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명품이라 부르지 못하는 방송 막기 위해, KBS는 싸운다 [사람IN]
“용산방송 거부하고, 돌아가자 국민방송.” 10월23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에 구호가 울려 퍼졌다. KBS 이사회가 차기 사장 후보(박민 사장, 박장범 앵커, 김성진 방송뉴스주간)를 면접 심사하는 날이었다. 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본부)가 단 하루 파업에 돌입했다. 2017년 ‘고대영 사장 퇴진’ 파업 이후 7년 만이다. 2인 체제 방통위 의결이 위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오면서 KBS 언론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불이 붙었다. ‘2인 방통위’가 위법하다면 거기서 임명된 KBS 이사회의 자격도, 차기 사장 임명 절차도 원천 무효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의 KBS본부 조합원 600여 명이 이날 쟁의행위에 참여했고 일부 뉴스 프로그램이 결방했다. “2017년 이후 내부적으로 ‘다시는 파업하나 봐라’ 하는 냉소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KBS 모습을 참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직접 표출된 거라고 본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48)이 말했다.
1년 전 박민 사장이 취임했다. 수신료 분리 징수로 내부가 크게 요동칠 때였다. 〈더 라이브〉 〈역사저널 그날〉 등 시사 프로그램 폐지,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광복절 이승만 미화 다큐 방영 등 제작 자율성이 위축되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채 상병 특검법 청문회를 국내 주요 방송사 유튜브 중 KBS에서만 볼 수 없었고, 지난 4월 이후 단체협약상 노사가 참여하는 공정방송위원회는 열리지 않고 있다. 2007년 KBS에 입사한 박 본부장에게도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공세”였다. “과거 정권도 무도했지만 그래도 ‘게임의 규칙’은 지켰다. 이번엔 KBS를 아예 박살내러 온 것 같다.” 안에서는 KBS본부를 향한 회의론이 커지는데, 바깥에서는 ‘왜 KBS는 예전처럼 싸우지 않느냐’는 추궁이 뒤따랐다. 박 본부장은 누군가는 계속 ‘깃발’을 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3월부터 KBS본부를 이끌고 있다.
‘돌아가자 국민방송’이라는 구호를 자주 곱씹게 된다. OTT 시대에 공영방송의 효용성이 전과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와서다. 창원총국 보도국, 진주방송국 취재기자로 근무했던 그는 수신료의 의미를 몸소 느낄 때가 많았다. “KBS 방송차를 타고 농어촌 지역에 가면 어르신들이 단지 KBS라는 이유로 당신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막 쏟아낸다. KBS 기자라면 그걸 다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이 ‘말할 권리’와 기자들이 ‘들을 의무’가 결국 수신료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신료 분리 징수는 그 연결고리를 끊는 조치라고 본다. “결국 용산의 이야기만 듣고 말하라는 게 아니겠나.”
논문 ‘한국 공영방송 노동조합의 자율성 투쟁(조항제, 2018)’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한국 공영방송은 22차례 파업을 거쳤고 그 이유는 대부분 사장의 거취나 제작 공정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2024년의 KBS가 다시금 격랑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상현 본부장은 지금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부에서 싸움을 손놓고 있었던 게 아니다. 이것이 임계점을 넘으면 언제든지 2017년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24시간 파업이 마무리될 무렵, KBS 이사회는 박장범 앵커를 최종 사장 후보로 결정했다. 박 앵커는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사건을 설명하며 “자그마한 파우치”라 언급한 인물이다. 이번 사장 면접에서도 박 앵커는 “디올 백을 명품이라고 부르는 건 부적절하다”라고 말했다. 박상현 본부장은 KBS의 투쟁에 다시 한번 주목해달라고 요청했다. “공영방송 투쟁은 시민사회와 같이하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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