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경쟁력 지키려면 친환경·디지털 투자 늘려라”
글로벌 조선 업황이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올라탄 가운데,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한화 오션·삼성중공업)의 수주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 3사는 10월 2일 하루에만 수주액 2조1051억 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탈탄소 흐름에 맞춰 LNG 관련 분야의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액화석유가스 LPG(액화 석유가스) 운반선과 액화천연가스 LNG 벙커링선 (연료공급선) 등 모두 5척에 대해 8814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고, 한화오션은 LNG 부유식 저장· 재기화 설비 한 척을 5454억원에 수주했다. 삼성 중공업도 LNG 운반선 두 척 건조 계약을 6783억 원에 맺었다. 또 3사가 쌓아둔 수주 잔량도 3년을 웃돌면서 업계에서는 한동안 우리 조선업의 호황이 지속될 것 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하지만 조선업 분야에서 가격 경쟁력이 주무기였던 중국이 몰라보게 달라진 기술력을 앞세워 바짝 뒤를 쫓고 있어서 반짝 호황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클라크슨리서치(Clarkson Research)의 스티븐 고든 대표는 최근 ‘통상’과 서면 인터뷰에서 “주요 국제 해운사들 또한 한국 조선업의 품질 경쟁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면서도 “중국의 선박 품질도 이전보다 상당히 좋아졌고, 상당수의 대체 연료 선박 수주도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언급했다. 또 “조선업은 가장 경쟁이 치열한 산업 중 하나”라며 “탈(脫)탄소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친환경 기술 투자를 늘리고 관련 혁신 역량을 키우는 것이 앞으로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172년 역사의 클라크슨리서치는 영국의 세계적인 조선·해운 분석 기관이다. 매일 8만 척 이상의 선박과 화물 관련 정보와 경제 통계 등 다양한 자료를 만들어 전 세계 고객에게 제공한다. 다음은 고든 대표와 일문일답.
글로벌 조선업의 현주소, 어떤 모습인가.
“지난 4년 동안 전 세계 조선업은 강한 회복세를 보였다. 1~3분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50만CGT(표 준선 환산 톤수) 넘게 발주가 이뤄졌다. 액수로는 1550억달러(약 212조원)에 달한다. 2024년 들어서는 특히 유조선과 LNG 운반선, 컨테이너선 부문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올해는 2008년 이후 수주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CGT는 선박의 부가가치 및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해 산출하는 단위다. 고부가 선종일수록 CGT값이 크다.
다양한 섹터에서 신규 발주가 늘어난 원인은 뭔가.
“‘클라크시(Clarksea) 지수’가 2만5000달러(약 3472만원)를 넘어설 만큼 해운 업계의 업황이 좋은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지난 10년간 평균에 비해 35%나 높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한몫 거들었다. 작년 말부터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주요 해운 업체들이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 등을 거치는 우회 항로를 택했는데, 그 여파로 해상 운임이 치솟았다.” 클라크시 지수는 클라크슨리서치가 해상 운임을 종합적으로 집계해 발표하는 지수다. 벌크선(철강·곡물 따위의 원자재를 포장 없이 실어 나르는 선박), 컨테이너선, 유조선, LNG 운반선 등의 일일 평균 운임을 알려준다.
친환경 선박 등 신규 선박 수요가 늘어난 영향은 없었나. 인플레이션 영향도 있을 것 같고.
“전 세계적으로 노후 선단이 늘면서 교체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조선업의 이전 호황기가 15년 전 인데, 당시 건조한 선박이 교체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탈탄소 흐름 속에서 친환경 선박 수요도 급증했다. 신규 건조 선박의 평균 가격은 2021년 초 이후 45% 상승했지만, 상승 속도는 둔화해 올 들어 지금까지 6% 상승에 머물고 있다. 액수로만 보면 현재 가격은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이지만, 인플레이션 영향을 고려한 실질 가격은 당시에 비해 30% 낮은 것으로 봐야 한다. 올해가 지나면 단기적으로 주문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앞서 탈탄소화와 노후 선단 교체 등 장기 수요를 뒷받침하는 요인은 충분하다.” 전 세계 조선 업계의 공통 어젠다는 ‘친환경’이다. 세계적으로 조선 산업은 대기 및 해양오염과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LNG 추진 기술, 전기 및 하이브리드 추진 기술, 수소 및 암모니아 연료 등 친환경 동력 기술이 미래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 2024년 상반기 수주 휩쓴 조선 3사
탄소 배출 규제 흐름은 조선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3%가 해운업에서 나오는 만큼 전 세계적인 배기가스 규제와 국제해사기구(IMO)의 넷제로(net-zero·이산화탄소 순 배출량 0) 목표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조선 수요의 상당 부분을 좌우하며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해운·조선업은 상대적으로 탄소 감축이 쉽지 않은 분야다. 하지만 선박 개조와 친환경 연료 사용 등 다양한 방법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해운 업계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관련 규제가 미흡할 경우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해운 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 3%에서 2050년엔 17% 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걱정한다. IMO가 지난해 7월 2050년까지 선박의 탄소 배출량을 2008년 대비 기존 50%에서 100% 감축하는 내용의 넷제로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에 따라 글로벌 선사들은 국제 해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최소 20~30%, 2040년까지 최소 70~80% 감축해야 한다. 의무 목표가 아닌 점검 차원의 지표다.
