등 파벌이 낳은 불합리한 관행을 철폐하고 불공정한 선수 발탁을 차단했다.
선수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투명한 경쟁 체제를 조성한 덕에 한국 양궁은 올림픽 등 국제대회마다 굵직한 성과를 냈다.
KIA 구단도 해묵은 관행을 깨고 과감한 결정으로 2024시즌을 시작했다.
이범호 감독은 대구 출신으로 프로 데뷔도 한화 이글스에서 했다.
이 감독은 취임 첫날 선수들에게 "눈치 보지 말고 두려움 없이 즐겁게 뛰어라"라고 자신의 지도 철학을 밝혔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또다시 새로운 생각과 도전을 계속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던 정의선 회장의 올해 신년사와 통하는 구석이 적지 않다.
질질 끌지 않는 의사결정, 현장과 그룹의 혼연일체
프로야구 대다수 팀은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거나 교체할 때 현장 의견을 프런트에 전달하고, 프런트는 모그룹의 재가를 받아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현장과 프런트, 현장과 모그룹 간의 이견으로 의사결정이 미뤄지기 일쑤다.
그러나 KIA는 외국인 선수가 다칠 때마다 신속한 판단과 지원으로 전력 공백을 최소화했다.
1선발로 점찍은 윌 크로우가 팔꿈치 내측 측부인대 부분 손상으로 쓰러진 건 5월 초의 일이다.
그러자 KIA는 곧바로 임시 대체 선수 캠 알드레드를 영입했다. 크로우 부상 발표와 알드레드 영입 발표까지는 단 19일이 걸렸다.
알드레드의 위력이 기대치를 밑돌자 KIA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통산 36승을 거둔 좌완 에릭 라우어와 계약했다.
에이스 노릇을 한 제임스 네일이 시즌 막판 타구에 턱을 맞아 이탈하자 KIA 구단은 시선을 대만으로 돌려 에릭 스타우트를 대체 선수로 급히 영입했다.
올 시즌 KBO리그에서 임시 대체 외국인 선수를 2명이나 기용한 팀은 KIA가 유일하다.
구단의 신속 대응 덕에 재활에 전념할 수 있던 네일은 부상을 털어내고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한 KS 2경기에서 1승 평균자책점 2.53을 기록하며 우승에 앞장섰다.
라우어도 KS 3차전에서 5이닝 2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틀어막고 제 몫을 했다.
KIA 관계자는 다급했던 외국인 선수 교체 시기를 돌아보며 "모그룹의 지원이 없었다면 힘든 상황을 겪을 수 있었다"고 짚었다.
멈추지 않는 변화…혁신은 계속된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상반기 합산 영업이익률 10.7%로 글로벌 '톱5'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합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139조4천599억원, 14조9천59억원으로 반기 기준 사상 최대였다.
수익성 개선을 이끈 것은 제네시스와 기아로, 모두 정의선 회장의 손길을 거쳤다.
정의선 회장은 그룹 총수에 오르기 전 기아 대표로 비인기 모델을 단종하고 시장 수요에 맞춰 레저용 차량(RV) 중심으로의 라인업 재편을 주도했다.
'변화'는 현대차그룹의 가장 큰 철학이자 가치다.
정 회장은 지난해 신년회에서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변화를 멈추면 쉽게 오염된다"고 말했다.
KIA 구단도 축배의 여흥이 채 가시기 전에 벌써 내년 준비에 들어갔다.
한국시리즈가 끝난지 일주일도 안 된 지난 3일, 김주찬 벤치 코치와 김민우 1군 수비 코치를 영입했고 같은 날 이범호 감독과 계약기간 3년간 총액 26억원에 재계약하며 안정 속에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또 올 시즌 10개 구단 중 실책(127개)이 가장 많았던 약점을 극복하고자 일본프로야구 선수 출신 미쓰마타 다이키 코치를 마무리 캠프 수비 인스트럭터로 초빙해 장단기 수비 처방에 착수했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낄 수 없듯 멈추지 않는 변화로 중무장한 호랑이 군단의 2025시즌은 이미 시작됐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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