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의 경제적 이익은 누구의 것인가?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쇼크’로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한강의 책을 비롯해 작가와 관련된 콘텐츠들이 희소 자원이 됐다. 인쇄소에서 책을 찍어내는 속도가 한강의 책을 사고 싶은 사람들의 구매력에 미치지 못하자 중고시장에서는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같은 단행본들이 5만원대부터 최고 14만원까지 매물로 등록되기도 했다.
한강 작품에 대한 평론, 작가의 인터뷰·낭독 영상 등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을 출간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10년간 출판사에서 일했지만, 하루에 책이 이만큼 팔릴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출판계는 사양산업이라는 말만 들어오던 서러움이 있는데 유튜브 구독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우리가 만든 쇼츠나 영상에도 독자들이 호응하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고 흥분된다. 속칭 ‘텍스트힙’이라는 새로운 문화도 겹치면서 ‘한강 현상’이 다른 국내 소설의 판매도 견인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집계에 따르면 10월10일부터 16일까지 한강 작가의 도서를 제외한 국내 도서 전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 증가했다. 10월24일 현대카드가 〈시사IN〉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10월10일을 기점으로 10월18일까지 3대 대형서점(교보문고·예스24·알라딘)의 온·오프라인 현대카드 결제 건수는 10월1~9일 결제 건수와 비교해 약 69% 뛰었다. 같은 기간 3대 서점에서 카드로 결제한 금액의 증가 폭 역시 63%를 넘는다. 이 기간 3대 서점이 집계한 한강 책 판매 부수는 100만 부가 넘는다.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별 결제 건수 역시 최소 57%(60대)에서 최대 72%(20대)까지 크게 증가했다. 출판업계로서는 한강 작가의 글을 통로 삼아 서점에 유입된 전 세대 독자들이 다른 작가의 책도 접할 수 있도록 저변을 넓힐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건이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노벨상 상금 약 14억원, 도서 100만 부가 팔렸을 때 작가가 받게 될 인세 약 14억원, 앞으로 전 세계에서 거둬들일 2차 저작권료 등 한강 작가가 직접 벌어들일 수입은 노벨상 수상이 만드는 시장의 ‘수익’ 일부에 불과하다. 한강의 대표작들을 찍어내는 인쇄업체를 비롯해 제지업계, 전자책 시장의 ‘특수’ ‘훈풍’이 즉각 주목받았다. 출판계 밖도 들썩였다. ‘“한강 노벨상, 죽어가던 내 주식도 살렸다”···개미들 ‘환호’(〈한국경제〉 10월12일)’ ‘한강 노벨상 타자···전남 장흥군에 있는 한강 아버지 한승원 생가도 몸값 높아졌다(〈매일경제〉 10월20일)’ 같은 보도가 이어지며 ‘한강 신드롬’이 일으킨 시장의 외부효과도 덩달아 분석됐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10월19일 폐막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국문학 판권에 대한 문의가 3~4배 늘었다고 전했다. 국내 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은 이미 선인세 계약으로 이어지던 추세였다. 최근 강지영의 장편소설 〈심여사는 킬러〉가 2억1000만원의 선인세를 조건으로 판권이 수출됐고 이희주의 〈성소년〉, 송유정의 〈기억서점〉 등도 영국 출판사와 각각 선인세 1억원의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한강 특수’가 일부 대형서점과 특정 출판사에 편중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문사회교양서를 주로 출간하는 ㄱ출판사의 관계자는 “한강 작가의 쾌거는 한국 출판계의 자부심이지만 그와 별개로 문학동네와 창비 외의 출판사 중에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소설 단행본을 펴내지 않는 출판사는 초토화 상태다. 경기도 파주 인쇄소에 신간을 넘겨도 인쇄가 밀린다는 말이 나오고, 종이는 바닥이 났다고도 한다. 당장 우리 출판사의 이달 매출도 20% 수준은 줄어들 것으로 본다.”
이런 가운데 지역 서점에서도 ‘불공정한 유통구조’를 지적하며 서점을 대상으로 도매 판매를 겸하는 교보문고를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10월17일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 이후인 10월10일 밤부터 10월17일 오후까지 교보문고가 온·오프라인 서점을 통해 한강의 책 40만2000부를 판매할 동안, 교보문고와 거래하는 지역 서점들은 한강의 책을 단 한 권도 납품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보문고는 한강 책의 재고가 없어서 10월15일부터 하루에 도서 1종당 최대 10부씩 주문량을 제한해 접수받겠다고 고지했지만, 실제로는 책이 공급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교보문고는 10월22일부터 같은 달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책 판매를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온라인에서는 정상 판매하지만 해당 기간 오프라인 전국 매장 34곳 중 26곳에서는 한강 도서를 전면 판매 중단하고 이 기간에 입고된 매장 판매분 도서를 전량 지역 서점에 배정하겠다고 했다. ‘지역 서점과의 상생을 위하여’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하지만 이러한 교보문고의 방침에 지역 서점과 동네책방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광주에서 독립서점 ‘소년의서’를 운영하는 임인자 대표는 도서의 공급·유통 과정에 독점적 위치를 가진 교보문고와 출판사의 깜깜이 판매에 ‘위기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책을 많이 팔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출판사는 대형서점에 책을 몰아주고, 대형서점은 지역 서점에 책 공급을 미루면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취했다. 2021년 도매업체인 송인서적이 문을 닫으면서 대형 체인서점으로부터 서적을 공급받는 작은 책방들이 많다. 문화자본인 책마저 철저히 상품이 됐다.”
모두가 누려야 할 ‘한강 효과’
2020년 도매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교보문고는 이듬해 전국 2위 규모의 대형 도매업체였던 송인서적이 부도로 문을 닫으면서 본격적으로 거래처를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교보문고를 비롯해 알라딘, 예스24 등도 낮은 도서 공급률(정가 대비 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납품하는 가격)과 빠른 배송 등을 내세워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전국 대부분의 동네책방은 이들 업체 혹은 북센, 한국출판협동조합 등을 통해 책을 공급받고 있다.
현재 한강의 책은 일부 편의점과 쿠팡, 11번가 등 이커머스 유통업체를 통해서도 구입할 수 있다. 특히 쿠팡의 경우 한강의 저서 18종을 조기 확보했다며 사전 예약 배송 보장 기한도 11월1일에서 10월23일로 앞당긴다고 홍보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출판사들이 기존 대형서점에 책을 우선 납품하는 만큼 이커머스 업체는 수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조건임에도, ‘큰손’ 쿠팡이 자신들의 대량 구매력(바잉파워)을 앞세워 도매업체를 통해 물량을 확보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신세계그룹 계열 편의점 이마트24는 10월30일까지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두 종을 각각 300권씩 예약 판매해 매장에서 수령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에서는 10월23일 보도자료에서 ‘평소 도서를 전혀 취급하지 않던 체인형 마트와 편의점에도 책을 공급’한 출판사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해당 도서를 펴낸 창비 측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평소 거래를 하던 도매업체에서 별도 계약을 통해 편의점에 책을 납품하기로 한 것 같다. 우리도 편의점에 책이 공급됐다는 사실을 기사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됐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창비는 서점에 책을 우선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해당 사안은 유감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로, 최대한 서점 밖으로 책이 유통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한국 문단의 토양 위에 세워진 쾌거다. 한강의 유산이 한국의 역사와 아픔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공유하는 시민들 역시 ‘설명이 필요 없는’ 기쁨을 나누었다. 그렇다면 노벨상 수상의 문화적·경제적 이익 역시 사회가 함께 나누어야 할 몫이 아닐까? ‘한강 특수’가 던지는 질문이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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