친환경 전환 트렌드에 지정학 리스크 고조로 인한 에너지 안보 위기감이 겹치면서 LNG 운반선 수요가 높게 유지되고 있다.
“한국이 최근 몇 년 동안 신규 주문이 가장 많았던 LNG 운반선 부문에서 집중도를 높인 건 매우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그 결과 기록적인 수주 실적을 내며 점유율을 높게 유지하고 있다. LNG 운반선 거래가 앞으로 10년 동안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조선 업계 관련 주목할 만한 기술 변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무엇보다 친환경, 에너지 저감 기술(ESTs)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 신규 발주 물량 중 친환경 대체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이 이미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2024년에는 LNG와 선박용 경유를 함께 사용하는 LNG 이중 연료 추진 선박 수요가 메탄올과 암모니아를 사용하는 선박보다 많았다. 여기에 더해 탄소 배출까지 줄여주는 에너지 저감 기술이 신규 발주 선박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클라크슨리서치가 지난 1~6월 발주가 이루어진 대체 연료 추진 사양 선박 수를 집계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총선박 수는 310척, 1720만GT(총톤 수)로 41%를 차지했다. 구체적으로 △ LNG 추진 선 109척(1150만GT) △메탄올 추진선 49척(270 만GT) △ LPG 추진선 42척(170만GT) △ 배터리 하이브리드 추진 선 등은 92척(70만GT)이었다.
글로벌 조선 업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전 세계 조선 업계에서 한국의 평판은 여전히 훌륭하다. 주요 국제 해운사 또한 한국 조선업의 품질 경쟁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올해 한국 조선업 생산량은 CGT 기준 전년 대비 17%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가 지나면 생산량은 한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2024년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한국의 생산 점유율은 지난 20년 동안의 평균보다 낮아진 약 26%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2024년 주문량도 전년 대비 증가하겠지만, 대형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중국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어 더 이상 점유율을 높이기 힘든 상황이다.”
중국의 조선업 경쟁력은 어느 정도로 보는지 궁금하다.
“중국은 2023년 처음으로 전 세계 선박 생산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다. 유휴(遊休) 조선 시설을 재가동하고 기존 설비를 확장하면서 생산능력을 끌어 올리는 중이다. 2024년에는 점유율을 더 높일 전망이다. 또한 올 들어 제품군을 성공적으로 다각화해 전통적으로 강점이 있었던 벌크선 외에도 컨테이너, 유조선, 자동차 운반선, LPG 운반선 등 다양한 섹터에서 시장점유율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선박 품질도 이전보다 상당히 좋아졌고, 상당수의 대체 연료 선박 수주도 주목할 만한 성과다.”
중국이 보유한 상선은 선복(船腹·선박 내 화물 적치 공간) 기준 세계 1위다. 한국은 4위에 머물고 있다. 수주 선박이 아직은 수익성이 낮은 벌크선·컨테이너선·유조선이 많지만, 고부가가치 선박인 가스 운반선이나 친환경 선박도 수주하는 등 다양한 선종으로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한국을 추격 하고 있다. 중국은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당 대회에서 조선 산업에 대한 ‘해양굴기(海洋堀起)’ 를 선언했고 2012년 제18차 당대회에서 ‘해양 강국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해양 산업 발전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은 중국 조선 산업의 강점으로 꼽힌다. 중국 정부는 자국 조선 기업의 법인세를 감면해 주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불황기엔 정부와 국영기업이 선(先) 발주를 하기도 한다.
+ 중국에 따라잡힌 조선 산업 경쟁력
한국의 조선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조언 부탁한다.
“조선업은 가장 경쟁이 치열한 산업 중 하나다. 탈탄소 도전 극복을 위해 친환경 기술 투자를 늘리고 관련 혁신 역량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디지털 기술 활용도 늘려야 한다. 다양한 해운 사업 분야에 접근할 수 있도록 건조 가능한 선박의 종류를 다양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가스 해운 부문에서 LNG뿐만 아니라 LPG, 암모니아, 에탄올 및 탄소(저감) 관련 시장에서도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해운 업계 고객은 같은 주문을 반복해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객 관계도 전략적으로 잘 유지해야 한다.”
※ 이 기사는 월간 ‘통상’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네이버에서 ‘월간 통상’을 검색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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