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2만가구 청약 기회"···정부, 수도권 주택공급 늘린다
고양·의왕·의정부까지 총 5만 가구
서울 경계서 10㎞ 이내 택지개발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서울 강남과 서울 주변 일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대거 해제해 5만 가구 규모의 택지를 조성한다. 서울 서초구 서리풀지구에 2만 가구를,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고양·의왕·의정부에서 3만 가구를 공급한다. 서울에서 대규모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것은 이명박(MB)정부 때인 2012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신규 택지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국토교통부는 올 8월 8일 발표한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의 후속 조치로 5만 가구 규모의 신규 택지 후보지 4곳을 5일 발표했다. 앞서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서울 집값이 치솟자 8·8 대책 발표 당시 올 11월에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신규 택지 후보지를 공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우선 서울에서 서리풀지구 그린벨트를 해제해 총 2만 가구를 공급한다. 나머지 3곳은 경기도 고양대곡 역세권(9000가구)과 의왕 오전왕곡(1만 4000가구), 의정부 용현(7000가구) 등이다. 이들 지역 모두 서울 경계로부터 약 10㎞ 이내에 있으며 개발 압력이 높고 공장·창고 등이 난립해 난개발 우려가 있어 체계적인 개발이 필요한 곳이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지구당 그린벨트 면적은 98~99%이며 의왕 오전왕곡의 경우 그린벨트 면적이 87%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에 발표한 택지 면적의 96.2%를 그린벨트 지역에서 추진하는 셈이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선제적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안정적 주택 공급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수요가 있는 곳에 양질의 주택이 충분히 공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5만 가구에 이어 국민들이 선호하는 입지에 3만 가구를 내년 상반기까지 추가로 발표할 계획이다. 다만 추가 발표 지역에는 서울이 포함되지 않으며 그린벨트 해제 지역도 아니다.
정부의 이번 신규 택지 발표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서울 지역까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올 하반기부터 ‘공급 절벽’ 우려로 서울 및 수도권 집값이 치솟으면서 추가 상승에 대한 시장 불안이 커지자 2012년 이명박(MB) 정부가 강남 세곡동·내곡동 그린벨트를 푼 지 12년 만에 이를 해제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번에 발표된 그린벨트 해제 구역인 서울 서초구 서리풀지구는 강남 생활권에 자리한 데다 교통 접근성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이외 지역도 고양·의정부·의왕 등으로 서울시에서 10㎞ 내에 위치해 있다. 입지 측면에서 봤을 때 서울 집값을 잡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그린벨트 지역 개발이 지연된 사례가 많아 실제 주택 공급이 목표대로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번에 발표된 신규 택지 4곳 중 서울에서는 서초구 서리풀지구가 선정됐다. 서초구 원지동·신원동·내곡동·우면동 일대 221만 ㎡(67만 평)로 지구의 99.9%가 그린벨트다. 보금자리주택을 짓기 위해 2009∼2012년 서초구 내곡동, 강남구 세곡동 일대 그린벨트 5㎢를 해제하면서 조성한 4630가구 규모의 내곡지구가 서리풀지구를 둘러싸고 있다. 정부는 역세권 고밀 개발을 통해 양재·판교 업무지구 사이에 있는 이곳에 2만 가구 공급을 계획하고 있다.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경우 용적률을 250%까지 높일 수 있고 필요시 추가 상향도 가능하다.
2만 가구 중 1만 1000가구(55%)는 서울시가 신혼부부용 장기전세주택Ⅱ(미리 내 집)로 공급한다. 미리 내 집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주택정책 대표 브랜드인 장기전세주택 ‘시프트(SHift)’의 두 번째 버전이다. 신혼부부가 전세로 입주한 뒤 기본 10년, 아이를 셋 낳으면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또 20년 후 시세보다 최대 20% 싼값에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 오 시장은 “단지 전체를 아이 키우기 좋은 육아 친화 단지로 조성할 것”이라며 “어린이집, 서울형 키즈카페, 물놀이 놀이터 등 아이 돌봄에 필요한 시설과 환경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에 조성하는 나머지 신규 택지 3곳도 그린벨트가 전체 부지의 87.0(의왕 오전왕곡)~99.9%(고양 대곡역세권)를 차지한다.
의왕 오전왕곡지구는 의왕시 오전동, 왕곡동 일대 187만 ㎡(57만 평)다. 1만 4000가구를 공급한다. 이곳은 인덕원~동탄선의 의왕시청역과 0.7㎞ 정도 떨어져 있다. 과천지식정보타운과 연계한 의료·바이오 산업 유치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정부 용현지구는 의정부 신곡동·용현동 일대 81만 ㎡(24만 평)로 서울 경계에서 3㎞가량 떨어져 있어 입지가 좋지만 군부대로 인해 개발이 이뤄지지 못했던 곳이다. 개발이 예정된 인근 의정부 법조타운, 기존 도심과 연계한 통합 생활권을 조성한다. 주택 공급 규모는 7000가구다.
고양대곡 역세권은 덕양구 내곡동·대장동·화정동·토당동·주교동 일대 199만 ㎡(60만 평)에 9400가구를 공급한다. 지구 아래 대곡역에는 연말 개통 예정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 서울지하철 3호선 등 5개 철도가 지나간다. 이동환 고양시장은 “5개 철도가 지나는 대곡역에 대한 기업 수요가 큰 만큼 ‘지식 융합 단지’로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기업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 국토부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신규 택지가 단순히 ‘베드 타운’으로 머물지 않도록 서울 도심과의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맞춤형 교통 대책도 추진한다. 김배성 국토부 공공주택추진단장은 “서리풀지구의 경우 수요가 있다면 신분당선 노선에 역을 추가로 신설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역세권 고밀 개발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밖에 고양대곡 역세권은 일대에 복합환승센터를 구축하고, 의왕 오전왕곡지구와 의정부 용현지구는 GTX-C 노선 등과 연계한 교통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신규 택지 공급 발표에 대해 수요가 높은 서울 강남권 지역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집값 안정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평가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 내 공급 부족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진 않지만 단기적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달래는 데는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4개 택지에 대해 ‘2026년 상반기 지구 지정, 2029년 첫 분양, 2031년 첫 입주’라는 시간표를 제시했다.
다만 그린벨트 개발은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는 경우가 많아 주민 보상 속도가 관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국 그린벨트(약 3719㎢) 중 사유지는 면적 기준으로 70%(약 2585㎢)에 달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이번에 발표된 택지 규모와 해제되는 그린벨트 면적을 감안하면 토지 수용비로 수조 원이 족히 들 것”이라며 “3기 신도시 조성이 지연되는 것도 토지 보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 정부 출범 이전에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곳들의 사업 기간은 이미 줄줄이 연장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경기 화성어천지구의 사업 기간은 애초 2018년 12월 31일부터 2026년 6월 30일까지로 계획됐다. 하지만 지난달 사업 기간이 2029년 12월 31일로 3년 이상 연장됐다. 2020년 12월부터 보상 착수 예정이었지만 주민 반대에 올해 4월로 미뤄진 탓이다. 의왕청계2지구 사업 종료일도 토지 보상 지연, 맹꽁이 포획 및 이주 등 여파에 올해 9월 30일에서 2027년 3월 31일로 미뤄졌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총 네 차례 신규 택지 후보지를 발표했다. 수도권 기준으로 2022년 11월에 발표된 김포한강2지구, 2023년 6월에 나온 평택지제역 역세권, 같은 해 11월 구리토평2·오산세교3·용인이동지구, 이날 공개된 서울 서리풀·고양대곡·의왕 오전왕곡·의정부 용현지구까지 총 20만 여 가구 규모다.
이 중 사업 진척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김포한강2지구다. 현 정부의 첫 신규 택지인 이곳에는 총 4만 6000가구 규모의 주택이 조성될 예정이다. 후보지 발표 이후 약 1년 8개월 만인 올해 7월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됐으며 지구 계획 승인을 거쳐 2030년 분양을 시작하는 게 목표다. 총 3만 3000가구 규모의 주택 조성이 예정된 평택지제역 역세권은 연내 지구 지정을 추진 중이다. 주택 1만 8500가구가 들어설 구리토평2지구도 내년 상반기 지구 지정을 목표로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신규 택지 사업에서 가장 큰 암초는 토지 보상이다. 현행법상 토지 보상 작업은 지구 지정이 완료된 후에 시작된다. 평택지제역 신규 택지 사업은 주민들의 반발에 지구 지정 전부터 잡음이 일고 있다. 일부 주민들이 토지주에게 보상금 대신 개발 구역 내 조성된 땅을 주는 ‘환지’ 방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택시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민관협의체 등 자리를 마련했지만 이미 주민 비상대책위원회만 9개가 구성되는 등 대립이 첨예하다. 부동산 업계의 한 전문가는 “보상 협의가 불발돼 행정소송까지 진행되면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포한강2지구는 교통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김포공항부터 김포 한강신도시를 잇는 서울지하철 5호선 연장 사업을 추진 중이다. 신도시 입주와 맞물려 2031년 개통이 목표이지만 정차역을 둘러싼 인천시와 김포시 간 갈등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노선 확정이 안 된 상태에서 설계 등을 고려하면 2031년 개통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며 “교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공급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동훈 기자 hooni@sedaily.com신미진 기자 mjshin@sedaily.com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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